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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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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카드 고마워...


BY 솔바람소리 2008-12-16

아직은 이른 크리스마스카드를 딸에게 받았다.

색도화지에 학 종이로 여러 모양을 접어 붙인 조금은 난잡한,

제 또래들은 예쁘다할 카드 4장을 딸이 귀가하기 무섭게 내게

내밀었다.

아빠, 엄마, 오빠, 해피꺼란다.

 

“해피것도 챙겼어?”

 

내 물음에 딸이 활짝 웃었다.

 

“네, 해피는 글을 모르니까 개 껌을 그렸어요.”한다.

 

크리스마스 날까지 펼쳐보면 안됀다고 했지만 오늘 읽고 그때 또 읽으마,

양해를 구하고 하나씩 펼쳐 보았다.

참... 난해한 딸 낼모레면 5학년인데 맞춤법도 틀렸다.

어쩜 좋니?... 걱정하니 엄마가 알아서 읽으세요...한다.

 

트리 옆에 산타 모습이 접어진 모양의 제 아빠에게 쓴 카드를 보았다.

 

<아빠 저 아영이에요. 메리크리스마스. 11년 동안 고생하셨죠?

저 5학년 되면 완전 고학년이니까요, 걱정하지마시고요.

저 힘들 것 같아요. 공부가 어려워질테니까요.>

 

-헉... 이건 사랑을 전하는 카드가 아니었다. 11년 그 긴 고생은 몇 자로

끝내고 나머지는 제 앞날의 고생담을 경고하는 말이라니... 미쳐미쳐...

하며 난 웃고 말았다.-

 

내 카드를 보았다.

제법 심열을 기울인 듯 예쁜 꽃송이를 만들어 붙인 카드였다.

펼치니 입체 모양의 하트 모양의 색종이가 눈에 쏙 들어왔다.

영어 1년 좀 배웠다고 LOVE를 큼지막하게 써 놨다. 2년 배웠으면

YOU까지 쓰려나...

 

<엄마, 저 아영이에요.(알어, 넌 편지 쓰면 이 대목은 꼭 나오더라.ㅎㅎㅎ)

엄마(니가 자꾸만 엄마라고 안 불러도 호적에 니 엄마로 올라갔다. 담엔 이 대사도

좀 뺐으면 좋겠어.) 11년 동안 절 사랑스런 마음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 없이 어떻게 살아요?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너무 기쁘네요. 하여튼, 사랑해요.♡이제 그만 쓸게요.>

 

-하여튼 사랑한다니 고맙다 해야겠지만... 이건 참... 초등학교 1학년 수준으로

성의가 없어 뵌다. 이제 그만 쓰겠다고 사전에 양해까지 구하고 있으니...

눈물까지 날라 한다.-

 

커다란 산타 하나 달랑 그려놓은 제 오빠에게 쓴 카드를 열었다.

이쯤되니 슬슬 기대가 된다고 해야 하나... 안 봐도 비디오같은

카드를 열었다.

 

<오빠에게

오빠 안녕!

나 아영이야(헉!!! 그려 너 아영이...) 내가 편지 쓰는게

운이 좋게도 오빠 카드가 제일 이쁘더라구! -_-;;;

이 편지를 엄마나 아빠에게 줄 걸.

나는 오빠랑 많이 싸우지만 뭐 안 싸우게 노력해야지.

오빠도 노력해야 돼. 알겠지?!!! 이제 안녕>

 

- 음...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제 이름을 알리고 알아서 절 잘 모시란 듯

줘놓은 카드를 부모님께 못 준 것이 후회스럽다니, 아들이 받고 뭐랄지...-

 

해피의 카드 속에 담긴 내용이 제일 알차지 싶다.

예쁜 꽃과 뼈다귀 속에 <해피>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 끝이었으니...

통보도 없고 경고도 없이 해피를 배려한 뼈다귀가 강건이었다.

 

그려 내 딸... 넌 어쩔 수 없이 지난날에 나로구나.

할머니가 그랬지. 편지라고 건네면 첫 줄은 감사합니다, 로 시작하지만

제 얘기만 썼다고...ㅎㅎㅎ

 

널 어떻게 키워야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엄마처럼 마음의 벽이 생겨서 완전무장한 마음으로 색안경을 끼고 힘겨운

가정을 꾸리게 될까봐 조금은 걱정이 된단다.

사랑해야지... 많은 사람들을... 엄마는 못하면서 네게만, 오빠에게만 강요를 하는

엄마로구나.

똑 부러지게 살아라.  엄마처럼 헛 똑똑이가 아닌... 똑똑이로 살거라...

일등을 바라지는 않지만 중간을 벗어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넌 자꾸만 내년이면 고학년이 된다고 하는데, 엄마도 네 나이때 빨랑 청소년이

되고 싶었고 또 어른이 되고 싶었어.

내 엄마도 그런 말씀 하셨었지.

 

“지금이 좋을 때다...”라고...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듯이 너도 그렇겠지...

친구들과 조금 다투고 힘겨울 때가 좋은 거란다.

아빠 엄마 안 싸우면 더 좋겠지만 아웅다웅 하더라도

그런 부모님 그늘 아래 있을 때가 좋은 거란다.

잘 먹이지 못해서 엄마가 요즘 너희에게 미안해...

간식도 제대로 못 먹이고 학원으로 용돈 대신 도시락을 싸서

건네도 “고맙습니다.” 받아드는 딸에게 엄마, 참 미안해.

조금만 참자...

먹는 것은 있는 것으로 버티고 너희들 하고 싶은 공부는 계속 해야 되잖아.

학원비를 만들려면 우린 지금보다 더 많이 버텨야해...

딸이 준 카드...

엄마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예쁘고 늘씬하게 자라주는 딸, 사람들이 칭찬 할 때마다 엄마는 마음에

행복 마일리지가 쌓이는 것 같어...

사랑한다...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