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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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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3)


BY 菁 2008-12-10

 

내게   스물여섯번째, 여름이 왔다.

친구와 저녁에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  나,  선을 열일곱번씩이나 봤다?! 

   웃기잖아?  내가 종이에 써봤지...  그래!  열일곱명!

   내가 보니까, 선도 비수기가 있더라?! 한여름, 한겨울은 쉬더라고...

   이젠, 밥 먹으면 깨진다는 말, 겁도 안난다?!  이왕이면, 밥 좀 사줬으면... 싶다니깐?!

   나, 공짜밥 먹으려고 선 본다.   육계장 먹고 싶다...

   야!  내, 얘길 듣고 있어?   뭐야?  전화 하지마?  \"

 

친구는, 갑자기 훌쩍 거리더니,

전화기에서 눈물과 콧물이 즈륵즈륵 떨어질만큼 울고,풀었다.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열일곱명의 명단이 적힌 종이에 손을 닦았다.

여름이라 땀이 났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친구의 콧물이 전화기에서 떨어지는 느낌였다.

일단 끊고, 실컷 울라고... 좀 있다가, 다시 전화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울음소리를 듣자하니, 한시간정도는 거뜬하게 울 기세였다.

전화비, 많이 나오면, 시집도 못 가면서, 전화통만 붙잡고 산다고, 엄마한테  혼나니깐.

\'   꼬진 전화기가 말썽이라며, 끊어 버릴까?

   나도 너무 슬프다며, 좀 쉬었다 다시 통화 하자고 할까?

   그냥...  엄마한테 한시간 혼나고, 친구가 한시간 울게 내버려둘까?

   어쩌쓰까?  어쩜 좋으까?  우짜쓰까?  어찌하까?  \'

 벼레별 치사한 계산을 다 하고 있는,  내가 참 거지같다고 느끼는 순간!

 

\"  좀 있다가, 내가 전화하께...  너, 엄마한테 혼날라......

   흐어엉흐어엉어어어엉... 푸르르 킁!  흐어어엉...   꼭, 전화 받어.  알았지?  \"   

하면서,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

 

착한 친구는, 거울과 같아서... 내, 영혼을 비춰 보게 하나니.

전화비와 엄마의 못마땅한 얼굴을 떠올리며, 계산에 몰두했던,

시시한 내, 영혼의 누더기 옷을 보았노라!   씁쓸하였노라!  창피해 죽는 줄 알았노라!

 

친구는, 쉰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듣자하니, 울만 했고, 코를 풀만 했다.

난, 수혈이라도 하고 싶었을 게다.  몽땅! 흘리고, 짜내고 싶었을 게다.

예쁘지 않은 친구, 솔직히 못생긴 친구( 미안하다! 친구야!)는, 선을 한번도 안 봤단다.

선 볼 필요도 없는 것이, 언제나 결혼 하고픈, 남자가 주변에 있었다.

스무살 되자마자 있었고, 스물두살에도 있었고, 스물네살에도 있었지.

늘, 짝사랑였지만...  결국엔, 남자가 넘어 오더란다.

어떻게?

전화비따위는 계산 하지 않는, 순수하다 못해,

아무생각도 없는, 겁없는, 사랑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단다.

스무살의 초봄, 그것도 이른초봄.

스물네살짜리, 남자가 혼자 지내는, 자취방에 갔단다.

양손에 음식을 둬보따리 들고선.

잡아 먹히기로 작정을 하고, 호랑이 굴에 들어간 토끼는, 맛있는 풀까지 들고, 기어 들어 갔단다.

어떻게 됐겠는가?  

마늘을 먹느니, 호랑이로 살겠노라던,

참을성이라곤, 토끼의 코딱지 만큼도 없는, 호랭이새끼가 토끼를 그냥 뒀을까?

천만에!!   토끼의 의도대로 호랭이새끼는 토끼를 잡아 먹었단다.

사랑으로...   그 친구가 말하는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던, 그 친구의 사랑으로...

스무살부터, 겁도 없이, 사랑에 열광하더니,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그랬다.

 

\'  미쳤다고 봐!  ,  돌았다고 봐!  ,   뭘 믿고 그런다지?  ,  후회할꺼라고 봐!   또?!  아픈거 아냐?   \'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언제나, 아슬아슬한 토끼의 연애사.

그러나, 아무도 못 말렸다.  

거침없이 호랭이 굴로 달려드는, 미친 토끼의 사랑을...

그러더니,  스물네살에 만난 남자와 꽤 오래오래 만나더니,

그 남자의 집과 친구의 집이 구별없다 싶더니...

남자와 여자가 함께 넣던, 적금이 만기가 되어,

이자를 챙길 수 있게 되자, 남자가 청첩장을 주더라나?

남자가 꺼이꺼이 울면서, 실수를 해서, 다른 여자가 아기를 갖게 됐다고 했다나?

만기 된 적금은, 남자가 우선 쓰고, 천천히 마련해 본다고 했다나?

남자의 집에 큰오빠, 작은오빠의 손을 잡고 찾아 갔더니,

남자의 노모는, 실눈을 짜르르 뜨곤,

그러게 연애질만 하지 말고,

서둘러 결혼하라고, 몇번이나 말하지 않았냐며, 적반하장도 유분수 였다나?

좋은게 좋은 거라고, 아기 갖은 여자를 어쩌겠냐고 했다나?

친구는,  그날 오빠들한테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단다.

멍 든 자리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는데...

내가 선을 열일곱번씩이나 봤다고, 자랑질을 하더라나?

뭐라 해 줄 말이 있어야지...  안티푸라민, 잘 바르라고만 했다.

 

알 수 없어요...

왜?  한꺼번에 두마리 토끼를 잡는지...  호랭이새끼들은.

 

그 친구는, 40을 바라보는 지금도 사랑에 열광적이다.

아마도... 타고 낳는 듯 싶다.

여전히, 주변엔 결혼하고픈 남자가 있고, 여전히 넘어 온다니...  놀랍다.

아마도, 매서운 눈매를 동그랗게 성형 한 효과로 본단다.

눈에서 자수정같은, 광채가 흐르면, 남자들이 넘어 온단다.

광끼겠지...이 친구야!

 

그 친구를 지켜보다가 깨달은 점이 있긴 하다.

그 친구의 손 맛.

죽여주는 음식솜씨... 

뭐든지 조물조물하면, 기가 막히게 맛있는, 신비로운 손 맛.

언제나, 손수 한 음식, 둬보따리면, 호랭이새끼들은, 아무생각없이 덤벼들더란다.

두툼하고, 짧은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방긋 웃는 친구.

그 친구가 해준 떡볶이와 김치전을 먹고,

서너명의 친구가 머리를 맞대고, 싸웠었지.

한 친구가 먹다말고, 삐쳐서 집에 가도 모르고,

서로 더 먹겠다면서, 말도 안하고, 싸웠었지.

셋이 먹다가, 하나가 가도, 모르고 먹는, 죽이는 손 맛.

손 맛을 무시 할 수 없다는 점을... 그 점을 깨달았다.

 

그 해 여름에도 선을 한번 봤다.

날도 더운데, 놀이기구를 타자고 했던 남자였다.

롤러코스터 한번 타고, 마구 흔들어 대는 놀이기구를 탔다.

공짜밥도 먹었다. 

아이처럼, 돈까스와 오무라이쓰에다가 아이쓰크림은 공짜.

핫도그를 먹었고, 쏘세지를 먹었지만... 모두, 공짜였다.

깨졌다.    밥을 먹으면, 선은, 깨진다는 말대로.

장난감 조립이 취미라는, 남자의 말이 귀를 멍멍하게 하는 것이 영... 싫었다.

중매 해주신 아주머니께, 좋은분 만나시라고, 대신 전해줍사 하고 부탁드렸다.

장남감을 조립해서, 아이처럼 벌여 놓을 것을 생각하니, 롤러코스터 타는 듯, 아찔했거든.

 

그 해 여름에, 손맛을 키워 볼 요량으로 음식을 여러차례 했었다.

난, 하느라고 지쳐서 맛이 없었고,

가족들은,  기다리다 지쳤는데, 기다린 시간이 아까울 지경으로, 맛이 개떡 같다고 했다.

옆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몰래몰래 음식을 나눠주다가,

\' 개를 죽일 작정이냐고?  닭뼈를 주면 어쩌냐고? \' 

옆집 아줌마에게 눈물나게 혼났었다.

 

난,  선 보는게 너무너무 싫어졌다.

주변에서, 두고보라고...  그런 좋은사람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쓴소리도 싫었다.

그러나,  친구처럼 손맛도 없고, 겁없는 열정도 없었고, 독신주의자도 아니였기에...

가을을 기다리기도 했고, 피하고 싶기도 했었다.

내, 이런저런 바램과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