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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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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생일


BY 솔바람소리 2008-12-03

음력 11월 6일이 남편의 생일이다.

그 날이 오늘...

처음 지하 단칸방에서 살림을 꾸렸을 때 나는 외딴 무인도에

벌여진 것 같은 외로움에서도 남편만을 바라보며 살려고 노력했다.

일을 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많았고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15만원

하는 것도 제 날짜에 갖다 준 적 없는 남편과 사는 것이 미치도록

날 힘들게 하여도...

그래서 살림을 집어 던지며 살아도 차마 돌아갈 수

없는 내가 뿌린 자존심을 놓지 못하고서 죽어도 곰팡이가 피어나는

작은 지하실 방에서 죽겠다고 생각했었다.

임신 5개월 뱃속에 아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님은

가족의 빈틈을 만들어 버린 못난 딸이 돌아오기만을 바랬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간밤에 술에 떡이 돼서 들어 온 혼인신고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남편’이란 사람을 위해서 미역국을 끓이고

없는 솜씨에도 불고기와 전을 비롯한 생일 음식상을

차려서 방으로 들어가니 놀라했다.

그리고 거짓말 잘하는 그 입으로 진심같은 말이 나왔다.

 

“난, 한 번도 생일 날 미역국을 먹어 본 적이 없어.

생일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고마워...“

 

처음부터 불쌍한 연민으로 받아들였던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또다시 나의 마음을 연민으로 물들였고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들도 봄눈 녹듯 사라지게 했다.

보증금... 작은 외숙모에게 빌린 거야...

곧 갚아야 해...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간간히 통화를 하던 친정식구들이 그랬다.

남편이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보고 접근한 걸꺼라고...

난 그랬다.

그 말은 날 더 비참하게 하는 거라고...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였느냐고...

그 말은 나를 돌이킬 수 없는, 삶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얘기라고...

남들의 얘기 때문에 나는 돈에 대해서 남편에게 처음부터

예민하게 굴었다.

그래서 엄마가 주신 보증금에 대해서 갚아야 할 빚으로

알려줬다. 집세 날짜를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나는 주인

아줌마에게 남편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혹시나 집세를 가져오면 내게 다시 돌려달라는 부탁도 했다.

아줌마는 알았다고 했다. 아쉽게도 남편은 늦은 집세를

손수 들고서 주인집으로 올라가는 적이 없었다.

어쩌다 돈을 들고 오면 외식을 하자고 했다.

놀러 가자고 했다.

집세와 공과금을 비롯한 우리들이 버틸 생활비를

걱정하면 다음을 기약했다.

집세는 보증금에서 제해도 된다는 말로 나를 기함시키곤 했다.

나와 살면서 남편이 변한 것이 있다.

자신의 생일을 참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점...

남들에게 떠벌리며 생일날 코가 삐뚫어져서는 사전에

말도 없이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

생일날이면 기뿐 마음으로 축하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며 살아갔던 내가... ‘너 왜 태어났니?’

반문하고 싶은 마음으로 되어버린 건...

아무나 축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아무나 축하를 해줄 수 없는 거란 걸...

남편과 살면서부터였다.

내 생일...

소공녀의 세나가 아버지의 든든한 빽을 짊어지고

모두에게 축하받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파티라는 명목으로 사랑과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던 내가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세나처럼

내 손으로 직접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 했을 때...

후에는 엄마에게 돈과 선물이 보내지기도 했고

동생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지난날의 내 자리, 내 몫의 양에 비할 순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웃기지...

남편은 생일날이 뜻 깊은 날이 되어가는데

난... 남편의 처음모습처럼 별 의미없는 날로

되어버리고 있으니...

남편의 달라진 모습에 부모님은 흡족해하신다.

내가 입을 닫으니 열심히 사는 줄 알고 계신다.

남편은 지난 날 김장때도 다녀왔고 나의 친정

나들이에 운전수 노릇까지 자처하며 기특하게도

지나간 생신과 다가 올 생신을 이유로

아버지 20만원, 엄마 20만원을 봉투에 넣어 챙겨드렸다.

그 마음이 기특한지 어제부터 전화를 주시며

남편의 생일을 챙겨주신다.

아침에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고 남편과 통화도 했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주신 5천 만원에 대해서 남편에게

털어놓지 않는 나를 나무라신다.

지금같이 힘들 때 내놓으면 힘을 얻을 거란다.

난...

아빠, 돈이란 사람을 나태하게도 만들어...

열심히 살려는 사람에게 그 돈을 내놓아서 느긋하게

만들면... 그 돈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잖아... 라고 했다.

아버지가 내 말에...

그럼 국물도 없지... 하셨다.

아버지의 국물이 떨어지기 전에

벼랑 끝에서 대롱일 나와 아이들은 어쩌라고...

하지만 난 이 순간 안방에서 꿈나라에 빠져있는

남편에게 그 돈에 대해서 알려줄 생각이다.

분명 내가 걱정하던 일이 고스란히 벌어질 것을

알고 있다. 화수분... 남편이 날 그런 대단한 능력자로

여기며 사는 것을 알고 있다.

내게 어떤 마음으로 접근을 했는지...

지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난 알고 싶지도 않고

상관도 하고 싶지 않다.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해줄 참이다.

어차피 그 돈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아버지의 배려를

알려야 할... 책임이 있기에...

그렇다고 얼마나 고마워할 인간일까...

고마워서 열심히 살아갈 의인이 아닌 걸 알면서

내가 그래야 한다는 것이...

기름 들고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만 같다.

자꾸만...

자꾸만...

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다...

생일... 남편의 생일 날...

아버지가 보내주신 돈 10만원으로

생일상을 차렸다. 작업복도 샀다.

또 다른 선물로 남편은 얼마나 커다란 기쁨을 얻게

될지... 난 그것도 관여치 않겠다.

 

(부끄럽지 않은 에세이에 적합한 글이 아닌 줄 알면서

들고 왔습니다.  위로 받고 싶어서요... 지금 제겐...

누군가... \'잘살고 있는 겁니다...\'하는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은 비참한 심정뿐입니다...

사랑으로 보듬으며 부부애로 살아가실 분들은 저를

흉보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