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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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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대 부부의 어느 일요일.


BY 낸시 2008-12-01

 

결혼 전에는 감이 그냥 흔한 군것질거리였다.

결혼 후 어머니가 고속버스를 타고 가져다 주던 감은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지금의 감은 추억이다.

그 속에는 엄마랑 아버지가 있고 언니들이랑 남동생도 있다.

지난 주 일요일엔 가는데 세 시간, 오는데 세 시간, 감농장을 찾아갔다.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었단다. 

이미 수확해 상자에 담아놓은 것 밖에 없다.

크고 좋은 것은 다 없어지고 탱자보다 조금 클까말까 한 것들만 남아 있다.

그나마라도 없는 것보다 났지. 열 두 상자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랑 우리도 감나무 농장을 한번 해보자고 하였다.

 

남편이 교회에 가기 싫다고 가지 않으니 좋은 것도 있다.

지난 주에는 감농장에, 이번 주에는 소나무 숲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동쪽으로 삼십분만 가면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곳이 있다.

소나무 숲도 보고, 거긴 농사가 잘되는 곳이라니까 혹시 감나무 농장을 할 만한 땅이 있나도 살펴보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향나무는 요리조리 전지를 해서 관상수를 만들고, 단풍이 고운 나무도 심고, 단감나무도 심고, 익으면 색깔이 단감보다 더 고운 땡감나무도 심고, 열매가 예쁜 유팡할리도 심고, 윈터베리도 심고...

꽃이 고운 박태기 나무도 심고, 자귀나무도 심고, 무궁화랑 명자나무도 심어야지...

꽃도 이쁘고 단풍도 고운 배롱나무도 빠뜨리면 안되지...

날이 새기도 전에 남편을 재촉했다.

여보,  거기 가서 우리 아침식사 하기로 했잖아.  내가 먼저 샤워할테니까 당신도 얼른하고 가자.

아직 더 자고 싶다는 남편을 재촉하여 길을 떠났다.

 

삼성공장이 있는 파머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고속도로나 도심을 통하지 않고 바로 시골길이다.

아, 좋다.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이 보이는 텍사스 들판이 시원하다.

쌩쌩 달린다.

시골길이라해도 고속도로와 다를 바 없다. 시속 60마일이 제한속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쩌다 마주오는 차가 있을 뿐, 앞으로도 뒤로도 차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지도를 보고 한가한 길을 골라 달린다.

오늘은 하루종일 데이트 삼아 나선 길이니 서둘러 갈 필요도 없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망아지도 보이고 송아지도 보인다.

운전하는 남편의 얼굴도 만져보고 손도 만져본다.

큰 길을 만나는 곳에 신호등이 있다.

빨간 불이네. 잠깐 멈추어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해 뽀뽀도 한 번 하고.

 

베스트랍에 도착했다.

한국으로 말하면 시골 읍내를 연상하면 된다.

그래도 여긴 미국이니까 맥도날드도 있고 서브웨이도 있고 월마트, 홈디포도 있다.

우선 맥도널드에 들러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옆집이 주유소네, 남편이 지도를 구하러 갔다.

베스트랍만 나오는 지도는 없단다. 시골이니까 바로 옆이 월마트다. 거기 가보면 있을거라네.

농장할 땅을 찾는다니까  부동산 중개인 전화번호랑 이름도 알려주었다고 남편이 메모쪽지 한장을 들고와 건넨다.

월마트에도 지도는 없다. 미국 사람들이 친절하긴 하지, 그런데 시골 사람들이라서 더 친절하네.

공짜로 지도를 구할 만한 곳을 여러군데 가르쳐준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다 문을 닫았다니 소용이 없고, 혹시 모텔에 가면 있을지도 몰라.

할러데인 인에 들러본다. A-4 용지에 복사 한 것 밖에 없다.

모르겠다.

아침식사는 해결했고 일단 소나무 숲을 찾아가야지.

 

공원 입구에  안내하는 아저씨가 친절하다.

그냥 자동차로 한바퀴 도는 것은 공짜란다.

남편이 그러는데 별로 좋은  것 같진 않단다, 하지만 공원안에 골프장도 있다.

골프장을 지나니 안내소가 있다.

혹시 지도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차 안에 있고 남편이 들어가서 물어 본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날 시켰을텐데 오늘은 남편이 뭐든 자기가 한다.

거 봐, 내가 여기엔 있을 거라고 했지. 남편이 기쁜 얼굴로 돌아왔다.

우리가 꼭 필요로 하는 지도다. 베스트랍 주변까지 골목 하나하나가 다 나오는 지도다.

물론 공원안내도는 따로다.

자, 그럼 공원을 한바퀴 돌아보고 감농장은 담에 찾아야지.

 

뭐라해야 하나, 설악산속 같다고 해야하나, 지리산속 같다고 해야하나...

나무의 키를 생각하면 더 깊은 첩첩산중 같은데 뭐라고 해야하나...

도화지에 연필로 세로선을 죽죽 한없이 그어놓은 것처럼 아름들이 소나무들이 뻬꼭이 서있다.

사이사이 섞인 참나무는 가을이 한창이다.

낙옆을 우수수 떨구기도 하고, 곱게 물든 단풍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 밑으로 철쭉을 닮은 관목의 빨갛고 조그만 잎사귀가 곱다.

차를 세우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지만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다.

생전 처음보는 나무다.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 그냥 예쁘면 되지. 이담에 나도 심어 단풍을 즐겨야지 맘에 새겨둔다.

솔잎이랑 참나무 낙엽의 갈색융단 위로 아기소나무들이 여기저기 푸르름을 자랑한다.

에구, 귀엽네. 비닐봉지하고 칼을 가져왔으면 하나 슬쩍 할 수도 있었을텐데...

아기소나무를 보니 욕심이 난다.

여기저기 죽어 넘어진 아름들이 소나무도 몇개 슬쩍하고 싶다.

장승을 만들어 가게 옆 꽃밭에 세워두면 좋을텐데...

바람에 날려 쌓인 솔잎으로 두툼하고 단정하게 띠를 두른 포장된 길 가장자리 마저 한숨이 절로 나오게 이쁘다.

숲속에서만 가능한 풍경이리라.

나무를, 숲을 보면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편리하게 포장된 길을 자동차로 달리며 가을을 즐긴다.

도심에 있는 공원인데, 일요일인데, 마주치는 사람도 드물다.

그저 오롯이 남편과 둘이서 즐기는 가을이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다.

지도를 손에 들고도 길을 잃는 것은 나이들어 나빠진 시력 탓이다.

싸우지 않으면 해가 지지 않는다.

둘이서 언성을 높였다.

둘 다 삐졌다.

삐져서 바라보는 숲은 그 전처럼 예쁘지 않다.

다시 생각해보니 길을 잃은 것이 무슨 대수인가,

그냥 소나무 숲을 즐기러 나왔고 길을 잃어도 소나무 숲속에 있는데...

모처럼 나온 길인데 삐지면 손해다.

갔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 미친척 말했다.

지도에 보니까 근처에 호수가 있는 공원도 있던데 우리 거기도 함 가보자.

그래, 그래...

남편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언제 언성을 높였느냐는 듯 다정한 말투로 대꾸를 한다.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가는 길에 For Sale팻말이 세워져 있다.

소나무 숲에 있는 집이다.

집 값이 얼마나 할까, 수첩을 꺼내 연락처를 적는다.

호수가 있는 공원도 입장료는 공짜란다.

아이들 놀이시설도 있고 피크닉 테이블이랑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시설도 호숫가에 있다.

숲이었던 곳에 물이 찼나보다.

호수 속엔 아름들이  나무들이 가지만 앙상하게 서 있다.

그 위에 커다란 하얀새 한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 밑에는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다.

메릴랜드에도 이거랑 똑 같은 공원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 어릴 때 가끔 놀러 갔었는데...

아이들이 오리에게 먹을 것도 주고...

그 시절이 그립다.

빈둥지가 된 지도  십 년이 가까워지나 보다.

바람이 차다.

남편을 바라본다.

그도 나처럼 조금 쓸쓸할까...

아 춥다...남편의 팔을 끌어 안겨 본다.

따뜻하다.

돌아서 남편을 꼬옥 안아준다.

남편도 쓸쓸했나보다 아무 말없이 날  안아준다.

세월이 간다.

그래도 힘을 내자.

 

여보, 자 이제 농장 할 만한 곳이 많다는 21번 서쪽을 한번 둘러보자.

그래, 가 보자...

더 늦기 전에 우리도 나누어 줄 사랑을 만들어 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