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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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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야, 사실은 나도 억울했다고...


BY 낸시 2008-11-23

언니 둘이 공부를 잘해서 울엄마는 내게도 당연히 우등상을 기대했다.

초등 일학년을 마치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간 내게 엄마가 물었다.

넌 왜 우등상이 없냐...

나도 궁금했다.

몰라, 나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다 주었는데 나는 안줬어.

내가 한 말을 선생님에게 전했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단다.

결석을 사십일이 넘게 했는데 어떻게 우등상을 줘요.

세세한 사정은 기억도 안나고 난 그저 울부모가  지나치게 과보호를 해서 학교를 안보냈나 보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언니가 십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세 자매가 밤을 새우며 옛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난 짐작도 못했었는데 언니는 맺힌 것이 많았나보다.

이야기 중에 흥분해서 마구마구 화를 내며 눈물까지 보였다.

어린시절 자기는 사랑도 못 받고 차별받은 것에 상처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길 못난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자라서  자길 예쁘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인줄 알았단다.

그래서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자길 좋다는 형부하고 결혼하긴 했지만 속상하다는 얘기다.

하긴 나도 기억난다.

고모들, 다섯이나 되는 우리 철없는 고모들이 생각없이 말을 쏟아낼 때가 있긴 했다.

언니도 이쁘고 동생도 이쁜데 왜 가운데 낀 둘째는 메주같이 생겼는지 모른다고들 그랬다.

언니가 흥분해서 화내고 우는 바람에 마치 내가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마음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생각없는 사람은 우리 고모들 뿐만 아니었다.

동네 아줌마들,할머니들,  때론 다른 친척들,...어쩌면 지금도 우리 주위에 수두룩하다.

언니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앉아있으니  아, 그랬구나...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학교가는 길에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내가 미워 때려주었단다.

그럼 학교를 가지않고 울고 집으로 갔단다. 아하,,,그랬었구나. 그래서 내가 우등상을 못 받았구나.

아하...그래서  언니가 졸업하고 난 다음부터 정근상이니 개근상을 받을 수 있었구나...

그래서 언니가 아랫방에 군불 때면서 톰소여의 모험을 동생에게만 읽어주고 나는 못 듣게 했구나...

아하...그래서 언니가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나랑 나란히 걷는 것을 피했구나... 맞아, 그 때 나는 언니가 아니라 언니 친구랑 나란히 갈 때가 더 많았었지...

이제 알겠다...그래서 언니는 툭하면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고 날 괴롭혔구나...

 

언니야, 나 그날 언니가 흥분하는 바람에 그냥 말없이 듣고만 있었는데 나도 억울한 것 많다.

누가 피해를 더 입었을까...우리 따져볼래?

어렸을 적 세살차이면 힘이 얼마나 차이지는 지 알기나 해?

허구헌날 이유도 모르고 언니에게 맞고 산 나는 어땠을까...

나도 이제 알겠네... 내안에 어찌해서 악바리 근성이 들어앉게 되었는지...

동생이  언니 머리채를 잡았다고 하지만 힘으로 붙어봐야 얻어 맞을 것 뻔히 알면서 언니 머리채를 붙잡고 늘어진 내 안의 억울함을 짐작이나 해봤어?

언니가 여고에 다닐 때, 내가 학교다니지 못하는 것 때문에 숨죽이고 살았다고 하지만 언니는 내가 서울가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잖아.

이런 이야기 기분 좋은 것 아니니까 안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줄지도 모르겠네.

여덟식구가 함께 사는 작은집 단칸방에 얹혀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

언니도 알지, 작은엄마가 경우없이 성깔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

고기 한 점 없이 쇼트닝인지 뭔지 허연 기름 넣고 끓인 김치찌게에 내 숟가락이 자주 간다 싶으면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더라.

자기 아들 울엄마 밑에 있는 것은 기억을 하는지 모르는지 내 꼴 못보겠다고 악다구니하기도 하고.

사촌오빠가 언니 팬티 속에도 손을 넣으려고 했다고 언니가 그랬지. 난 그 오빠 옆에서 자는 날이 많았단 말야. 물론 여러식구가 끼어자느라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손으로 더듬더듬했다구...밤마다 얼마나 징그럽고 싫었을까 짐작이나 돼?

 

큰언니랑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언니만 사랑을 적게 받았다고 하지만 큰언니도 불만이 많더라.

그래도 어찌되었든 우리 셋은 대학교육을 받았는데 큰언니는 학교를 제대로 못다니고 일찍부터 공장에 다녔잖아.

모르지. 우리 생각엔 왕자처럼 자랐다고 생각하는 동생도 나름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