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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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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BY 솔바람소리 2008-11-15

제가 더한 기가 꺾여야 할까요...

삶을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지요.

알아야 할 좌절들이 쌔고 쌨는지요.

세상 갖고 놀 것처럼 자만하던 제가 우물 안에

개구리일 뿐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웠습니다.

열정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겼던

마음이 부족한 실력을 깨닫고 무릎 꿇으며

아집을 버렸습니다.

 

겁 없던 제가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두려움이 뭔지를 깨쳤습니다.

어이없게도 밖이 아닌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을 만났고 그 속에서 하루를 발 딛을 때마다

실망에 마음의 살을 찢기며 선혈 같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런 고통 이제는 싫어 자유란 날개옷을 입고 훨훨

날아가고 싶었지만 가시덤불 속에서 폭포처럼 흘려대는

눈물로 서있는 가엾은 제 새끼들 두고는 못가고

그 험한 길 마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게 자식에겐 어미된 도리고 부모에겐 자식된

도리 같아서 날개옷을 다시 나무꾼에게 내주었습니다.

그 날개옷 네 맘대로 하세요, 하며 건넸습니다.

 

죽도록 힘들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저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습니다.

채찍 같은 고통을 주셔야만 행하는 그 일을

겸허히 받겠다며, 살아 숨 쉬어 보겠다며

행한, 제게는 의식같은 일이었지요.

쉽지는 않은 그 일이지만 하고나면 배불리

음식을 먹은 것 같은 포만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공평하다신 신께서 제게 하사하신 선물인줄만

알면서 우물 안 개구리라도 좋으니 그 속에서

만이라도 숨 쉬며 살아 갈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석고가 되었나봅니다.

아니 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절망도 신의 뜻이신가요.

받아들이겠습니다, 했습니다.

제가 서있는 이 자리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분수를 벗어난 욕심으로 헐떡이던 제 마음을

망각의 바다 저 멀리 던져버리겠다고 했잖습니까...

망각의 바다에 버렸기 때문인가요?

지혜의 바다 위에 띄어 보냈다면 이런 머리

되지 않았을라나요?

 

살기위해 숨통 틔우듯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 수있는 것이 그것 뿐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단어의 구사와 조합이 힘이 듭니다.

얼마 지니지 않은 단어만으로도 공기놀이하듯

갖고 놀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가 멍청이가 되었습니다.

알고 있던 단어들도 때론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뿐인가요...

표현은 걸음마도 못 뗀 수준입니다.

남들의 섬세한 감성적인 표현 앞에

지금처럼 좌절한 적이 없습니다.

제 색을 찾은 나뭇잎과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아래 쏟아지는 햇살을 저는

어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활짝 핀 꽃 한 송이를 하얀 도화지 위에 실물처럼

묘사하라는 선생님말씀에 연필만 들고 우물쭈물하는

그림에 문외한인 학생마음이 이럴까요...

 

써놓고 후회하고

다시보고 얼굴 붉히는 이 짓도

신께서 원하신바인지요...

저의 이런 막막한 좌절을 의도하셨는지요...

그렇게 꺾이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자존심을

팽개쳐버린 제게 신께서 원한 바는 무엇인지요...

 

부족함을 알았으니 응당 분골쇄신토록

노력하란 뜻이신지요...

만학의 꿈을 실현하신 많은 분들 앞에

‘이 나이에...’ 감히 떠벌리면 비겁한 거겠지요.

제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수 오뚝이가

될 수 있겠는지요.

얼마 남지 않은 30대, 어느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분골쇄신 정신해야 하는 시기가 30대고 그때를

연마기라 칭한다고...

곧 다가올 40대가 이무기가 용으로 화해서 하늘로

오르는 기상을 얻는 용비기라고도 했습니다.

42.195km 마라톤 코스의 순위 안에 들지 못하고

결승선에 도달한 선수들의 완주처럼

제가 목표한 그 자리에 용비기, 그 때가

아니더라도... 조금 더...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늦어지더라도... 도달할 수는 있는 거지요?

 

저는 단계별로 쉽사리 앞으로 정진하는

사람들의 삶을 받고 태어나지는 못했나봅니다.

배울 수 있을 때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이 두고두고 발등을 찍고 싶을 만큼 후회됩니다.

남자를 만나 아이부터 낳고 결혼식도 했습니다.

이 나이 먹고서 아버지를 진정으로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리 얼띤 저의 정진도 신의 의도신거지요...

 

제 못남을 감히 신께 덮어씌우고 있는 걸까요.

초등학생 수준도 못되는 머리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그래서 잠시 우둔하고 비겁한 인간이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습니다.

용서하세요...이런 저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