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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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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걸었네....경상도에서


BY 그대향기 2008-11-13

 

 

모든 일을 접고 지금은 떠나 있다.

하루 온 종일을 동동 걸음치던 직장에서 지금은 몸도 마음도 다 떠나 있다.

단풍도 거의 다 떨어진 산들이지만 여유롭게 바라보니 아직은 아름답다.

감잎이 떨어지고 주홍색 감만 달린 감나무엔 아예 주홍빛 감꽃들이 달린 것 같다.

가지가지마다 대롱대롱 달린 감들이 어찌 그리도 색이 고운지....

가을걷이가 다 끝난 빈 들녘에는 소들의 겨울양식인 짚들이 포장되어 커다란 공룡알처럼

하얗게 널려있다.

이삭줍는 새들이 논바닥을 이리저리 쫑쫑거리며  다니고 긴다리 학들도 기우뚱기우뚱 걷고있다.

안보는 척.... 안 먹는 척...아주 초연한 척...그러다가 기~인 목을 널어뜨리고 확~~`

한번에 뭘 집어 먹곤 또 고고한 척...느릿느릿 논 바닥을 걷는다.

 

차가 달리면 차 꽁무니로 노오란 은행잎들이 같이 가자며...여행을 같이 떠나며

세월을 같이 보내자며 종종종종...우르르르....따라 달린다.

얼만큼 따라 달리다간 포기를 하고 또 다른차 뒤를 줄곧 따라 달린다.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ㅎㅎㅎ

바쁜 일이 자꾸 생겨서 여름휴가를 해마다 가을로 미루게 되다보니

오히려 더 좋은 여행이 되는 것도 같다.

도로도 안 막히고 사람들도 덜 붐비니 숙소 잡기도 좋고 몸도 덜 피곤하고....

작년에는 모텔비용으로 큰 펜션을 통째로 빌려쓰는 혜택도 누렸는데

올해는 남편과 이삿짐 나른 휴유증이 있어 가능한한 가까운 곳에서  숙소를 잡았다.

삼천포 다리가 보이고 야경이 제법 이국적이라 꽤 낭만적이다.

하얗고 큰 돛단 배도 보이고   그 배의 불빛이 바다에 비치는 모습도  동화 속 같다.

 

사람의 몸이 한계를 느낄지경까지 일을 하다가 느긋하게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여행 그 자체보다 마음이 먼저 행복해진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고 하루 세끼 식사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도 헐렁해지다니..

늦잠에 차려주는 밥상에.

임금님 안 부러운 요즘이다.

 

어제 창녕을 출발하면서도 두고와야할 직장의 업무를 정리하느라

오후 1 시가 지나서야 집을 나섰고 개 밥이며 꽃나무 물주기를 부탁하느라

일일이 아쉬운 말을 해야했지만 주인 없이 일주일을 빈집을  지키고 있어야 할 개들이

안스러워 여느 때 보다 더 많은 간식을 듬뿍 선물하고 나오는데도 자꾸 뒤가 돌아다 보였다.

직원부부와 할머니들이 계시지만 하루 한번씩 안부전화 드리기와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에선 휴가도 완전한 휴가가 아니고 장소 이동만 하는게 아닌가~하는 착각에도 빠져든다.

할머니들께서 가다가 음료수라도 사 먹으라시며 봉투도 주시고 일대 일로 친분이 돈독한 할머니께서는

따로 돈 봉투를 주시는 기쁨도 있다.ㅎㅎㅎ

일주일을 다 채우지 말고 일찍 오라고들 하신다.

잔치상의 김치가 빠진 듯 해서 있는 반찬도 없어뵈고 집이 터~~엉 빈 것 같아서 싫으시단다.

갈치에 조기, 가자미 고등어에 쇠고기며 돼지고기까지.

육해공군을 다 총동원해서 장을 봐 드리고 야채며 부재료도 다 장을 봐 드렸건만 내가 없으니

어째 썰렁한게 싫으시다니 참...

맏며느리가 없으면 엄마 잃은 애기들처럼 안정이 안되고 뭔가가, 그러니까 2% 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랄지.

잡지 마셔요~

우리도 좀 누리자고요~

쪼매만 기다리셔요~

금방 일주일 지나가요, 들어가서 뵈요~ㅎㅎ

 

어젠 경주 친정으로 가던 길에 동곡재에서 늦은 점심으로 칼국수 해물 샤브샤브로 푸짐하게 먹고

저녁은 엄마랑 오빠와 함께 올케가 일하는 숯불갈비집에서 후하게 갈비를 구워먹었다.

오빠가 계산하기 전에 남편의 날렵한 몸이 먼저 튕겨 일어났다.

오빤 그러면 안되는 거라며 말렸지만 장모님 고기 한번 사 드린건데요...남편이 환하게 웃는다.

그럼 그래야지요.

엄마한테 얼마나 자주 더 사 드릴 기회가 있을런지...

다른 테이블에서보다 많은 고기가    우릴 포만감 있게 했고 늦게 나온 된장찌개는

아예 한우 갈비살을 푸짐하게 넣고 신경 써서 끓인게 표났다.

고소하고 쫄깃한 고기가 듬뿍들어간 된장찌개는 깔끔하면서도 맛이 좋았다.

엄만 자꾸 사위 그릇에 고기를 얹어주기 바쁘시고 고길 굽는 딸이 잘 못 챙겨 먹을까봐 안달이 나셨다.

건너편 오빠가 신경쓰일 지경으로 자꾸 챙기시니 민망도 해라~`ㅎㅎㅎㅎ

 

집으로 돌아와선 그 다음은 필름이 끊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뭘 상상들 하시는지요?

한잔해서 끊긴 필름이 아니라 이사 후유증으로    씻고 바로 좀 잤다~싶었는데

일어나 보니 이튿날 아침이었다.

올케의 퇴근도 못 봤고 오빠랑 남편이 밤 늦도록 경제부흥책(?)을 논 했다는데 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다.

제법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며 떠들썩하게 토론방을 차렸더라는데 난 감감~~

혼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자더란다.

남편은 그런 내가 건강을 잘 지키는 비법이란다.ㅋㅋㅋㅋ

언제  시장을  봐 왔는지 올케는 푸짐하고 얼큰한 해물탕을 끓여서 상을 봐 뒀고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고모가 세상 모르고 자길레 안 깨웠어.\"

\"그랬어?  많이 힘들었던 가 봐. 아이구...몸살 날라 그랴...\"

\"고모도..몸 좀 생각하면서 일하지. 하긴 고모성격에 일 보고 놀 사람도 못되지만.\"

그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아침 상에서 주거니 받거니    해물탕을 맛있게 먹고

엄마랑 헤어지는데 또 엄마는 날 망설이게 만드신다.

뭘 주섬주섬 다 꺼내시며 곧 죽을거니까 내가 해 준 옷들을 다 가져가란다 세상에나..

아무래도 약한 치매기가 있으신가 보다.

해마다 저러시니   난 올케가 크게 잘못한게 몇번 있었어도 단 한번도 안 나무랬다.

엄마가 저러고 계신데 내가 어찌 올케를 나무래랴...

열번이라도 감사하지.

내가 선물 받았다가 엄마한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드린 밍크코트며 숄, 앙고라쉐타며 가죽장갑

누비바지며 니트앙상블까지....

두 자루에다가 다 넣어서 내게 가져 가라신다.

돌아가시고 나면 누구든 기분 나쁘시다며 살아계실 때 누굴 주더라도 주라시며 기어히 끌고 나오시는데

나랑 오빠는 돌아가시고 처리해도 늦지 않으니까 살아계시는 동안에 곱게 입으시라면서 도로   장농에

넣어서 옷걸이에  차곡차곡 정리해 드리고 나서느라 진땀을 뺐다.

용돈을 드리니 또 뿌리치시고 난 손에 쥐어 드리는 몇번의 반복은 늘상 있는 일이다.

그러시면서 끝내는 받으실걸 왜 그러신다니...ㅎㅎ

 

엄마 집을 나와서 남해로 길을 잡았다.

중간에 새로 생긴 경주 휴게소에서 책도 두어권 사고, 무슨 빵 사달라는 모금함에 제법 많은 동전도 넣고

남해에서 하룻밤 밤 낚시도 할겸 내려 왔는데 고기는 잘 안 잡히고 밤 바람만 제법 쌀쌀해서 작전상 후퇴.

회 센타에서 우럭과 갑 오징어 광어든가 뭐 그런 흰살 생선을 회 해서 후딱 한 접시 해 치우고 지금은 숙소.

바다의 불빛도 보이고 창문을 열면 파도소리도 가까이서 들리는 제법   경치가 좋은 숙소지만

피곤했던 남편은 샤워 후에 곧장 쿨~쿨~~~

저요?

샤워하고 혼자서 숙소에 있는 컴으로 님들께 여행 경과 보고 중이지요~`ㅎㅎㅎ

아직 전라도, 충청도 , 경기도의 소식은 없으니 나중에요.

 

여행은 어딜가냐 보다는 누구랑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남편이랑 단 둘이서 느긋하게 떠나는 여행이라  무엇보다도 즐겁고

아내의 허리를 위해 새로 차를 바꿔준 남편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아내의 카페 지인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길을 싫은 기색없이 동행해 주는

아니지..순전히 일방적인 강요에도 기꺼이 기사를 자청해 준 남편이 있어 이 여행이 더욱 즐겁다.

카페 동호인들의 잔치도 큰 손으로 치뤄준 남편.

난 그런 남편을 위해 평소에 힘 닿는데로 솔선수범(?) 일을 도와주니    너무 계산적일까?ㅎㅎ

남은 여행길도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닌데 장거리 운전을 유난히 싫어하는 남편이 즐겁게 하도록

난 여우짓을 잘 해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