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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37

언니야~~


BY 통통돼지 2008-11-10

우리 애 네 살,  다섯 살때..

남편의 직장 발령으로 2년동안 경북 경산에 살았었다.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라고

내성적인 성격 덕에 학생때는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했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이 남달리 많이 필요한지라 두려웠지만

결혼후 바로 시댁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신혼이라는 기대에 들뜬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신혼 기분을 느끼기에는 남편 퇴근 시간이 너무 늦었다.

거기다 새벽에 전화 오면 자다가도 튀어 나가기 예사였다.

회사에서 사택으로 구해준 집은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여서 조용하기도 했지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덩그러니 그 아파트만 보이는 곳이었다.

애를 데리고 물어 물어 시장에 갔는데

사투리로 빨리 하는 말이 어찌나 생경하던지

도대체는 할머니들이 뭐라 하시는지 알아야 물건을 사지..

딱 한번 시장에 갔다 온 후로 장보기는 집앞 슈퍼에서 대강 해결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갈데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오죽하면  시댁에 언제 갈지를 손꼽았을까.

 

어느 날 놀이터에서 만난 우리 아이 또래 친구 엄마,

낯가림 많은 내가 움칠하고 뒷걸음칠 정도로 성큼 다가왔다.

훤칠하게 큰 키 때문에 올려다 보기가 민망해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당황해 하는 중이었는데

함박 웃음을 지으며  \'언니야~~\'하고 부르는 바람에

난 그만 녹아버렸다.

\"언니야~~ 언니라 케도 되제?\"

\"아..예..\"

\"엄마야..서울 말씨 억수로 이쁘네.\"

언뜻 들으면 싸우는것 같던 억센 사투리였는데

그녀가 하는 말은 애교 넘치고 사랑스러운 억양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타향생활은 확~~ 바뀌었다.

싹싹한 그녀를 통해서 아랫집 윗집 사귀게 되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누나 동생 오빠가 되고

내게 여자 형제가 없어서 이모가 뭔지도 몰랐던 우리 아이는

갑자기 이모가 여럿 생겼다.

하도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통에 현관문은 아예 열어놓고

엘리베이터 앞에 돗자리까지 깔아 놓았다.

엄마 닮아 소극적이고 조용히 혼자 놀던 우리 아들.

처음엔 집에 방문한 친구들로부터 자기 장난감을 보호하기 바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란 한 알만 삶아도 친구들을 잔뜩 몰고와 나눠 먹었다.

아이들 이름이 엄마 이름이었기에

그녀 이름은 나연이, 나연이 이모..

세 살 많은 나보다도 마음 씀씀이가 넓었다.

언제나 깔끔하고 물방울 하나 없던 씽크대, 우리집 행주보다 더 하얗게 빛나던 걸레.

같이 장을 보고 난 미처 정리도 못했는데 벌써 현관 앞에 와서는

\"언니야~ 오징어 싱싱하제?  내 껍질 다~ 벗겨놓고 왔다.\"

이건 뭐 소머즈도 저리 가라하게 손이 어찌나 빠른지..

 

가을 하늘을 쳐다 보다가 문득 옛 기억이 새로와서

밝게 터지던 그녀의 웃음과 낭낭하던 목소리가 그립다.

\"언니야~~\"

바로 옆에서 부를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