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시간 날 때마다 등산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학생때 산악부 활동으로 암벽 등반까지 했던 사람이라 산을 잘 탄다.
난.. 등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등산화도 지난 봄에야 남편이 사 줘서 신었다.
남편 혼자 가면 한 시간이면 정복할 코스를 나와 함께면 두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몸도 둔한데다가 겁은 어찌나 많은지
보통 하산이 쉽다는데 난 눈앞에 보이는 경사진 길이 무서워서 벌벌 떤다.
답답해서 큰소리 한 번 지를만 한데도
안하던 운동 한다는 것만으로 남편이 잘 참아준다.
시간 날때라고 해봐야 일요일 뿐이고
결혼식이니 모임이니 빼고나면 한 달에 한 번도 힘들때가 많다.
하지만 바쁜 시간 쪼개서 가는 거라 더욱 값지고
넘어지고 미끄러질까 두려워 집중해서 걷다보면
일주일간 신경썼던 일들을 잊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얼마전 북한산 백운대에서 하산하던 길에
우리 부부 바로 뒤에서 오손도손 얘기 나누며 걷던 아주머니들.
친구들인지 서로 나누는 얘기가 맛갈스러웠다.
남편은 쌩쌩했지만 난 힘에 겨워서 대화를 나눈다는건 생각 조차 할 수 없고
겨우 남편 뒤를 따라 가기 바빴는데...
\"얘!! 너희 딸 공부 잘 된대?\"
\"응. 열심히는 해\"
\"얘좀 봐. 너 간 큰 엄마다. 고3 엄마가 그게 뭐야?
애가 고3 이면 엄마도 같이 수험생이어야지.
다른 엄마들은 진학 설명회는 기본으로 다 챙기고
써브 노트에 정보 수집은 필수 라는데..
절이다 교회다 기도하느라 난리잖아.\"
\"나도 집에서 기도해!!\"
\"으이구. 어련하겠니. 너 그럼 이거라도 해.
거실이든 방이든 상관 없으니까 어디서든 동쪽을 향해서 108배를 하는거야.
그러면서 한 가지 소원만 빌어.
너 그 절하는 것도 은근히 운동 된다.\"
\"나 운동 많이 해서 절 안해도 돼.\"
\"야!! 가시나야!! 하라면 좀 해.
누구든 간절히 간절히 빌면 한 가지는 들어 준다잖니.\"
\"알았어. 할게.\"
\"야! 시큰둥하게 대답하지 말고 꼭 해. 아무데나 하지 말고 꼭 동쪽 향해서 해.\"
\"나 운동 많이 한다니까?\"
\"야~~~!!\"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절 하라고 시키는 분이 답답해서 소리를 질러 대는데도
상대방은 눈만 꿈벅 거리며 사오정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웃겨서 걷지도 못하고 남편은 저만치 앞서서 재가 왜 저러나 하는 모습이고..
그 다음날 부터 아침마다 남편 깨우면서 주문을 건다.
자고 있는 남편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얼굴을 쳐다보면서
\'사랑하는 내 낭군, 건강하게 해주세요. 하고 있는 일 뭐든지 잘 되게 해주세요.
세상에 나가 힘든 일 닥쳐도 맘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입 속으로 뇌이고는 볼에 확인 도장 뽀뽀 쪽.
처음엔 생전 안하던 모닝 키스를 하니 놀래서 눈을 번쩍 떴다.
이것 보다 성능 좋은 자명종이 없겠다.
몇번 하고 나니까 눈은 안뜨는데 싫지는 않은지 연한 미소만 짓는다.
내 주문이 당신에게 힘이 된다면 언제까지나 해줄게.
근데, 조심해요.
뭐 하나 잘못하기만 해봐.
그 날로 주문 내용이 바뀌는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