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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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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난 아줌마였어...


BY 솔바람소리 2008-11-06

일주일에 한번은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나오는 것이

낙이였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면서부터 그 낙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같이 있으면 벙어리처럼 조용한 녀석이 집에 아무도

없으면 늑대의 후예를 증명하듯 고음으로 울어재끼는

바람에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것이 조심스럽다보니

그리되고 말았다.

찜질방은커녕 이제는 목욕탕도 강아지 눈치 보며

다니다보니 어쩌다 가도 마음의 여유마저 없다.

지난 일요일에는 3주일 만에 벼르고 벼르다 목욕탕을

간 것 같다.

먹은 것이 모두 때가 됐는지 집에서 간간히 샤워를 하는데도

밀리는 양이 하수구도 막을 듯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웃부터 아들 동창엄마까지

안면 있는 사람들도 많아 때 밀랴, 인사하랴, 한증막에

들락거리랴 딸과 함께 2시간을 알뜰하게 보내고 옷을 입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갑자기

한증막에서 마신 냉커피 탓인지 방광의 팽창감이 느껴졌다.

집까지 가기에는 무리인듯 싶어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니

늘 외면하던 체중계가 눈에 떡하니 들어왔다.

흘린 땀의 양도 제법 있었겠다, 배출된 소변의 양도 무시할 순

없겠지...하는 마음으로 호기심 많은 딸래미가 볼세라 사뿐히

저울을 즈려밟고 올라갔다...

썩을 놈의 숫자는 여전히 과체중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상태에서

변화가 없었다. 세상 살아가며 신경써야할 고민들이 얼마나 많은데

까짓 몸무게에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담담한척 내려와서

옷을 주섬이며 꺼내 입었다.

나 말고도 몇 사람이 저울에 살포시 올라갔다가 심호흡 몇 번하고

내려오고 있을 때

갓 20살을 넘긴 듯, 풋풋한 숙녀 4명이 들어왔다.

조잘조잘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지들끼리 킥킥 거리며

각자 마음에 드는 번호의 옷장 앞에서 하나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명이 옷을 벗다말고 내가 들어갔던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한다는 말이,

“어머... 나 정말 당황한 거 있지!...” 라며

좀은 호들갑스럽게 무리 곁으로 다가가는 거다.

헉... 내가 뭔 실수라도 했나... 남자처럼 서서 일을 보다

조준을 잘못해서 소변을 흘려놓은 것도 아니고 일을 본

자세에서 휴지로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하고 일어났기

때문에 변기에 흔적을 남길 일도 없었는데 저 아가씨가

왜 당황 한 거지?

나 역시도 그 아가씨 못지않게 속으로 당황하며

귀를 기울였다.

“왜? 무슨 일이야?!”

친구들도 궁금했는지 아우성들이었다.

“세상에, 화장실에 잠금장치가 없는 거 있지!!!”

친구의 말에 낄낄 대며 ‘어머 웬일이니?’ 호들갑스런

맞장구를 쳐주는 아가씨에 ‘옷 벗고 하는 목욕탕인데 어때’ 하며

담담한 반응으로 초지일관 옷 벗기에 열중하는 아가씨까지

재잘거림이 조금은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잠잠해진 그들과는 달리 아가씨의 호들갑스런 말의 여운이

내 머리 속에서 메아리치듯 계속해서 떠다녔다.

잠금장치가 없어... 없어...없어...

난 잠금장치가 있고 없고도 관여치 않고 있었건만...

맞다... 나도 전에는 저랬었는데, 목욕탕에 들어갈 때도

죽어라고 빤스까지 고집하며 입고 들어가서도 수건까지

두르는 조심스런 몸가짐을 했었는데 말이지...

그런 상념 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아가씨가 저울 위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나 어쩜 좋아!!!”

“왜?!”

“나 47kg 나가!!!”

“어머, 어쩌다가!!!”

전생에 인연 때문에 현세에서도 만남이 이뤄 진다건만...

스치듯 지나가고 말 그들이 내게 준 자극은 무시못할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아가씨 키가 어림잡아도 160cm가 넘을 듯 하던데 그 정도에

47이란 숫자가 ‘어쩌다가’라는 걱정을 들을 정도로 초과된

숫자라면...

나는...이미...그들의 눈에 사람이 아닌 코끼리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흠...

옷을 모두 입은 내가 평상에 앉아서 딸을 기다리다

무의식중에 눈이 간 곳이 봉긋 솟아난 가슴과 맘먹게

나와 있는 나의 인격(?)이었다.

휴우...

늘 함께한 그 살들이 갑작스레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던지...

내게도 45kg의 꿈의 숫자를 덤덤히 저울에서 확인하던

때가 있었건만...

불혹이 멀지 않은 나이, 진즉에 아줌마 대열에 합류했던 내가

새삼스레 ‘아줌마’였음을 실감했다.

마음부터 몸까지 그들과 여러모로 다른 것을 씁쓸하게

받아들이려는데 이번에는 나보다도 10살 이상 연배의

이웃 아줌마의 호리호리한 몸매가 내 앞에서 알짱거렸다.

아...나는 20여분 사이에 무려 3번째 좌절감에 빠져야만 했다.

자전거 잘 타고 다녀, 술도 끊었어, 6시 이후에 잘 안 먹어,

이런 피나는 노력에도 저울의 숫자는 완강하기만 하다니...

좀 더 노력이 필요한 시기를 받아들이며 이번 주를

보내고 있건만...

 

오늘 밖에 나갈 일이 있어서 집 밖을 나서는데 나만치나

인격이 풍만한 옆집 아줌마가 볼 때마다 내게 했던 말을

변함없이 꺼냈다.

“어머... 요즘 왜 그렇게 살이 빠져요? 너무 이뻐지는 거

아니에요?“

저울을 확인하지만 않았더라도 조금은 착각 속에서 기쁨을

누렸을 그 대사였건만...난 현실을 직시한 상태였다.

 

“-_-;;; 볼 때마다 살이 빠진다니 이러다가 내가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어요. 하긴, 요즘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아 갈까봐 무서워서 담벼락을 짚고 다니긴 해요. 그러는

진수엄마도 나날이 얼굴이 헬쑥해요, 뭐 비결 있어요?“

 

내가 빈말에 한술 더 떠는 너스레를 떠니 옆집 아줌마가 숨이

깔딱 넘어가게 웃어버린다.

돈 안 드는 말이라도 서로 인심 팍팍 써주자는 정 넘치는

심성, 이 또한 정겨운 아줌마들의 너그럽고 푸근한 정이

아니겠나...

이렇게 나를 위로하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또 다른 걱정이

생겨버렸다.

요즘처럼 나를 다스리기에 여념 없는 나, 도통할 날도

머지않았다. 곧 현인으로 추대 받을 것도 같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려면 나는 얼른 땅덩어리

좁은지 모르고 늘어나는 내 뱃살을 자제시켜야만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