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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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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묻는다면...(2)


BY 새봄 2008-11-03

딸아이 청아는 고개를 쑥 빼고 우리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태어나 청아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 글쎄…….너 생년월일을 쓰라는 말이었는데 못 알아 먹겠드라니깐. 컴퓨터로 한참을 조사하더니 보내주더라니깐.”

이것이 엄마를 만나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고 붙잡혀 못나올 뻔했다니까 우스워 죽겠다고 웃는다. 포도 두 송이 뺏길까봐 조마조마 했다니까 자빠지며 웃는다.

 

나고야는 먹물빛 밤이라 여기가 일본인지 미국인지 한국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얼굴을 창문에 부비면서 봐도 우리나라 도로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버스기사님이 마이크에 대고 일본말을 하니까 일본이구나, 실감  나긴했다.

일본은 시외버스든 시내버스든 기사님이 직접 안내방송을 수시로 한다. 차가 밀려도 밀린다고 말하고 심하게 좌, 우회전을 할 때도 조심하라고 친절하게 방송을 해준다고 한다.

 

딸아이가 사는 곳은 나고야 공항에서 한 시간 떨어진 한적한 시골도시다. 밤이라서 어떻게 생긴 곳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학생들만 살고 있는 기숙사는 작은 아파트였고 방은 다다미가 깔린 방 두 칸에 냉장고 세탁기는 물론 밥통까지 있는 평범한 아파트 같은 곳이었다. 다만 집안에 들어서니까 다다미 퀴퀴한 풀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이 냄새가 일본을 온 날부터 일본을 떠나올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일본냄새라는 것을 알았다. 청아도 처음엔 다다미 냄새가 익숙지 않아 곰팡이 핀 요를 깔고 자는 듯 찝찝했는데 살다보니 풀숲에서 나는 냄새 같다나.

 

한국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마늘냄새가 나고 일본사람이 모인 곳은 간장냄새가 난다고 한다. 일본음식은 뭐든 간장이 기본으로 들어가서 우동도 간장국물이 진하고 일본시골장터에서 파는 떡꼬치도 간장을 묻혀 구운걸 한 꼬치에 우리나라 돈으로 이천 원에 사서 셋이 나눠먹었다. 간장에 담갔다 먹는 가래떡 같아서 별루였지만 그 장터에서 유명한 커피우유는 많이 달지도 않고 고소하니 맛있었다. 꼭 옛날 서울우유와 비슷한 병에 담겨져 있어서 기념으로 빈병을 가지고 와서 바위나리가 크고 있는 질그릇위에 올려놨다.

 

옷가방에서 꺼낸 포도를 보더니 청아 눈이 포도 알처럼 빛이 났다. 한 송이를 껍질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풋고추를 보더니 맞아 이거 먹고 싶었어, 한다. 여기 나라 사람들은 풋고추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청아를 사이에 두고 나와 상록이가 나란히 누웠다. 다다미 냄새가 오래된 가마니를 깔고 자는 것 같다. 눅진하고 까슬까슬한 냄새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이름 모를 새  소리가 들린다. 차 지나가는 진동을 느낀다. 다다미 냄새가 온몸으로 스멸스멸 기어들어온다. 빡빡한 여행스케줄이 짜여 있어서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창밖은 대나무와 밤나무 숲이다. 밑반찬에 쌀밥을 해서 아침을 먹었다. 부엌 쪽은 마루바닥이라서 걸을 때마다 쿵쿵 울린다. 변기가 놓인 화장실과 샤워실과 세면실이 따로 따로 분리가 되어있다. 굉장히 불편했지만 일본은 현대식만 빼곤 대부분 이렇게 분리가 되어 있다고 하니 여기가 바로 일본이구나, 실감한다.

 

빨간색 여행 가방을 하나만 챙겨서 버스를 타러 밖으로 나왔다.

차 방향이 우리나라와 반대라서 낯설고 겁이나 딸아이 팔짱을 꼭 끼고 다녔다. 도로와 인도사이 분리대가 하얀색이고 그 사이사이 노란 코스모스와 빨간 허브 꽃이 한들거려서 무척이나 예뻤다. 도로는 좁고 인도도 좁고 집들은 낮고, 집과 집 사이가 넓고 상점과 상점이 단독 주택이라 상점같이 않고 살림집 같았다. 마당마다 꽃과 꽃, 꽃과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상록이와 나는 사방을 구경하느라 두리번두리번 산골에 살다가 서울 나들이 나온 아이가 되어 버렸다.

 

버스 안내기둥도 낮고 작고 기둥마다 버스 시간표가 한 줄로 써 있다. 일본은 시내버스도 도착하는 시간이 정확하다고 한다. 기가 막히다. 도로가 밀리기도 하고 안 밀리기도 할 텐데 어떻게 시간이 정확할까? 정확하게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비를 미리 내지 않고 자동으로 나오는 표를 받는다. 은행에서 주는 번호표 같다. 내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때 일어나야 한다. 안전사고를 미리 방지하는 차원. 요금은 현찰. 기사님이 일일이 거스름돈을 챙겨준다. 거리상 요금이 달라서 요금 받기도 피곤할텐데 탈 때도 내릴 때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면서 버스요금을 카드로 찍지 않고 그 옛날 우리나라 시골버스처럼 현금으로 받는 것이 의아했다.

 

차창 밖 풍경에 우린 박혀 버렸다. 일본풍 낮은 건물, 앙증맞게 꽃을 가꾼 예쁜 정원, 아기자기 구불구불한 도로, 뒤로 댕겼다 손을 놓으면 앞으로 달려가는 장난감 같은 소형 승용차들, 분명 은행나문데 다르게 생긴 은행나무, 자전거 타는 할머니들, 일본은 자전거도 자동차처럼 등록을 한다. 개도 마찬가지. 버스요금이 비싸서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닌다고 한다. 바구니가 달린 은회색 자전거가 어디든 즐비하고 누구든 타고 다닌다. 청아도 그와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기아가 없는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타고 다니는 안장이 낮은 자전거.

 

시내버스에서 내려 온천지 고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상록이가 디카를 두고 내렸다고 한다. 생전 처음 와보는 외국여행에서 사진을 못 찍게 됐다니…….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일본 땅에서 한국말로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청아가 동생을 감싸고돈다.

상록이를 야단치려고 하면 청아는 내가 먼저 얘기해 보겠다고 하고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토닥토닥 타이르곤 했던 누나지만 이번일은 안되겠다고 나고야 시내 한복판에서 나는 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있었다. 청아는 동생을 뒤로 놓고 내 앞으로 와서는 버스에서 두고 내렸으니까 백프로 찾으니까 걱정 말라며 버스회사로 딸아이는 전화를 건다. 분실물 센터로 다시 걸고……. 일본말이 술술 나온다. 이렇게 일본말을 잘하는구나……. 잘 모르겠지만 더듬거리지 않고 유창하게 말을 잘하네...

 

청아는 중학교 때까지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 가정 형편상 뒷받침하기 힘드니 국문학 쪽으로 진로를 바꿨으면 했더니 그럴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일어문학쪽으로 부득불 가야겠다고 한다. 네가 한번 양보했으니까 엄마가 양보하기로 하고 욕심을 비웠다. 수시합격 그리고 성적이 좋아서 일본유학.

2년 동안 일본어를 파고들어서 어느 정도 읽고 쓰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막상 유학을 가서 강의를 들으니 태반이상 못 알아들어서 덜컥 겁이 났다고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강의도 못 알아듣고 두어 달을 책만 들고 왔다갔다. 생각 끝에 기숙사에 들어오면 무조건 텔레비전을 켜 놓았다고 한다. 처음엔 안 들리더니 점점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일본 보컬그룹의 일기를 매일 번역을 해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일본어 해석을 쉽고 편하게 잘해서 청아가 번역한 일기를 매일 기다리는 펜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디카 있데? 찾을 수 있데?” 마음이 급해서 통화를 하고 있는 청아에게 떠들어댄다.

누나보다 훨씬 큰 상록이는 풀죽은 얼굴로 누나 뒤에 붙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