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술에 취해 전화를 거신 아버지는 불효막심한
딸년에게 많은 말을 하셨다.
“딸...미안하다...아빠가 늦게 철이 들었다...”
“니들이...착해서... 협조를 잘해줘서... 아빠가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거다...“
“아빠...가슴 아픈 얘기 모두 쏟아내며... 백과사전 두께로도
몇 십권이 나올 거다... 그 속...아무도 모른다...“
“딸... 아버지는...요즘...모든 것이...가슴 아프다...농사를
지으면서... 내가...많은 생각을 한다...“
“니네 할머니가... 치매로...요양원에 계신다는데도... 나는
찾아가지 않았다... 아빠는... 모든 것이... 가슴 아프다...“
엄마와 나와의 전화 통화도 전화세를 운운하며 불평을
늘어놓던 분이 40여분 동안 토해내듯 말씀하신 얘기들이
나는 너무나 가슴 아팠다.
이성을 잃도록 마신 술에도 딸만큼은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할 만큼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셨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소외된 삶의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일찌감치 알았던 아버지는
외톨이로 홀로 살아갈지도 모를 딸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내렸던 매정한 선택이 딸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자식을 차라리 가슴에 품고 살더라도 아버지가 살아오신
험난함을 내게는 겪게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안아버린 딸을 봐야했던
아버지는 그 딸의 ‘죽음’을 결정지었던 것을
죄스러워해야 했고 자신의 엄마와 동생이 관여된 딸의
‘장애’가 또 다른 미안한 죄책감으로 가슴을 억눌렀던 거였다.
아버지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그런 것들을 품고
사셨던 거였다.
아버지께 맺힌 것이 맞았던 내 마음,
엉켜있던 하나가 풀리니 나머지는 자동으로 풀리는
마음이 되었다.
아버지의 백과사전 두께로도 몇 십 권 불량의 가슴앓이를
생각치도 못했던 나였기에 그 말씀의 충격이 내 머리를 망치로
강타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가슴앓이
내용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내 것밖에는 헤아릴 길이 없다.
아버지의 아픔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제 그것이 궁금하다...
엄마의 존재만 믿었던 나,
아버지와는 형식적인 부녀관계라고만 생각했다.
세상에 버거움을 ‘내 식구니까...’라며 믿던 가족에게
분풀이 하던 아버지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계에 손가락이 바스러지는 사고를 당했어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바람이 몰아쳐서 파도가 거센 목숨 건 바다, 그곳으로
‘내가 쉬면 가족을 굶긴다.’는 사명감을 안고 일을 거른 적이
없이 나가셨다.
사랑이 뭔지도 모를 거라고 내가 단정 지었던 내 아버지는
본 적 없는 사랑을 실천하려고 나름은 무던히도 노력했던
분이었다.
선원들만 데리고 할 수 있는 일도 꼭 엄마를 대동하던
아버지가 싫었는데...어린 날부터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아버지는 외로움이 성난 파도보다 무서웠던 거였다.
아버지와 통화를 한 날 밤에 나는 무척 울었다.
지난날이 떠올라서 울었고
부쩍 약해진 아버지가 가슴 아파서 울었다.
그리고 죄송해서 울었다.
흐느낌 소리에 깨어난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며 울었다.
함께 산 동안 내가 그렇게 서럽게 운 것을
몇 번 본적 없는 남편으로써는 걱정이 됐는지
끊였나, 하면 울고 끊였나, 하면 울어대는 내게
자꾸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넘쳐나는 사랑 속에서만
자란 줄 아는 남편에게 마지막 자존심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게 남편이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아빈이가 사고 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아영이가 뭐 속 썩여?”
역시 절레절레...
“그럼... 누구한테 사기 당했어?”
이 질문에는 대답을 했다.
“내게 사기 친 인간은 지금 질문하는
딱 그 입을 가진 사람이네.“
.
.
.
사람 마음의 간사함을 너무도 잘 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이
소녀 ‘심청’이 된 것 마냥 애달프게 표현하던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아버지께 좋은 모습으로
키워준 은혜에 감사해야겠다는, 한번 해본 적
없던 마음이 생겼다.
‘사랑해요.’ 하던 말에 스스로도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을 자신도 생겼다.
남편에게서 늘 아버지의 모습을 보던 내가
어쩌면 남편에게도 한발쯤 뒤로 물러나서
생각하고 대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살아가는 동안 내내 사네, 안사네 타령을
하다가 결국 못 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꽁꽁 얼었던 마음 한쪽에 봄이라도
온 것 마냥 뭔가가 싹을 틔우고 있는 것만
같은 희망이 생겼다.
오늘도 그것만 생각할 거다...
다음날 낮에 글을 쓰다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숙취로 고생하는 듯 조금은 지친 음성의 아버지께
세상 최고 효녀 같은 마음으로 수화기를 잡았건만
애교와 담쌓던 그 말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아빠는 딸 하나 있는 거 속 썩일라고 작정했어?”
하는 퉁명스런 말로 시작하고 말았다.
“그러게 말이다. 아빠가 전화 했다면서? 엄마가
그러더라...“
미안함이 역력한 말투셨다. 전날 전화한 것도
모른다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는 뜻...
하지만... 취중진담이었을 그 얘기들이었다.
“아빠... 나... 이제 정말 아빠 사랑해... 정말 그동안
아빠를 용서할 수 없던 부분들까지 모두 용서
했으니까... 아빠도 나를 용서해...“
울지 않고 하려던 말이었는데 전날의 아버지처럼
울음에 간간히 말이 뭉개지는 바람에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그려... 알았어...울지마러... 기운 빠지게 왜 울고 그려?
아빠가 괜히 술주정해서 딸래미 힘들게 했나보네... 다신
술 먹고 그런 실수하지 않을게...“
“아빠...”
“응...”
“아빠는 우리한테 할 만큼 한 거야... 할머니도 가슴
아프면 더 늦기 전에 다녀와요... “
좀체 울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울면서 말하다가 문득 생각 난 것이
갑작스런 딸의 변화에 혹여 취중인가, 생각할까봐서 끊기 전에
몇 마디 덧붙였다.
“아빠처럼 술 먹은 거 아냐... 그냥...자꾸만 아빠가 약해진게
속상해서... 나는 아빠, 엄마 없으면 안되는데... 아빠가 갑자기
그러니까 겁나구... 그냥 가슴 아퍼...“
아버지는 질질 짜는 내게 자꾸만 울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더 울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도 또 간간히 울었다.
울보가 되어 버렸나보다.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뭐하는 부녀 사이냐? 어제는 네가 울고 전화했다면서,
아버지가 가슴 아파서 혼났다구 괜히 술자셨다며 후회하더라.
넌 또 뭔 일이여...“
울보가 되어버린 나는 설명하면서도 또 울었다.
눈물에 있어서 국보급인 엄마도 함께 우셨다.
난 왜 그렇게 지난 것들만 후회하며 사는 걸까...
오늘 이후로의 내 삶에 후회 따윈 없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 살고 있던 친구가 방학 때마다
내려와서 시골의 시시한 학교와는 사뭇 다른
도심 속의 자기 학교를 자랑스레 떠들던 것보다
내가 부러웠던 것은 허물없이 아빠의 무동을 타고
놀던 부녀사이의 친근함이었다.
앞으로의 삶...
주워진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내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갖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느긋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제는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볼 때 삭막한 심정만은
아닐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