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털처럼 가벼운 누비 실크자켓 하나를 발견하고 뛸듯이 기뻣다.
오리털자켓보다 가볍고 더 따뜻한게 맘에 꼭 든다.
$5.99, 달러값이 올랐다고 해도 만원도 안되는 돈이다.
품질도 가격도 맘에 드는 옷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맘에 들었다.
맘에 들지만 사 놓고 한번도 입어보질 못했다.
내가 사는 텍사스는 따뜻한 곳이라 아직 누비 자켓을 입을 때가 아니었다.
남편이 한국에 가자고 했을 때 드디어 실크누비자켓을 입을 수 있겠구나 싶어 좋았다.
부엌 식탁 의자위에 걸쳐놓고 날마다 바라보며 한국 갈 날을 손 꼽아 기다렸다.
자꾸 바라보니 고질병이 도진다.
...언니가 좋아할텐데... 언니가 좋아하는 보라색이네...한국은 겨울이 추워서 나보다 언니에게 더 필요할텐데...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서였을까...한국 가는 비행기 안 온도가 낮다.
추워서 달달 떨었다.
보라색 누비 실크 자켓이 없었더라면 큰 일 날 뻔 했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 온도도 낮겠지...언니를 줄까 말까...
...언니는 실크를 좋아하는데...언니 줄 실크 티를 몇개 준비했으니 자켓은 주지 말자...
열 번도 스무 번도 생각을 바꿔가며 망설였다.
큰언니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도 내겐 엄마 같은 존재일 때가 많았다.
그 시절 내 또래 아이들은 겨울이면 손등이 터져 피가 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언니는 그런 내 손을 따뜻한 물에 때를 불려 깨끗이 씻은 다음 크림을 발라 보들보들한 손으로 만들어 주었다.
명절에 고리땡 바지 하나 얻어 입으면 호사하던 시절, 언니는 내게 까만 쫄쫄이 바지와 빨간 털쉐타를 맞추어 주었다.
까만 쫄쫄이 바지와 허리띠를 맨 빨간 털쉐타는 단숨에 날 가장 예쁜 아이로 바꾸어 놓는 마법의 옷이었더랬는데...
날 호사시켜 준 옷값이 꽃보다 더 예쁘던 울언니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고생하며 벌어 모은 피 같은 돈이었다는데...
그 뿐인가... 큰 언니는 둘째언니의 심술에서 날 보호해 주는 방패 역할도 했었다.
할아버지에게 불독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둘째 언니의 심술은 바로 아래인 내게 가장 심했었는데...큰언니가 있어서 견딜 만 했지.
둘째언니 기억엔 여우 같았다는 날, 지금까지 천사로 기억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ㅎㅎㅎ
결혼하고 남편과 첫 부부싸움을 하던 날, 친정엄마보다 큰 언니가 보고 싶었다.
미주알 고주알 이르지 않더라도 큰 언니 얼굴을 한번만 보면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절로 스러질 것 같았는데...
시어머니를 만났다.
오 년 만이다.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만 같이 많이 늙으셨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래, 난 큰며느리다.
둘째 동서도 세째 동서도 효부이고, 날더러 걱정말라고 하지만 시어머닐 보니 눈물나게 미안하다.
남편하고의 불화를 핑계 삼아 전화도 드리지 않았던 큰며느리 반겨주시고 야단도 안하시니 더욱 미안하다.
그런데 드릴 것이 없다.
입고 간 실크자켓을 벗었다.
\'어머니 이거 입으세요.\'
\'야야, 나 옷 많다.\'
\'알아요. 옷 많은 것 알아요. 그런데 이거라도 드리고 싶은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이거 가볍고 따뜻해요.\'
\'그럼 그래라.\'
\'어머니, 오래 사세요. 제가 후회하지 않도록 오래 사세요. 그래서 저도 효도할 기회를 주세요...\'
\'그러마...내가 오래 살도록 노력하마...\'
돌아오는 비행기 안도 추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쬐끔 걱정했는데 하나도 춥지 않았다.
울시어머니 내가 드린 실크자켓 올 겨울에 잘 입으실런가 모르겠다.
언니는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