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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악몽이.....


BY 그대향기 2008-10-28

 

하늘공원.

높푸른 가을 하늘은 서럽도록 맑고

단풍이 곱게 든 나뭇잎들은 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서

색색의 조막손처럼 지나가는 차들마다에

인사를 하듯이 팔랑팔랑~~손을 흔든다.

공원묘지를 들어서는 초입부터 가을이 익어간다.

지나가는 차들마다에 90도로 인사를 깍듯이 하며

조화를 사라 고운 미소를 던지는 꽃집 아줌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내려 4 송이를 샀다.

우리집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할머니들도 잠들어 계시는

공원묘지였기에 오랫만에 꽃도 갈아 드리고 인사도 할 겸.

영원히 시들지 않을 꽃.

영면에 든 사람 앞에 놓아 둘 사라지지 않을 꽃.

 

오늘 낮에 6년 전 돌아가신 고아들의 대모되시던 분의 기일에

공원묘지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고  돌아가신우리 할머니들도 만나고

그분의 며느님이 되시는 어린이집 원장님과 바닷가 횟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살아 계실 때 버려진 아이들이 안타까워 여자 혼자 몸으로

시장에서 난장에 앉아 장사도 하시고 머리에 물건을 이고

이 장에서 저 장으로 장돌뱅이가 되시어

아이들의 양식을 구하며 사셨던 그분은

숱한 고아들을 훌륭히 길러서 박사도 배출하시고

목사님도 , 사업가도, 교수님도......

대통령의 표창부터 유관순 상까지 많은 표창도 받으셨고

그 표창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분의 평소 생활모습이

여장부처럼 실천력도 추진력도 또 어떤 일을 구상하시는 포부도

남달랐던 점에 많은 인재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고아원에서 이탈해서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야간업소에서도

기웃거리던 아이들을 찾아 수십번도 마다않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듯 집을 뒤쳐나간 아이들을 찾아 다니셨던 그 분은

결국 그 아이를 찾아 공부를 시키고 가정을 꾸리게 해서

지금은 번듯한 직장에서 중역을 맡아서 있게 하신

아이사랑이 각별하신 분이셨다.

한알의 썩는 밀알이 되신 그 분의 사랑으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고 그 뜻을 이어 받은 아들과 딸들이 바르게 살고 있으니

세계 곳곳에서 그 분의 자식들이 중직을 맡아 일을 하고 있고

지금 그 분은 6 년 전에 돌아 가셨지만 그 분의 사랑을 이어받은

고아원에서 자란 아드님이 사회복지사로써

고아원 뿐만 아니라 복지사업에도 많은 관심과

노인복지에도 큰 일을 하고 계신다.

 

간단한 추도예배를 마치고 남자분들은 따로 점심을 하러 가고

우린 할머니들과 함께 며느님과 따로 바닷가로 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이나 주일 오후에 추도 예배를 그 고아원의 아이들과

다 같이 드리고 산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 나들이 형식 이었는데

올 핸 중간에 다른 행사가 겹치면서 아이들은 못 나오고 어른들만 드린 추도예배.

돌아가신 분의 깊은 뜻으로 지금의 우리 할머니들 거처가 마련된 만큼

우리 할머니들의 그 분 사랑은 각별하셨다.

또 그 분도 살아 생전에 우리 할머니들께 향한 사랑도 끔찍하셨고.

피를 나눈 자매동기간도 그런 사랑은 드물거다.

 

각설하고 오늘의 이야기는......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잠시 쉬는 시간에

그 며느리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큰 딸의 이름을 묻는게 아닌가?

\"은지 였던가요? 따님이....\"

\"아...우리 큰애요? 민지요?\"

\"아..민지요? 이번에 시집간 애요?\"

\"그 때 사고 난 애 맞나요?\"

\"사고요?  아 아...그 사고는 둘째가 났죠. 그 일을 기억 하세요? 아직?\"

\"그 날 행사가 너무 바쁘고 힘들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선생님으로 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엘 갔는데 민지 어머니께서 오히려 절 위로 해 주시더군요.

 바쁜데 찾아와 주셔서 고맙다고...애는 괜찮으니까 걱정말라고 하시면서.

 그 일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우리 마당에서 일어난 사곤데

 뭐라 운망도  안 하시고 괜찮다하시는데....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직원을 구하는 어머님 사무실에 민지 어머님이 계시더군요.

 마음이 참 좋았답니다.\"

 

벌써 17 년 전의 일인데.

그 날은 큰애의 첫번째 재롱잔칫날.

오후에 하는 재롱잔치라 둘째도 씻기고 막내는 포대기로 앞에 안고

제법 큰 어린이집 마당에서 다른 엄마들과 함께

강당으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데 둘째가 자꾸 미끄럼틀에 가잔다.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가서 그만 들어가자니까

한번만 타고 올테니 엄마 잔깐만~~하고 조른다.

한창 말을 배워서 뭐라뭐라 주문이 많은 둘째가

한번만 타고 온다기에

\"그럼 빨리 한번만 타고 와~\"

이르고 막내를 안고 마악 강당을 향해 들어 가려는데

미끄럼틀이 바로 옆에 있어서 금방 올 애가 안 온다 싶어

뒤를 돌아 보는 순간.......

애가 안 보인다 싶어 눈여겨 주위를 살피는데

둘째가 후진하는 엘란트라 차 밑에서 아...앙.....울고 있는게 아닌가 !!!

순간 피가 거꾸로 돌고 온 몸의 소름이란 소름은 다 솟아

힘은 또 어디에서 그렇게 나오던지.

막내를 안은 채로 날아가 듯이 달려가 차를 두들기며

\"애기가 차 밑에 있어요.

 차를 세워요. 차 문 좀 내려 봐요 !!\"

고함이 목을 통해 나오는데 절규가 되어 있었다.

애는 계속 차 밑에서 \"엄~마~아~앙\"

우는데 이 아줌마는 차를 그냥 또 앞으로 빼는게 아닌가 !!

 

차창도 안 내리고 애기가 차 밑에 깔렸다는데도

차만 앞으로 빼니 애는 차 밑에서

후진과 전진을 하는 차에 깔린 채로 있고......

차를 앞으로 뺀 아줌마가 그제서야 차문만 내리고

\"왜 그러는데요? 무슨 일 있어요?\"

전혀 사태 파악이 안 된 태연하고 귀찮은 얼굴이다.

\"차문을 내리랬더니 어찌 차를 또 앞으로 빼고 그래요?

애기가 차 밑에.....\"

눈물이 범벅이 되고 목소리는 쉬어서 차창을 두드리던 손은 얼얼하고

차밑에서 우는 둘째를 안아 올리는데

오...하나님.

이건 아닙니다.

어찌 이런 일이 제게.....

둘째의 얼굴엔 온통 피범벅이고 놀란 애는 거의 울부짖고 있는데

막내를 앞으로 안은 난 두 아이를 안고 정신을 놓을 지경이다.

그 때야 운전했던 아줌마는 사태를 파악하고 놀라서 허둥지둥....

같이 동승했던 아줌마들도 넷이나 더 있었는데

아무도 백미러를 안 봤던지 재롱잔치 마당에 꼬맹이들이

왔다가갔다가 했는데도 주의를 안 하고 그냥 후진을 했으니...

 

둘째를 안고 우는 내게 운전하신 아줌마가 당황해서

애기가 어떠냐고 많이 안 다쳤냐고 묻는데 난 그 말이 모기소리처럼

귓가에서 앵~앵~거리기만.

놀란 둘째는 피범벅이 된 얼굴인데도 자기 신발 한짝이 벗겨진 것만 찾는다.

\"엄마..내 신...내 신 한짝이 없어...잉..잉....아파...\"

\"응..엄마가 나중에 , 나중에 찾아 줄께. 아프지? 조금만 참자~..흑흑흑.....\"

계속해서 흐르는 피를 어쩔 줄 몰라하는 바보가 된 엄마는

둘째한테 아무 것도 못 해주는 무능한 엄마였다.

그 아줌마의 남편한테 전화를 하고 사고 차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차를 모는데

차 안에서 둘째한테 엄마 알겠냐고 물으니 응..응...대답을 잘 한다.

\"엄마 ...얼굴이 아파요. 피도 나요...\"

하나님.

둘째를 살펴주세요.

이 어린 것이 무슨....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둘째를 호송하고 정밀검사를 하는데

그 병원에는 뇌파검사나 다른 정밀검사하는 장비가 없다며

다른 종합병원으로 가란다.

불안감은 증폭되고 애의 얼굴에서는 연신 붉은 피가 흐르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 몸은 사시나무 떨리 듯이 와들와들...

그 때 까지 남편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당장 애의 상태가 어떤지만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 앞에 안은 막내가 잠이 깨어 칭얼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 고플 시간도 지나 있었다.

운전하신 분이 보다가 자기가 애기를 안을 테니 둘째를 안으란다.

난 그 때 까지 운전자의 얼굴도 자세히 안 보고 있었다.

왜 차를 자세히 안 보고 뒤로 뺐으며 차를 세우랬더니 또 앞으로

전진했느냐고만 잠꼬대처럼 말하고 있었다.

울면서 흐느끼며.....

 

그 분의 남편이 놀래서 달려오고 정밀검사실로 둘째를 밀고 들어가시며

연신 미안하다며 집 사람의 과실을 사과한다면서

어떤 검사도 다 하고 애기의 치료도 다 할 테니 걱정 마시란다.

무슨 치료를요?

이미 다 망가져 저렇게 피가 나는데요......

아무 것도 필요없고요, 아까처럼 멀쩡하게만 만들어 주세요.

속으로 야속한 대답에 혼자 울면서 그제서야 남편회사로 전화를 하러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 갔는데 그렇게 자주하던 전화번호가 한 자리도

기억이 안난다, 뭐지? 국번은? 뒷 자리는?

한참을 울면서 서 있다가 결국은 114 에 회사이름을 대고 물어서야 전화를 거는데

\"민지아빠......\"

불러만 놓고  울음보가 터지고야 말았다.

\"엉..엉....꺼이꺼이....있잖아요..둘째가..둘째가...\"

우느라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듣게 하는 아내의 말에놀라고 당황한 남편이

\"무슨 일인데? 울지만 말고 천천히 말 해 봐. 왜 그래? 둘째가 왜?\"

\"둘째가....엉...엉...둘째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래서 00 병원에 와 있어요.

 빨리..빨리 좀 와요. 나 너무 무서워..엉..엉...\"

겨우 그 말만 하곤 전화수화기를 놓치고 부스에서 다리가 풀어지고 말았다.

 

응급실에서 얼굴 소독을 하고 검사실로 간 둘째가 나오고 있었다.

결과는 나중에 나올거니까 일단은 병실로 입원수속을 잡아란다.

다행히 외상이 다른 곳에는 없고 얼굴에만 뒷 범퍼에 갈리면서

두피가 두껍게 벗겨지고 옆 얼굴이 모래에 긁혀서 상처가 났단다.

손도 발도 다른 곳에도 멀쩡하다니.....

차 밑에 깔려서 만약에 움직였다면?

아줌미 다섯이나 탄 승용차에 깔리기라도 했다면?

무섬증에 일어나기라도 했더라면?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둘째야 고맙다.

울기만 하고 가만히 누워 있어줘서 큰 불행을 막았단다.

그러고 있는데 남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응급실로 들이 닥친다.

\"어떻게 된거야? 둘째는 어때?\"

\"다른덴 이상이 없고 뇌파나 다른 검사결과는 나중에 나온대요.

 이 분이 운전하신 분이고...\"

그 분은 남편한테 연신 미안하다며 어떤 치료도 다 해 드릴테니 염려마시라며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그 남편분과 함께 진정으로 미안한 표정으로 한다.

 

남편은 큰 동요도 없이 덤덤하게 그냥 듣기만 한다.

둘째는 아빠가 일찍 오신게 반가워서

\"아빠~~나 사고 났어요. 언니 유치원에서.\"

\"그래그래. 많이 아프지? 곧 나아질거야.조금만 참자~`

 아빠가 맛있는거 많이 사 줄께\"

\"와~~신난다. 언니 것도 사 주세요. 네?\"

기특한 놈.

아프면서도 언니를 챙긴다.

얼굴의 상처를 소독하고 남편한테 애를 맡기고

우린 교통사고 조서를 적으러 인근 경찰서로 갔다.

그 경찰서에서 조서에 내용을 적던 경찰관이 아줌마가 운전하다가

애를 치었다니까 얼마나 혼을 내던지....

지금이야 여자 운전자가 많지만 17 년 전에는 크게 많지 않을 때 라서

\"집에서 살림이나 잘 하시지 여자들이 말이야..

아줌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요.

만약에 차 바퀴에 애기 다리나 머리가 들어 가기라도 했다면

아줌마 인생 망치고 애기 엄마 인생 망칠 뻔 했잖아요.

오늘 이 후로 운전 조심해서 하쇼 ~~!!알겠습니까? ??\"

인신공격까지 하면서얼마나 혼을 내시던지..

난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 하고 운전자한테 나무라거나 야단도 안 치고

경찰관이 하는데로 가만히 있기만 했고

그 후의 치료는 다른 부상이 없던 관계로 수월하게 지나갔다.

 

사고 당일에 재롱잔치는 계속되고 있었고

큰애는 엄마가 동생들 데리고 꼭 온다고 했는데

아무리 이쁘게 춤을 추고 연극을 해도 엄마랑 동생들이 안 와서

하는 내내 눈은 강당에 모인 엄마들 속에서 엄마를 찾았다가

실망을 할 때 쯤 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동생의 사고 소식을 듣고

원장님과 함께 병원엘 왔는데 눈만 둥그렇게 크게 뜨고 멍~하게 서 있었다.

눈엔 눈물만 그렁그렁.....

그 때 유치원 원장님은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고

난 둘째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마시라고 재롱잔치는 잘 끝났느냐고...

큰 소동 없이 잘 끝났다며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 운전자는 애가 입원하고 있었던 보름 동안 날마다 찾아 와 주었고

올 때 마다 인형이나 케잌 같은 고급 선물을 한 아름씩 들고 와선 기도도 해 주었고

미안하다며 거듭거듭 이야기 했었다.

한번도 운전자를 욕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던 나나 남편이 너무 고맙다며

애기의 그 어떤 치료도 다 해 줄거니까 편하게 치료 받으란다.

혹시라도 본인이 못 올 형편이면 전화라도 꼭 해 주던 그 분은

남편이 사업체를 제법 크게 하고 있었고 둘 다 교회를 나가시는

점잖으신 분이셨고 우린 애가 특별히 다른 소에 이상이 없었기에 감사할 뿐이어서

병실 가족들이 일러주던  보상 문제라든가 치료비 청구도 다 마다하고

둘째가 입원해 있던 보름 동안에 왔다갔다 한 교통비 정도만 받았다.

자해공갈단도 아니고 애기가 어쩌다가 다친 일로 팔자 고칠 일도 없기에

치료는 그 집에서 감당했고 입원기간 내내 정성으로 찾아 주셨던 사랑에

우리 부부는 모든 걸 다 덮어 주기로 했다.

다른 병실 가족들은 정신적 위자료니 생활비까지 다 받아라며 훈수를 줬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기에 우린 나중에 두피가 두껍게 달아난 자리에 머리카락이

안 나올 경우엔 머리카락 심는 성형을 해 줄건지만 물었고

기꺼이 각서를 적어 드리겠다며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고 헤어졌다.

 

그렇게 둘째의 사고는 끝이 났고

그 보름 동안에 막내는 경주 올케 손에서 자랐고

그 덕분에 모유를 끊어야만 했는데

그 이후에 지독한 우유 알레르기로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둘째는 다행히 활발했고 다른 이상징후도 후유증도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줬고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에도 여전히 운전자 아줌마는

인형이며 소꿉놀이 기구세트를 수입품으로 일절 갖춰주며 찾아오기도 했었다.

입학할 그 시기에는 학용품과 예쁜 원피스 ,가방까지 챙겨 주시던 고마운 분이셨다.

만약에 우리가 빠득빠득 위자료를 청구하고 욕을 하고 헤어졌더라면???

얼굴 붉히며 이놈 저놈 하면서 악착같이 어거지를 쓰며 성형수술비까지

청구하는 장면까지 연출했더라면??

둘째가 세살 때의 기억이고 17 년 전의 일인데도 오늘 그 사고 당일에 우리가

오히려 안심을 시켜 주었던 좋은 기억으로 우릴 또 한번 훈훈하게 해 주신다.

둘째는 그 날 그 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서울대라도 갈 거였다며 웃기기도 한다.

헤어스타일에 조금 애로가 있긴 하다.

뒤로 묶는 스타일은 가급적 피한다.

500 원짜리 동전만한 빈 자리가 있기에.

그 각서는요?

버얼써 없앴지요.

나중에 둘째가 돈 많이 벌면 한답디다.

 

지금은 그 분들하고는 연락이 끊어졌지만

좋은 인연인지 악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끄러운 얼굴로 헤어지지 않은게

참 다행이다 싶다.

아마 꾸준히 연락을 계속하고 있었더라면 많은 도움은 받았겠지만

한번의 실수를 너무 오래 두면 안 좋을 거 같아서

우리가 받은 그 사랑에 감사하며

둘째가 많이 안 다친 것 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멀리서 공부하고 있을 둘째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