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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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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버지...(7)


BY 솔바람소리 2008-10-28

아버지의 기쁨은 저축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 돈으로 땅을 샀고 남들보다

많은 그물로 제일 많이 고기를 잡는 거였고

제일 큰 배를 갖는 거였다.

누가 배가 두 척이면 아버지는 세척을 사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듯 했다. 내가 본 아버지는 그럴 때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허리띠도 아까워서 가는 밧줄로 동여매던 분이셨다.

엄마는 있는 돈을 모두 끌어 모아 아버지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로 당장 구멍 난 돈을 채우기 위해서 잡아 온

생선들을 장사꾼에게 하나도 넘기지 않고 홀로 선창가에서

늦도록 물건들을 팔곤 하셨다.

사람들이 선창가에서 자장면을 시켜 먹어도

두 분은 김치만 넣고 돌돌만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셨다. 그런 두 분에게 사람들은 농담처럼,

 

“그 돈 다 쌓아서 뭐 할 거야? 돈 독이 아주 바짝

올라서 보는 우리가 무서워...“ 하는 말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가 땅을 사고 배를 사고 그물을 살 때마다

힘들어하는 엄마가 가슴 아파서 우리도 이모네

못지않은 부자가 된다는 소식에도 기쁘지 않았다.

7살이 돼서야 겨우 걸음을 걸었던 나였다.

감기라도 걸릴까봐 엄마는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하셨다. 작은 먼지도 용납 못하고 닦아 주셨다.

그런 분이 나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냉정하셨다.

부실한 다리로 걷다가 넘어져도 일으켜 세우지 않으셨다.

때로는 매일 동생에게 시키던 심부름을 내게 시켰다.

조금 걷다가 힘이 들어서 무릎을 짚고 엎드리고 있으면

자세를 꼿꼿이 세우라며 가시돋힌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갑자기 변한 엄마가 무서워서 울어버리면 그마저도

용납지 못하고 냉랭하셨다. 학교에 들어가면 절대로 친구들

앞에서 울어도 아니 된다고, 울어버리면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여길 거라는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엄마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아버지는 또

그것을 이유로 엄마에게 욕을 푸짐하게 하셨다.

그런 날이면 나 때문에 울 엄마가 힘들어져 버렸구나,

생각하고 후회하곤 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있던 일을 조잘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누가 까불어서 패줬다는 얘기와 선생님의 질문에 손들고

대답했다는 얘기들을 행복해 하셨다.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는 강해야만 했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못된 사람... 어린 머릿속에 콕 박혀있던 마음이었다.

“딸, 세상에서 우리 딸이 제일 이쁘다.”

언젠가부터 아버지 술주정 속에 들어있던 대사였다.

그런 말을 하는 날은 그래도 괜찮은 기분이었는지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혹시 기분이

나빠지면 또 엄마를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싫어도 ‘헤헤’ 대고 ‘나도 아빠가 제일 좋아’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던 딸을 아버지는 술이 깨면

언제 그런 말을 했었냐는 듯 표정 없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버지가 나를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의 죽음을 바랬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도

왠지 아버지는 나와 함께 있으면 불편해보였다.

나를 엄마와 동생처럼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내가 뭘 하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못 타게 했다.

대중목욕탕에 나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에게 뭐라고 했다.

밖에서 꾸부정하게 앉아있는 것도 싫어했다.

늘 나는 집 안에서 있기만을 바랬다.

엄마는 아버지가 나를 걱정해서 그러는거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딸, 공부 열심히 해. 그림 잘 그리면 화가가

되라고 유학 보내 줄 거고, 공부를 잘하면

박사, 의사가 되라고 유학 보내 줄 테니까...“

라는 술 취한 말에도 아버지는 매일 나를

어딘가로 떠나보내려고만 하는구나...생각했다.

엄마를 위해서 가끔은 아버지의 손을 자진해서

잡기도 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은 손이 싫었다. 그 손으로 나를 토닥여도

싫었다. 나에 대한 배려가 차별처럼 기분 나빴다.

엄마를 때려놓고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엄마를 대하는 것도 싫었다.

 

“아빠는 돈에 한이 많다... 딸이 해달라는 것은

다 해줄 거야.”

아버지는 술이 기분 좋게 취한 날이면 내 얘기만 했다.

세상에서 제일 너그럽고 인자한 아버지같은 대사만

늘어놓았다.

그런 날이면 난 의례 다음 날이면 그런 말을 했던 것조차

기억 못할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미련처럼

똑같은 말만 했다.

“난, 아빠가 엄마를 때리지만 안았으면 좋겠어. 돈도

싫고 유학도 싫으니까, 엄마랑 동생만 때리지 말어.

알았지?“

고집스럽게 만지기 싫은 손까지 끌어서 손도장까지

찍었다.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자신을 싫어하는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뼈 속 깊이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아주 제 아버지랑 똑같이 닮았네. 아주 이쁘게 생겼어.”

이런 말을 했던 날이면 엄마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절망적으로 울어버렸던 딸의 심정을 눈치도 못 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