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행기는 왕잠자리 같은데, 우리가 탈 비행기는 풀잠자리만하네, 바람불면 날아 갈것같다, 그지?
인천공항의 가을 저녁 어둠은 비행기 속도처럼 빠르게 날아와 우리가 탈 풀잠자리 비행
기를 사뿐 감싸 안고 있다. 나고야로 갈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여행지를 정하고 비행기표를
컴퓨터로 뽑고 돈을 마련하고 하는 잡다한 수고를 딸과 아들이 다 하고 나는 여행가방만 챙
겨 들었다.
간단하게. 아주 간단하게. 여행 가방을 꾸렸다.
갈아 입을 옷 한 벌과 속옷과 양말, 그리고 딸이 사 가지고 오라는 라면과 미숫가루와 딸의
속옷과 밑반찬 몇가지와 일본 친구들에게 나눠줄 과자, 풋고추 한 봉지랑 포도 두송이.
일본엔 우리가 흔하게 먹는 포도가 없다고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 옷가방에 몰래 포도 두송
이를 마약 숨기듯 숨겨서 화물로 밀어버렸다. 그러다 걸리면 공항 직원 잡수라고 주면 되겠
지 뭐...
나고야로 향하는 아나항공 비행기를 예약하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과연 내가 그 시간
에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일본에서 딸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태
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을 한번도 떠난적이 없는데 외국땅을 밟고 구경하고 다시 내 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들아이와 함께 떠나는 일본행 비행기는 다른 비행기보다 훨씬 작았다. 공항 창안에서 내
려다본 비행기는 잠시 땅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잠자리들 같았다. 저녁행 비행기라서 일찍
수속을 마치고 상록이와 함께 빵과 차 한 잔을 들고 창 가까이 앉아 창밖 풍경을 본다.
“엄마가 외국 여행을 하게 될 줄 몰랐어, 신기하다.”
“전요 비행기도 처음 타 봐요.”
“다 네 누나 덕분이다, 그치?”
“엄마가 시간이 안 되면 상록이라도 보내, 내가 졸업하면 언제 일본엘 오겠어. 차비만 해서
보내면 알바한 돈 모아서 구경 시켜 주면 되니까.“ 이렇게 아들아이만 보내기로 한 것이 갑
자기 나도 함께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온천 호텔에서 묵을 수 있는 여행비를 딸아이가
마련을 한 것이다. 딸아이가 한학기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그 돈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
기로 딸과 결정을 하고 10월 첫째주 공휴일을 껴서 하루 휴가를 잡아 삼박 사일 일본 여행
을 하게 되었다.
가을 바람은 자잘하면서 여행가방처럼 간단하게 불었다. 햇살은 눈부시도록 맑고 유리창처
럼 투명했다. 여행용 옷은 사지 않았고 체크무늬 숄을 하나 샀고, 그 숄을 어깨에 멋스럽게
스을쩍 두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별의별 유명한 면쇄점을 주욱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내려 타며 어깨에 두른 숄이 살짝 내려올라치면 한손으로 휘익 우아하게 다시 어깨 뒤로
보내며 모노레일을 타고, 아나항공 비행기 삯이 좀 싸더니 구석지에 밀려 있나보다, 뭐 그
래도 비행기는 비행기니까 일본까지 잘 가겠지. 태풍은 안 불고 쭉 맑다고 했으니 북쪽으로
날아가지는 않을 것이고. 다시 한번 숄을 우아하게 어깨 뒤로 보내버렸다.
비행기 안은 한칸뿐이었다. 창가에 상록이가 앉고 상록인 앉자마자 디카를
꺼내 손바닥만한 비행기 창에 대고 밖을 찍어댔다. 승무원이 다가와 손동작으로 엑스자 표
시를 한다. 무안해져서 얼른 디카를 가방에 넣었다. 비행기는 발빠르게 내달리다가 이룩을 한
다. 잠자리 등에 타면 이런 기분일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귀가 먹먹하다. 상록이는 핸드
폰을 꺼내 들고 통화가 되는지 들여다 본다. 승무원이 와서 코팅한 종이판을 우리 눈앞에
들이 민다. ‘ 죄송합니다. 핸드폰을 꺼 주세요.’ 상록인 무안해서 얼른 핸드폰을 가방속에 넣
는다. “우리 말하는 승무원이 없나봐, 영어도 못하고...딴짓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 완
전 벙어리가 됐네.”
하늘에 붕떠있는 기분이 어질어질하다. 눈앞도 어질어질하고 귀도 멍멍하고, 말도 못하고.
공중에 발을 내리고 붕떠서 어디론가 끝임없이 날아간다. 침을 여러번 삼키고 멀미할까봐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해 본다.
한시간쯤 지나니 손바닥만한 정사각 종이도시락을 하나씩 배급해 주고 음료수를 실는 차가
우리 앞으로 차차차차 다가온다. 영어로 말해야 하지, 흠흠흠. 오렌쥐? 에펄? 그린 튀? 커
퓌? 으흐흐흠. 아고 떨려라. 차차 다가온다. 왔다.
“오랜지 원, 애플 원, 커피 원.”
승무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준다.
오렌지 주스 한잔, 애플 주스 한잔, 내가 또 먹을 커피 한 잔이 착착착 내 앞으로 내려와
식판 구멍속으로 쏙 들어온다.
“탱규” 히히히 뭐 별거 아니네. 헤헤헤.
상록이랑 나랑 신나서 먹고 마셨다. 도시락은 김밥과 샌드위치로 괜찮았고, 주스는 시큼털
털 맛이 별로 없었지만 생전 처음이라 맛있게 마셔줬다.
털컥 다시 한번 가슴이 철컹 내려앉으니 일본땅 나고야라고 한다. 슬슬슬 차츰차츰 비행기를
내 려 입국수속을 밟을 차례가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노란색 종이에 빈칸을 열심히 채워 넣
었 는데 그걸 재출하고 심사를 하는 것인가보다. 내 차례가 되었다.
근데 문제가 생겼는지 자꾸 뭐라고 하는데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딸아이 이름 밑을 가르키며 뭘
쓰라고 하는데....
우리는 여행목적이 아닌 친지 방문으로 일본을 들어오는 것이라서 딸아이 신상을 자세히 써
야하는가보다. 파밀리? 네, 패밀리. 마마? 네, 마더.
'아니 어쩌라고요? 우리 딸이 유학생이라서 딸아이 보러 온거라구요. 나쁜 사람아니라고요.
가방에 포도밖에 없다고요? 걸리면 드릴려고 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