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째 끼고 사는 강아지 한 마리.
토이푸들 종으로 갈색이다.
작년 직장 다닐 때, 엄마의 빈자리를 적응하지 못하는
딸래미가 ‘강아지’ 타령을 해댔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임 한분이 애견센타를 운영하는
동생에게 부탁을 했단다.
어느 날 그 주임이 내게 말했다.
동생이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놨는데 키워보겠느냐고.
결혼 전 ‘말티즈’를 키워봤던 경험이 있기에
그에 따른 일거리와 지출비가 제법 됨을 알았기에
선뜻 ‘네’하고 대답하기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그 강아지 다리가 약간 불편하다네...
나도 눈으로 직접 보지는 않아서 어느 정돈지는
모르겠지만 키우기엔 지장이 없을 거라는데...“
라는 말에
어디 써먹지도 못하는 ‘여린 마음’이
“그래요?...그럼, 가져오라고 하세요. 키워볼게요.”
하게 했다.
언젠가 애견농장의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장애가 있는 숫놈들은 보통 안락사를 시킨다는
무서운 얘기를...
내게 주신다는 푸들 역시 숫놈이라고 했다.
동정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공짜라던 그 강아지를 받을 때, 기름 값을 운운하며
달라던 5만원을 앙증맞게 귀여운 강아지 앞에
폴짝되는 딸을 보며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두말없이 값을 치듯 건넸었다.
집에 가져와서 걷는 모습을 보니 오른쪽 뒷다리를
살짝 절고 있었다.
‘내가 잘한 짓일까? 저걸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때늦은 걱정을 하게했다.
엄마의 고민 따윈 안중에도 없는
딸은 강아지 이름을 뭘로 짓느냐고 고심하며
몇 개를 주욱 늘어놓더니 저 혼자 결정짓고
“엄마, 해피로 할래요.” 했다.
길가는 강아지 10마리 중에 ‘해피’하면 5마리는
쳐다볼 흔하디흔한 이름에 다른 것으로 짓자니
영어 1년 배웠다고 한다는 말이,
“엄마, happy는 행복하다는 말이잖아요. 강아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란다.
똑 부러진 생각에, 말에...나는 ‘응’하고 말았다.
일은 저질렀지만 개라면 도리질치는 남편이 문제였다.
냄새에 민감한 예민한 성격에 개 냄새며, 똥, 오줌 냄새는
또 어찌할까...고민했지만 어차피 업어진 물이었다.
치러야 할 일이었다.
그 날 저녁부터 남편은 술 취해서 들어오면 ‘개새끼’를 때려
죽이겠다는 말로 엄포를 놓으며 딸아이를 울리기 시작했다.
몇 번의 그 일이 있은 후...성격 좋은 내가 견디지 못하고 했던
말이 있었다.
“개새끼 죽여 봐! 너도 죽고 나도 죽어!!! 그렇게 싫으면 집구석에
들어오지를 말던가!!!“
조심조심 나름대로 신경 썼던 며칠이 나도 힘들고 딸도 힘들었기에
이판사판 공사판, 어디 해봐봐봐... 싶었는데... 그게 먹혀들었다.
강아지도 일찍 집안 분위기를 파악하고 알아서 행동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가릴 것도 가리고, 아이들의 잘못에
두 녀석을 세워놓고 꾸중하고 있으면 저도 뭘 잘못한양, 아이들의
중간에서 귀까지 늘어트리는 반성의 기미로 앉아 있기 일쑤여서
그 모습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말처럼,
요즘의 불편한 심정으로도 나는 행복을 부르짖었다.
“해피야!!!~”
내 부름에 어디서 뭘 하고 있다가도 해피는 쪼르르륵...
곁으로 다가왔다.
개가 싫다던 남편도 이제 집에 들어오면 인사불성상태에도
‘해피’부터 찾았다.
화장실 바닥에 똥도 치워주고 오줌도 씻어 내면서
강아지 버릇 나빠진다며 아무거나 먹을 것을 주지 말라던
사람이 오히려 나의 제지에도 몰래몰래 자신이 먹는 것을
조금씩 떼어주기도 한다.
1년을 넘게 같이 살다보니 녀석 한다는 꼴이 영락없는
아기 같다. 때로는 사람보다 났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는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될 막둥이가 되버렸다.
‘해피’를 챙기는 내 모습을 옛날이나 지금이나
친정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셨다.
아이들 방학 때마다 내려가면 ‘해피’ 때문에
살짝 긴장감이 맴돌기도 한다.
첫 번째 ‘해피’를 안고 내려가던 날은
밖으로 내다놔라, 화장실에 넣어 놔라, 하시는 통에
혼날까봐 몰래 방 한쪽에 들어가서 눈물 짜는
딸을 대신해서 내가
철부지 어린 시절 곧잘 써먹던 협박으로
“나 밥 안 먹어.”를 남용했다.
두 번째 내려가던 전 날, 친정 아빠 하신다는 말씀이,
“그 개새끼는 집에다 밥 잔뜩 담아주고 놓고 와라,
알았지?“ 하시기에...
“아빠 딸이 그 개새끼 낳았어요. 얘는 더 이상
개가 아닌 내 자식이라구요.“ 라고 대꾸하니...
“-,.-;;; 환장하겠네...” 하셨다.
환장하겠다던 울 아빠... 식탁에서 딸이 강아지를
(조카들이 놀랄까봐)안고 밥을 먹는 것이 힘겨워
보였는지 얼른 식사를 마치시고
‘개새끼’운운하던 내 새끼 ‘해피’를
품에 안고 바깥 구경까지 시켜주셨다.
내가 안 보는데서 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딸 사랑 끔찍한 내 부모님 앞에서
남편이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언제 철이 들래...”
그 말이...그 모습이 내 눈엔 쓸쓸함이 느껴졌다.
철이 언제 들래, 이 말에 그때만은
속으로라도 ‘그러는 너는 철이 언제 들래?’하고
되물을 수 없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아득한 부모의 사랑...
부러웠을 그 사랑을...
왜 그리 제 새끼한테는 베풀지 못하는 건지...
‘해피 이야기’가 역시나...삼천포로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