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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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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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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런 기도 드린 적 없는데....


BY 그대향기 2008-10-13

 

 

전혀 뜻 밖이었다.

단 한번도 아버님을 우리가 아닌 다른 형제가 모셔가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최근에 참전용사로 등록이 되시고 부상도 인정되시면서 국가유공자 명단에

오르시고 매달 얼마간의 연금도 나오시게 됐고 , 사후에 국립묘지에 안장 하실 수

있는 특혜까지 나왔지만 , 아버님은 절대로 국립묘지엔 안 가겠다 하셨고

본인이 뭍힐 묘 자리를 지금 사시는 동네에 몇 백평 사 두시더니 그 것도 잠시.

우리 부부가 사 드린 땅에 집을 짓고 사셨는데 14 년이 지난 지금

그 땅 언저리에 묘를 서 달라고 떼를 쓰셨다.

묘를 서게 되면 최소한 15 미터 이상은 아무 건축물도 못 서는 악조건이 되는데도

막무가네로 집 옆에 마늘 심어 둔 밭에다가 묘를 서야겠다고 우기셨다.

남편이 좋게좋게 타 이르듯이 말씀드려도 외고개를 꼬시곤 고집을 걲지 않으시더니

느닷없이 어느 날.....

 

\"나 부산으로 이사 갈란다.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

 살던 동네에 가서 집 얻어 살다가 친구들 만나고 구경 하고 싶은데 구경하다가

 먹고 싶은 거나 실컷 먹다가 죽을란다.\"

.............................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밭 옆에다가 묘를 서 달라시더니 갑자기 어인 말씀을요???

아버님은 이제 자신이 없으시단다.

건강도 자신이 없고 소 키우시다가 두번 실패보시곤 의욕상실.

멀쩡하던 소들이 새로 들여 온 소한테서 얻은 브루셀라라는 질병으로

먼저 들여 온 병에 안 걸린 소까지 같이 생매장 해야 했던 악몽은 아버님을 많이

위축시켰고 , 물론 보상이야 있었지만 전액은 아니고 대부분이었지만

애지중지 키우시던 소들이 엄마소 송아지 할 것 없이 모두 생매장 하던 날의

그 참담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이 되겠는가.......

그것도 두번씩이나.................

우시장에서 소를 아무리 잘 알아보고 사 들여도 재수가 없을라하면

그런 치명타를 입을 수 있으니 그저 운이 따르기를 바랠 밖에.

브루셀라로 두번 무너지시고 또 간밤에 새로 태어난 어린 송아지가 원인모를

질병으로 엄마젖도 안 먹고 빌빌대다가 희생되던 날의 허무함......

너무도 추운 날에 송아지가 태어나면 밤 새 담요로 송아지를 덮어주고

타월도 젖은 몸을 닦아주었는데도 엄마 소가 제 새끼가 아닌 것 처럼 젖도 안 물리고

자꾸만 뒷 발길질을 하다가 송아지를 굶기면 우유병에다가 분유를 타서

애기처럼 안고 젖을 먹이는데도 다행히 소생이 되는 송아지도 있지만

어떤 나약한 송아지는 끝내 엄마젖도 못 먹고 분유도 못 먹고 희생이 되는 수도 있다.

그런 날의 무거운 침묵..........

 

아버님은 이제 몸도 마음도 다 힘들고 약해 지셨다.

처음 몇 년 간의 소 사육은 재미가 좋으셨다고 하셨다.

한마리당 수백만을 홋가하던 한우가격은 아버님의 통장을 부풀게 했고

한마리가 두마리 두마리가 세마리.....그렇게 불려나간 소가 서른마리가 넘었을 때

대단위 사육장이 아닌 일반 가정 집의 사육치고는 제법 많은 소가 외양간을 그득하게

했고, 아버님의 꿈도 함께 그득~했다.

그랬는데.....그 많던 소들이 한꺼번에 아버님이 보시는 앞에서 음~~메~~

소리내어 울면서 생매장이 되던 날의 그 처참했던 광경을 아버님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하시며 그만 하시겠단다.

그런 광경을 두번이나 목격하시고는 혈압으로 한번 쓰러지시고 회복은 되셨지만

말씀이 좀 어눌하시고 판단력이 조금 흐리시다.

그 와중에 당뇨로 인한 질병들이 속속 생기고 당 수치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허리까지  디스크 조짐이 있으시니 이 참에 모든 것을 정리하시겠단다.

 

집터에 묘를 서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실 때 당당하게 나서서 그 땅이 어떤 땅이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남편도 아버님을 달래다가는 그냥 시간만 좀 벌겠다며

기다리는 눈치라 며느리가 나서서 땅 값 내려간다고 \'묘 서 드릴 수 없는데요~`\'

그렇게는 정말 못 할 노릇이라 하곤 빛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사를 하시겠단다.

그것도 다음 달 초에 당장......

집은 부산 태종대 어딘가에 두칸짜리 독채를 전세로 얻어 두셨다니.

큰 아주버님이 주선해서 집을 얻어 주셨다니 참.....

그 동안 맏아들 노릇을 세째인 우리한테 다 맡긴 미안함에 명절 때 마다 편치

않으셨다는데 이번에 부모님을 곁에 두고 모시고 싶단다.

물론 집 얻는 돈은 아버님이 내셨고.

우린 전혀 준비가 안된 마음이라 기쁜건지 서운한 건지 모르겠다.

은퇴를 하면 그곳에서 꽃밭을 가꾸며 밭에 소일거리를 만들며 살려고 마련한 땅이라

아직은 은퇴시기도 아니고 마음이 스산~~하다.

 

14 년 동안을 아버님댁 일을 우리가 도 맡아서 처리하다가 그 일에서 해방이 되면

시원할라나? 아님 뭔가가 빠진 것 같은 생활일러나?....ㅎㅎㅎ

한국의 미니 타샤튜더를 꿈꾸며 찬찬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준비를 했는데

그 기회가 너무 빨리 다가오고 보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당분간은 아버님이 떠나시고 나면 빈 집에 청소나 해 두고 개천 둑 에다가

내년에 필 봄 꽃이나 씨를 구해다가 맘껏 뿌려야 겠다.

금계국이나 채송화....코스모스....붓꽃......송엽국등.......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으니 집 앞에다가 여러 크기와 모양의 붓꽃을 많이 심고 싶다.

 

아버님의 세금이나 전화요금을 자동이체 해 뒀었는데 이젠 부산으로 생활비를

부쳐 드리라고 남편한테 일러뒀다.

어머님의 용돈도 수시로 남편이 알아서 드렸는데 이제는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다른 형제들과 의논해서 얼마간씩 분담해야 될 것 같다.

소도 없고 밭도 없으니 자잘한 양념들도 다 사 드셔야 겠다.

여기서 보다는 생활비가 더 들건데 어쩌실지.......

우린 두분이 돌아가실 때 까지 같이 계실 줄 알았다.

당연히 모셔야 되는 줄 알았고......

이 밤.

마음에 뭔가가 맺히는 듯 개운치가 못하다.

아직도 두 분한테는 아는 척을 못했다.

남편한테만 듣고 직접은 아직....

어쩌면 안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 밭은 어쩌고 그 외양간은 또 어쩌라고.......

 

\"어머님.

봄이 되면 그 밭에 씨 뿌려 두셨다가 수확하러 오세요.

전 솔직히 꽃은 어찌하겠는데 농사는 좀...ㅎㅎㅎ

언제라도 별장 하나 시골에 있다~생각하시고

놀러 오시고 감도 따러 오실거죠?

어머님이 손수 기르셨고 번성한 그 꽃밭의 이쁜 꽃들이 울겠네요.

부산집은 여기보다는 좁다면서요?

다 못 가져 가시더라도 남겨 두시면 제가 돌 볼께요.

자주 놀러 오실거죠?

저도 가끔 갈께요.\"

 

\"아버님.

긍정적인 마음으로 부산에 가세요.

몸도 긍정적인 생각에서 많이 호전 된답니다.

2~3 년으로 스스로 생명선을 단정 지으시지 마시고

바닷가에서 운동도 하시고 친구분들 만나시면서 즐겁게 사세요.

아름답지 못한 추억일랑 여기에 다~두고 가세요.

대신 좋았던 시절만 추억하세요.

저희들이 섭섭하게 해 드렸던 점 많겠지만 용서하시고

이쁜 일들만 기억해 주실거죠?..ㅎㅎㅎ

멀리간 큰 손녀와 아직 공부 중에 있는 둘째와 막내 손자를 위해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기도해 주세요.

가시더라도 저희들 하는 일에 관심 가져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기쁜 마음으로 아버님을 모셔 왔었는데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었습니다.

아버님도 행복하세요~~\"

 

이사 하실 날짜까지 한달 여 남짓.

총회준비로 연일 동동거리는 바쁜 일정이지만

자주 찾아뵙고 서운하지 않으시게 마무리를 잘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