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이를 거꾸로 먹었나보다.
15살 아들이 엄마에게 위로처럼 해주는 말들이
적절한 구사로 표현될 때마다 얼굴이 화끈 거린다.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요?”하는
10살 딸의 질문이 ‘왜 우리를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세요? 낳았으면 의무를 다 해야 하잖아요.‘
하는 원망처럼 들렸다.
어쩌면 내 인생은 늘 이리도 지지리 궁상일까,
갈 때까지 가는 심정으로 막가는 인생처럼
고통에서 몸부림치며 뒹굴어 본다.
뒹굴다, 뒹굴다...허덕이다, 허덕이다...
아무리 그래봐야 소용없음을 느끼고 난 또 절망으로
막막해진다.
아이들과 TV 앞에 앉아있었지만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휴유우...”
한숨이 절로 흘러 나왔다.
“엄마,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TV만 보세요.”
낄낄거리는 딸과 달리 아들은 내 한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생각 없이 TV를 보고 있는 줄 알았던 녀석의
온 신경이 내게로만 향해있었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내가 아닐까...
남편의 어떠한 행동에도 태연하게 견뎌내지 못하고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가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아...어쩌면 나는 이리도 못났을까...
아이들을 놓지도 못하면서...버리지도 못하면서...
잘 보듬지도 못하고 있는 내가... 이리도 못났을까...
미안했다.
한숨을 쉬는 것도 미안했고,
눈물을 보이는 것도 미안했고,
좋은 아빠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고,
그럼에도 나만 힘들다고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인 것도 미안했다.
이가 갈리도록 남편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미치도록 원망하다 보면
다시 그 사람도 불쌍해진다.
집안에 ‘왕따’인 그가 불쌍타.
나조차도 나를 어쩌지 못하면서...
내가 누군가 변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욕심이 많은 나다...
이렇게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정리된 마음이
세상의 끝도 없는 고난 속에서
묵직하게 쌓인 원망으로 몸부림치는 날,
언제 그랬냐, 내가 언제 초연하게 정리된 적이
있었기나 했냐는 듯...변덕을 부리겠지.
생각에 지친다. 오늘은 그냥 정리된 것으로
끝을 맺을 거다. 그 후는...뒤로 남겨 둘 것이다.
어느 책 속에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내가 믿는 대로 거기 있다.>
믿고 싶다.
내게도 행복이 있을 거라고...
우리 가정에도 남들이 부러워할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못난 부모처럼 살지 않고,
우리 아들 남편을 공경할 줄 아는 현명한 여자
맞을 수 있을 거라고...
우리 딸, 세상 누구보다 존경할 수 있는
정감 있는 남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그때까지 살아서 지켜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모든 것이 내가 믿는 대로 거기에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