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남시민회관에서 이미자 공연을 보러갔다. 며느리가 예약을 해놓아 남편과 둘이 갔는데 꺼벙한 이 여자는 성남아트센타인 줄 알고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시간이 임박하여 포기하려다말고 다시 택시를 타고 성남시청으로 갔다.
며칠 전, 인터파크에서 문자가 왔는데 교통통제를 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했다. 예약해준 며느리도, 인터파크의 문자도 장소를 언급하지 않아 아트센타에서 이미자 사진이 걸린 벽보를 보고 당연히 아트센타에서 공연을 하는 줄 알았다.
물어서 버스를 타니 아파트단지마다 빙빙 둘러 간다 3시에 시작인데 버스에 내린 시간이 2시 40분. 대공연장까지 급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10분전. 딸에게 전화하니 한심한 엄마라고 꾸중(?)을 한다. 미리미리 나가지 않았다고. 난들 그러고 싶지.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야 말이지.
요즘 들어 부쩍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받아봐야 집에 들어오라는 마누라일거고 , 밥맛도 없는데 밥 먹으라고 채근을 할거고 배도 부르지 않는 담배만 피우며 아예 모른척 해버린다.
망원경이 있으면 구석구석을 뒤져 낚시대로 꼭 집어 올리고 싶었지만.. 1시30분께 어슬렁 집에 왔는데 기껏 차려놓은 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돌아서서 속으로 \'에이구 밉상 영감탱이\' 욕을 하고 국수를 삶아 대령하니 그제야 밥상 앞으로 앉아 먹는데 왜 그리도 천천히 먹는지 내 숟가락이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온통 남편에게만 신경이 쏠렸다.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예매하라고 하지말걸.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며느리에게 아버지가 이미자 노래를 좋아한다고 표를 예매하라고 했는데.
남편이 의외로 묵묵히 버스도 타고, 헛걸음으로 다시 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가는데 아무 말 없이 따라와서 늦었지만 (10분지각)가능했다. 택시 속에서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같이 공연보러 가지도 않지만, 버스를 타지도 않고 한번 헛걸음이면 티켓값이 얼마이든 집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다.
참 기가 많이 죽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편이 또 가여워진다. 슬그머니 남편의 손을 잡았더니 쏙 뺀다. (좀 잡고 있으면 어때서, 에구 밉상)
이층 뒷자리이지만 일급 가수를 내려다보는 맛도 괜찮다. 사회는 아나운서 김동건씨인데 역시 매끄러운 말솜씨다. 어느 공연이든 사회자의 역할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미자 이미지에는 잘 어울린다. 피아노를 담당하는 분도 나이가 꽤 들어보이고 지휘자와 악단들도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다들 연륜이 있어보였다.
역시 이미자는 우리 가요계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 하다. 내년이 오십주년이란다. 그렇다면 나이가 70이 다 되었다는 말인데 목소리는 어쩌면 그리도 맑은지. 사실 나는 이미자노래를 좋아하지않는다. 아는 노래도 많이 없다. 십년전, 남편이 도 문화회관장을 할때 초청공연을 한다고 나보고 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40대였고 발라드풍보다 포크송을 더 좋아했다. 타지에 있을 때라 심심하기도 하여 혼자서 공연을 보러갔었다.
한결같은 가느다란 목소리는 중반부터는 자장가로 들려 비몽사몽으로 앉아있다가 앵콜소리에 끝난 줄알고 일어났었다.
십년이 지난 지금, 남편의 언어장애로 인해 노래부르기를 연습하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이미자 노래를 많이 찾아내어 불렀다. 그러나 이미자노래는 대개가 처량하고 슬프다. 노래가사도 그렇고 리듬도 그렇다.
♪울어라 열풍아. 동백아가씨. 빙점, 여자의 일생, 황포돛대, 여로,기러기아빠...... 남편에게 부르게 하려고 가사를 적다보니 죄다 여자의 슬픈 운명을 한탄조다.
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니 이미자 노래를 많이 불렀고 그 덕에 많이 알게되었다. 새삼 가사를 음미해보니 우리나라 여자들의 한을 구구절절이 엮어내어 요즘의 내가 노래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가슴이 애절해 지면서 엘레지 여왕의 노래에 손바닥을 마주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십년의 세월동안 나도 그 노래의 세월 속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미자는 위대한 가수다. 옛날 여가수들이 가끔 가요무대에 나와서 노래를 할 때 목소리가 많이 변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는데 어제 이미자의 노래는 전혀 세월을 느낄 수가 없었다. 과연 한국가요계의 큰 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