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등 1학년 다닐 쯤 겨울이었던 것 같다.
늦은 밤 술 취해서 들어 온 남편의 억지스런 말 주정에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죽어서 없어진다면 정신을 차릴 인간이다, 란 마음에
“내가 콱 뛰어 내릴까? 그래야 끝낼래?” 독을 품고 말했다.
“뛰어 내려 봐라, 한번.”
이죽거리며 대꾸하는 남편의 표정에는 여유까지 있었다.
반 지하덕에 2층이지만 3층에 가까운 연립의 베란다 문을 열고서
나는 뛰어 내렸다.
그러면 끝날 줄 알았었다.
살아서는 끈을 놓을 수 없는 내 자식들과의 연도...
큰 충격에 몸을 가눌 수는 없었지만 내 의식은
깨어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119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뛰어내려봐’ 하던 남편이 보호자로 동승을 했다.
순간에 모든 것이 계획된 것 마냥 진행되어갔다.
내 삶이 코메디도 아니고... 웃기는 상황의 연출이었다.
술 취한 남편이 연실 ‘왜 그랬어... 제 승질 못 이기고...’라며
오열하듯 술 냄새를 피웠다.
나를 병원 측에 이송한 구급대원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부부 싸움을 하다가 뛰어 내렸나 봐요.”...
말할 수 없는 통증에도 의식이 뚜렷한 것이 나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건 아닌데...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안되는 거잖아...
죽을 수 없을 거라면 그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다구...‘
그 상황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연괄 될지 복잡하기까지 했다.
우리의 상황을 너무도 잘 아는 한분이 술 취해서 정신 못 차리는
남편을 대신해서 보호자 노릇을 자처했다.
화려한 병력 덕에 대학병원에 이송됐지만 내가 다니던 고정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엠브란스에 실려야 했다.
남편이 ‘왜 그랬어’를 연발하며 내 다리 부근에 널부러져 걱정에
애타는 듯 몸부림쳤다.
남들은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안쓰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울부짖으며 내 다리를 있는 힘껏 깨문 것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2차적으로 실려 간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지 얼마나 됐을까,
결혼한지 1년도 안된 큰 남동생이 올케와 달려왔다.
나의 상태를 지켜보던 동생도 이성을 잃은 듯 남편을 죽이겠다고
멱살잡이를 하고 끌고 나가려고 했다.
“내가 씨팔 직장을 그만 두고 감방을 가는 한이 있어도
너란 인간 그냥 안둬!!!“
사람들이 말려도 동생의 분은 숙으러 들지 않았다.
청와대 안에서 근무하던 경찰의 신분은 밖에서까지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다. 여차하면 옷을 벗기 쉬운 곳이었으니까.
나 때문에 동생까지 망칠 수는 없었다.
있는 힘껏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조용히 있지 않으면 기어 내려가서
찻길로 나가겠다고 했다.
남편에게서 떨어진 동생이 밖으로 나갔다 얼마 만에 들어왔다.
주먹 언저리에 핏기가 맺혀있었다. 벽을 때린 게지...
“이제 좀 끝내 누나.”
“애들은...”
“애들이 누나 인생 대신 살아 줘?”...
동생이 가고 다음 날 엄마가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가래도 가지 않고 버티고 있던 남편을 이번에는
엄마가 멱살을 잡았다.
남들의 시선 따위, 체면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엄마의 몸은 분노로
딸리기까지 했다.
“니 새끼들 불쌍해서 감방에 쳐 넣지는 않는다.
너란 놈이 감히, 내 딸을... 언감생심, 연애질만 아니었어도
너란 놈이 처다 볼 수도 없는 애야.
호강은 못 시킬망정 애를 이 꼴을 만들고 어디라고 버티고 있어?!“
고래고래 소리 치셨다.
그래도 남편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 오기를 한때는 사랑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남몰래 내 다리까지 깨물며 나를 원망하는 비열함에
진저리가 처졌다.
내 몸을 여러 번 수술했던 의사가 회진할 때 올라왔다.
“왜 그랬어요... 내가 살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엄마는 또 얼마나 고생을 하셨어요. 병원에 입원하고 싶으면
나를 찾아요. 아무리 환자가 밀려도 만들어 줄 테니...“
강산이 한번 바뀐 세월을 뒤로 하고 만난 의사 선생님의 모습도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내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셨다.
아이들을 낳을 때도 왔던 곳이지만 선생님을 일부러 찾아뵙지는
않았었다.
떨어질 때 엉덩이가 바닥에 먼저 닿았나보다.
계단으로 떨어져서 굴러 내릴 때 내 몸은 나무토막같이
뻣뻣했다. 통제할 수 없었다.
엄마가 몸을 몸 가누는 나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 내렸다.
엄마 손이 허벅지쯤 닿았을 때
또 다른 통증이 일었다.
“여긴 왜 이래... 무슨 멍이 이렇게 들었지...?”
몸을 일으켜 엄마가 보고 있는 곳을 보았다.
타원형의 <0>자가 까맣게 그려져 있었다.
남편이 깨문 자리의 독기가 그대로 있었다.
남편은 병실 밖에 있다가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들어왔다.
“괜찮아?...”
“괜찮아서 미안해!”
“무슨 말이야?...”
“뛰어 내려서 죽었더라면 이런 수모 당하겠어?”
“......”
내 말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술이 말짱하게 깨어있었다.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 술 취해서 하는 말은
앞뒤조차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늘 불만을 안고 살았다.
해도 해도 안되는 세상 탓, 바가지 긇어대는 마누라 탓...
못난 자신의 탓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말리는 부모님께 끝내 이런 모습 보일 줄 알았더라면
큰 애 뱃속에 있을 때 차라리 떼어 버릴 걸...
살다보면 나아지겠지, 했던 마음이 착각임을
깨달았을 때 둘째까지는 낳지 말 것을...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때 늦은 과거들을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