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는 똥 눌 때가 제일 싫어요.”
변기에 앉은 딸이 말했다.
“속이 자꾸 이상해져요.”
내가 대꾸할 새도 없이 이어서 한 말이다.
“그런데 나올 때는 시원해...에...요...끄으으...응...”
힘겨운 효과음까지 적나라한 표현 앞에 내 신체
일부 중에 어느 한 곳에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 엄마 저는 이제 행복해요.”
.
.
.
딸이 행복해하는 화장실과 멀지 않은 거실에서
나는 점심때 친구와 먹었던 수제비가 입에 맞지 않아
반 이상을 남긴 것에 대한 공복감을 이른 저녁상으로
달래고 있었다.
아줌마가 되고 보니 사람은 밥 힘으로 산다던 어른들의 말씀들에
공감 하게 되었다.
그래서 먹기 싫어도, 남길지라도 꾸역꾸역 한 술씩
의무감으로 채울 때가 많아졌다.
상 차리는 것도 귀찮아서 대접하나에 밥을 조금 덜고
김치찌개, 멸치조림, 계란찜을 한 그릇에 몽땅 담고 보니,
바둑이도 마다할 모양새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는데
학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가방을 팽개치더니
“엄마, 다녀왔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곤,
화장실로 후다닥... 이내 시작된
리얼리티를 화장실에서 행하고 있었다. 문까지 활짝 열고서...
딸과 엄마사이에는 창피할 게 없는 거라고 가르쳤다.
애긴 줄만 알았는데 벌써 가슴 가에 볼륨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속 옷 한번 갈아입을라치면 누가 볼까
좌불안석이다. 제 엄마 앞에서까지.
언젠가는 밥상 앞에서 새어나오는 방귀를 통제 못했다고
얼굴까지 붉혔다.
“괜찮아. 엄마니까...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조심해야 돼...“
세상 살아가며 봐야 할 눈치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격한 나지만 엄마와 딸의 끈끈한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개방된 사람이고 싶었다.
나와 내 엄마가 살아가는 것처럼...
친정엄마는,
김치는 손으로 찢어먹어야 제 맛이라며
커다란 대접에 썰지 않은 포기김치를 푸짐하게 담아내어 오신다.
그 중 김칫 잎 하나를 집어 올려서 손으로 결을 내어 찢어내신다.
그리곤 불혹이 멀지 않은 딸의 밥숟갈에 올려주는
수고까지 자처하고 나선다.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밥술 뜰 때마다 잊지 않고 올려주신다.
그때마다 양념 묻은 손가락은 연실 엄마의 입속에
들어가서 세탁되어 나온다.
“엄마... 내가 먹을게...”
“더러워서 그러냐?”
“...아니... 엄마 힘들까봐 그렇지...그리고 애들이 흉봐...”
“이년아, 전에는 김치가 매울까봐 입으로 빨아서 먹였어.
그뿐이야? 질긴 것은 씹어서 먹였어...“
한번 씩 친정에 내려갈 때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집안에 먼지하나도 용납 못하시는 깔끔함으로 청결하신분이
이상하게도 식탁에 놓인 김치와 나와의 사이에서만큼은
미개한 중재(?)를 고수하신다.
딸 사랑이 지나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겠기에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매번 쉽지 않다.
“안 더럽다니까...나는 지금도 울 엄마가 빨아주면 먹을 수 있어.
엄마 침은 로얄 제리~!“
우스갯소리로 스물 스물 넘어가려하지만 정말 그러면
어쩔까 두렵기도 하다.
모두들 각별한 우리모녀 사이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2남 1녀 중, 장녀인 나...
18살에 날 낳으신 엄마와 나와의 나이차는 17년.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를 내 언니쯤으로 여길만큼
우리는 비슷하게 세월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감사한 일이다.
내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나 역시
딸과의 유대감을 고집해가고 싶다.
하지만...
딸의 행실머리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식사하시는 엄마의 덩치가 개미만해서 보이지
않았다면 몰라도...실눈만 떠도 보일만큼
코끼리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제 엄마의
식사 중에... 이 어인 행실머리인지...
나는 그대로 몇 숟갈 남지 않은 밥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행복해하는 딸이 손을 씻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화장실 밖으로 나온 딸이 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 왜 밥을 안 드세요?”
“네가 너무 행복해하니까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왜요?...”
“넌, 부끄러움의 기준이 어디야...”
“...?...”
“목욕 시킬 때 보는 것도 창피하다면서 볼 일 보는데
화장실 활짝 열어놓고 중계방송까지 하고...
너 행복해하는 과정을 엄마 말고도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알아 버렸을 걸? 이제 5학년이 멀지 않았는데
너 그러면 되겠어? 그리고 뭣보다도 엄마 밥 먹는 줄
알았다면 문 정도는 닫아줘야 예의잖아. 물까지는
못 틀더라도 말이야...“
그렇게 이어진 잔소리는 한동안 이어지고 말았다.
치아 교정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곁에서 지켜보는 나는 안타깝다.
남편과 나와의 사이가 어떻든,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밝게 커간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나는 점점 내 엄마께 드렸던
지난날의 불효들을 새삼 떠올리며 뒤늦은
반성들을 하게 된다.
며칠 전, 막내 동생이 잠시 다녀갔었다.
그 주에 동생이 집에도 내려갔었단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많이 아프냐고... 살이 많이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속상해하셨다.
늘 자식 일에 걱정이 마를 날 없는 분...
“엄마... 나 벌 받나봐. 엄마 속 썩인 거...”
“니가 무슨 엄마 속을 썩였어?”
“매일 아파서 힘들게 했잖아... 아영이 치아 교정 하는게
많이 힘든가봐...내가 대신 받을 수도 없고...“
“그 놈의 가시나, 지가 이겨낼 수 있다고 해놓고
힘들다고 징징싸서 지 엄마 힘들게 해?“
예뻐하는 손녀딸인데도 딸 앞에서만큼은 팔이 안으로만 굽는다.
우리 형편에 딸의 치아교정은 큰 걱정이었다.
650만원...
남편은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해준다고 했다.
내 고민을 지켜보던 딸이 학원에서 배고프면 사먹으라고
준 돈 천원으로 빵 한 개, 볼펜 1자루와 예쁜 메모지를
사서 건네고 방으로 쏙 달려갔다.
<엄마, 제 치아 교정 때문에 힘드시죠? 그래서 선물을
샀어요. 힘내세요.>
외모에 예민한 딸이다.
내성적인 성격이다.
내가 있는 동안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며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이런 나를 내 엄마는 안쓰러워한다.
나 역시 내 딸이 받고있는 고통이 안쓰럽다.
엄마께 보답해야 하는데 내 새끼만 챙기기에 급급하기만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