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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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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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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감히 행복합니다.


BY 길가는 나그네 2008-10-06

중학생 때였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소질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며칠을 고민했던 것 같다.

내 소질은 무얼까...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운동... 보는 것도 별로.

그림과도 거리가 멀었다.

손재주도 없었다.

생긴 것으로 먹고 산다면 딱 굶어죽기 싶상...

선생님 말씀이 잘못 된 것은 아닐까, 싶어서 반 친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정말 다들 잘하는 특기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에 왕 비듬은물론, 콧물까지 마스코트처럼 매달고

다니는 볼품하나 없는 학급의 천덕꾸러기도 가창력만큼은 인정

받아서 선생님들께 ‘훗날의 조 용필’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럼 나는...

기계로 찍어내는 공장 물건에도 불량품이 나온다는데

신이 만들었다는 사람 중에는 불량이 없을라구...

인간으로 태어나서 아무 재능 없는

박복한 확률에 당첨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아닐런지.

신의 잘못이 아니라면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쯤,

삼신할머니께서 바쁜 업무에 시달리느라

피곤해서 신께서 점지해주신 나의 특기를 챙겨서

내보내는 것을 깜빡 잊고 쓸모없는 몸뚱이만

내보냈나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도 나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야 했다.

“야, 너 그림 좀 그리잖아.”

“색칠이 안돼.”

“......”

“음...우리들 잘 웃기는데, 개그엔 소질 있잖아...응원단장도

잘하는데...”

“먹고 살 정도는 아니야...”

“......”

“노래도 못 부르는 것은 아닌데...너 합창부잖아..”

“성학으로 인정받아서 유학 갈 정도라고 보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착한 것들은 오히려 나의 눈치까지 살피며

내 특기에 대해서 숨은 그림 찾듯 했다.

“그렇게 따지면 뭐...우리도 먹고 살만하게 잘하는 것은

아니잖아...“

나중엔 친구들까지 내게 전염된 듯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고민하는 상황까지 만들곤 했다.

“니들은 돼. 확실히 돼. 너는 화가, 너는 요리사,

너는 현모양처, 너는 선생님...너는 디자이너...“

나의 확신에 찬 말에 그 애들은 금방 밝아졌다.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대해서는 빠른 해결점을 찾았던 것 같다.

옛날이나 지금이나...그마저도 같잖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나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특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희열(?)감에 기뻐했다.

글쓰기...

그때부터 훗날의 유명한 소설가를 입버릇처럼 노래했다.

자만심에 글쓰기가 우습기까지 했다.

몇 해 전인가....

그림을 즐겨 그리던 한 분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곁에서 함께 고민을 해주기는 했지만 뼛속 깊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리면 되지 왜 못 그려...이상하네...차마 뱉지 못한 말들을

속으로 삭이며.

어쩌다가 ‘아컴’을 알게 되었고 글을 쓰기 시작할 쯤,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던 나는 다른 이의 글을 읽어보기보다

내 것들만 풀어놓기에 급급했다.

조회수를 확인하고 리플을 확인하며 사람들의 평가들에만

초점을 맞췄다.

나의 지난 업적(?)을 ‘솔직함’이란 명분으로 펼쳐보였다.

.

.

.

나의 실수들이 하나 둘씩 느껴지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난관이 어느 분의 아픔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의 재주가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나의 솔직함이 경솔함으로 비출 수도 있다는 것을...

나의 지난 글들이 오히려 변명처럼 비굴하게 느껴졌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것들이 글이 아닌 낙서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한순간에 반성처럼 밀려든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글을 운운하지 못했다.

쓸 수도 없었고 읽을 수도 없었다.

그림을 그릴수가 없어서 힘들다는 분의 말씀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때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때는 일부러 연필을 잡고 낙서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책상에 앉아보기도 했다.

두 줄을 채울 수가 없었다.

나의 고통이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면 얕은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이렇게 헐떡이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안다.

변덕을 스스럼없이 떠들던 내가...

며칠을 세상 다 산 것마냥 떠들던 내가...

.

.

.

오늘은

행복하다고 표현하려 한다.

또 다시 글을 보며 절망할지언정,

오늘의 이 일조차 후회할지언정...

무언가를 다시 떠들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행복함을 느끼려한다.

지금 나의 심정은...

뇌출혈로 쓰러진 환자가 남들에겐

볼품없는 폼새라 보여질지언정

자신의 힘으로 한발을 내딛은 것에 대한

기쁨과도 같지 않을까...

첫 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다시 뭔가 해보고 싶어졌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