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의 치기로 행했던 자살기도.
늦은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어야했던 지독한 삶의 방황이 무질서한 독서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접한 책들이 다 회색빛 책들이였다.
우울 죽음 자살.
까뮈의 이방인이 그랬고 전혜린님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가
내방의 커텐을 내리게 했고 다락방에 숨어 들게 할 무렵 우울처럼 스며들며
어느날 내게 자살을 유혹했다.
까닭인들, 나이가 먹어서 좀더 신중하게 기억을 더듬지만 꼭 죽음을 선택했어야
할 이유가 다시한번 고개를 갸우뚱하니...
그래도 그땐 참 신중하게 고려했었던 거 같다.
힘들때면 꺼내어 보는 아버님 전상서로 시작되는 유서가 내게
있으니.
왜 하필이면 어머님 전상서가 아니였을까 궁금해 할진데 오남 일녀중
외딸을 그리도 아껴주시고 믿어 주시던 아버지께
죄를 짓는 줄은 알았는가 보다.
어수선한 사건이 일달락 되어지고 아버진, 아버지 뒷자리에 나를 태우시곤
힘겹게 자전거를 몰고 어디론가 가셨는데 가을 들녘이였다.
요맘때 쯤 이였으리라.
벼를 베고 탈곡을한, 짚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허허 들판으로
나를 데리고 가시더니 그 짚더미옆에 등을 기대고 앉으셨다.
그리곤 무언가를 꺼내시더니 건네 주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살다가 또 죽고 싶거든 그땐 이 걸 꺼내보도록 하거라~
그렇게 건네받은 편지 봉투엔 아버님전상서로 시작되어진
나의 유서가 들어 있었다.
눈물을 떨구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던거 같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품에 안기어 운다는 건 실로 어렵고
조심스러운 분 이셨다.
그 때 아버지란 어휘는 누구에게나 그랬을 거 같다 내 또래쯤 이라면..
아무 말씀없이 먼 하늘을 서슬 퍼렇게 바라 보시던 아버지의 눈가가 젖어
가는 걸 지켜보던 난
비로서 죽을죄를 졌다는 죄악감에 서슬 퍼렇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어~엉 울었다.
아버지 제가 잘못 했어요라며 무릎을 꿇고 울었던 거 같다.
나이 오십 넘어가던 해에 아홉수라 했던가 참 힘들고 모진 소리와 오해에
내 가슴 아프듯 너네 가슴도 아파야지라는 좀 덜 떨어진(?) 생각에
죽음을 떠 올려 보고 그때서야 잊고 지내던 아버님 전상서로 시작되어지는
내 유서를 끄집어 내어 읽었다.
근데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도움도 되지 않던게 그 날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자리매김 하면서 가슴에서 뭉클 살아 올라 오는것이 있었다.
그랬다.
아버진 그 날의 아픔을 내게 보여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픈 모습을..
그래 우리아이가 있구나.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이....
그 아이에게 난 아직 의지가 되어야 하는데라는 슬픈 자각.
내가 떠나면 아버지 먼 하늘 바라보시듯 그렇게 우리딸 먼 하늘
바라보며 눈가가 젖겠구나라는 슬픈자각.
그렇게 살아오면서 세번 꺼내어 보았으니 세번의 죽음에서 아버진
날 건져 내신거다.
자살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아픈 요즈음 아버님 전상서가
귓가에서 맴돈다.
그리고 그 날 아버지의 눈물처럼 그렇게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