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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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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함께 걷기


BY 영롱 2008-10-06

좋은 사람 한 두명과 온 종일 함께 걷고 싶은 가을이다.

어느 작가가 그랬듯이 무릎이 나온 바지를 입고 고춧가루가 낀 채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친구와 하루 종일 걷고 싶은 가을이 왔다.

걷다가 지치면 아무데나 앉아서 쉬면서 간식을 꺼내 먹고, 푹 퍼져서 수다를 떨고 싶다.

메밀꽃처럼 깔끔한 햇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깔깔 소녀처럼 웃고, 살아온 얘기, 살아갈 얘기 길거리의 풍경 얘기, 미운 사람 흉도 보고, 고운 사람 침이 마르도록 칭찬도 하고, 속 얘기를 모조리 퍼내고 싶다. 그리고 가만히 모모처럼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 함게 울어주고 싶다.

은행잎이 노랗게 깔린 가로수, 단풍이 그리움처럼 타는 먼 산, 추수 끝난 논에 세워진 볏단... 그런 것들이 있는 길을 걷고 싶다.

어린 시절을 함께 공유한 사람이면 더욱 좋겠지. 서로에 대해서 눈빛만으로도 아는 그런 친구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통하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봐 주고 맞장구 쳐주는 그런 친구면 좋겠다.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문득 외로운 가을,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진정을 나눌 사람이 간절해 지는 가을...

주말엔 누가 중환자실에 있다고 문자 메시지가 왔다.

동창 회장이 보냈으니 동창이겠지만, 이름만으론 누군지 통 알 수가 없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동창중 누군가가 사경을 해매고 있다니, 뒤숭숭했다.

마흔을 이제 넘긴 가장이 왜 중환자실에 있는지...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과 가까워짐을 느낀다.

검은 옷을 사서 문상을 대비해야한다.

친하지 않은 사이라도 다시는 그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니,  마음이 더 애잔해 지는 계절이다.

오늘 아침에 공원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온 종일 이렇게 걷고 싶다.

간식도 먹고, 맛난 점심도 사 먹으며, 좋은 친구 한 두명과 가을길을 걷고 싶다.

삶이 팍팍한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나,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라도 한 번 만나자.

하늘이 동해 바다처럼 깊은 날, 깊은 가을길에서 만나자.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준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