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2004년 가을,
그러니까 10월 중순 새벽에 쓰러지시면서 뇌졸중으로 빠졌습니다.
3~4개월동안 중환자실에서 식물인간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때 저를 비롯한 동생들은 하루에 2번 열리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아버지 손이며 얼굴 그리고 발을 닫아드렸습니다.
그 이후에 아버지는 꺠어났지만 몸의 절반은 마미가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 목으로 가래를 빼내고 배줄을 통하여 의료용 미음을
저하고 어머니가 넣어드립니다.
그런데 2004년이었던 그때,
하루는 병실에 이모님하고 어머니가 계신데 남동생이
어떤 작은 떡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저는 그 떡을 못 보았지만 그 떡을 보았던 이모님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 이런 말씀을
진지하게 하셨습니다.
\"이떡..아무래도 예사 떡이 아닌갑다\"
떡이 다 같은 떡이지 별 다른 떡이 있을까 싶었지만
70평생을 살아오신 이모님 눈에는 그 떡이 조금은 색다르게
비춰졌나 봅니다.
이모님은 어머니에게 남동생이 가져 온 떡이 특별한 떡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어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 2월,
남동생은 어머니에게 결혼한번 해볼까라는 뜸금없는 말을 했고
3월달에는 결혼할 여자라면서 정장이 아닌 청바지를 입은 여자를
영광굴비 한 묶음을 손에 든 아가씨를 데리고 왔습니다.
처음 저희집에 오는데 아마도 남들 같으면 바짝 긴장을 했겠지만
저에게 제수씨가 되는 그녀는 털털하게 왔습니다.
13년전 같은 대학 동기자 졸업하면서 서로 잊어졌지만
3년 남동생 회사 앞에 있는 약국에 우연히 갔다가 그 약국에서
또 다시 상봉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 4월 말경 결혼,
그런데 제수씨의 성격이 얼마나 털털한지 마치 결혼 10년한
사람 같습니다.
사람이 마음씨가 고운것이 가끔 저에게 전화해서는 뭐 필요한것 없는지
그리고 며느리에게 며늘아가라고 말씀을 한번이라도 해줄법한
시아버지를 보면서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제수씨입니다.
시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운 제수씨인가 봅니다.
남동생하고 같이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다 보니
가끔은 10분 거리에 있는 본가 집에 올라와서 식사를 하는데
저희 어머니에게 밥좀 차려달라고 하고
근무시간에 쫓겨서 식사만하고 갈때도 있는데
어머니는 제수씨에게 아기를 낳으면 설겆이도
본격적으로 시킬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임신 3개월입니다.
물론 저는 제가 인터넷으로 받은 경품중에서 아이에게 해당되는
경품을 제수씨가 아기를 낳는 내년에는 줄것입니다.
이런것도 아주버님의 제수씨에게 대한 사랑이겠죠.
어제 아침입니다.
제가 거실에서 한참 tv를 보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면서
제수씨가 들어오더군요
제수씨가 tv옆에서 주방에 있는 저희 어머니에게 뭐라고 하는가 하면
\"하이루!!!\"
순간 어쩜 저렇게 인사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마도 깐깐한 시어머니 같았으면 그런 인사는 하지 않았겠죠.
제수씨가 얼마나 붙임성이 많은지 저희 어머니가 제수씨를 보면서
얼마나 재미있어하는지..
제수씨가 30대 중반인데 사람이 애교가 참 많습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댁의 시짜나 시금치의 시짜를 보아도 싫어한다는 며느리들을 보면서
그들은 과연 친정의 어머니처럼 잘 대해주었고 살살 맞게 했는지
그리고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주는지
체면이 중시하기에 며느리를 마치 하인대하듯이 하는것 아닌지
시어머니나 며느니나 서로 어울릴려면 성격이 좋아야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수씨가 결혼할때 폐백실에서 나오는 제수씨 어머니가
흘렀던 눈물을 보았는데 요즘 저희 어머니는 딸을 하나 더 얻었다고
집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아마 제가 깨닫고 있는 이런 부분도 사회성을 길러가는것이고
인생의 한 단면을 배우는 과정이겠지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하듯이 인생의 수업료 또 지출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