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탐진강 물 축제에 가기 위해 전날 밤 늦도록 음식을 장만하는데
남편은 한껏 들떠서 종이컵이며 돗자리까지 챙기느라고 수선을 떨었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내 기분을 눈치 챈 듯 웃겨주느라
애쓰지만 좀체 마음이 즐거워 지지 않았다.
모처럼 서울에서 시누이 가족까지 내려와
시어머님 모시고 1박2일 피서를 가려는데,
친정엄마의 병세가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웃음은커녕 자꾸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엄마께 한번이라도 더 가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음식 만들어 가지고 나만 좋은 구경 다녀야 하나 하는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엄마는 내가 만든 잡채를 제일 맛있다 하셨는데 지금은 드실 수가 없다.
엄마는 아직 팔순을 한참 바라보는 연세이신데 벌써 병석에 누우셨다.
이젠 코로 통하여 넣은 호스 관으로 멀건 죽만을 드시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게 되었다.
그저 눈물만 보이시며 자식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시기만 하여
그 모습이 너무 비통하여 이렇게 한시도 잊을 수 없다.
그러니 엄마를 떠 올릴 때마다 눈물이 나고
웃음마저 사라져 버리는데
이런 때에 시어머님을 모시고 놀러 가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어머님도 홀로 사시고 두 해 전에
팔순이 넘으셨으니 기회만 있으면 행복하게 해 드려야
다음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아 정성을 다 하고 있다.
이러는 내 마음을 나누어 보려는데 어느 한쪽도 기울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눈앞에 닥친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토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상추며 쌈장 등을 갖추어 쌌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장흥 탐진강 변에 도착하니
마침 원두막이 비어 있었다. 남편은 운이 좋다고 웃으며 자리를 폈다.
드디어 시누이 내외가 어머님을 모시고 왔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고기 굽고 음식들을 먹으며 웃다보니
잠시 친정 엄마 생각을 잊고 말았다.
어머님과 흥겨운 각설이 굿거리도 보고 토요시장도 둘러보다
노래자랑을 구경하고 있었다.
시누이가 내게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 한 곡만 부르면
옷 한 벌 사주겠다며 나가보라고 꼬드겼다.
내 눈에는 무대보다 구경하는 노인 분들이 부러워 보였다.
친정엄마도 건강해서 저렇게 사람들 틈에서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라
기분이 내키지 않아 다음에 하겠다고 사양을 했다.
허리도 많이 안 좋으신 어머님이 힘들어 하시지 않고
너무 좋아하셔서 우린 남은 갈비와 쇠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고
또 초청가수들을 보러 갔다.
노래에 맞추어 박수까지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치지 않으신 어머님을 보며 놀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보고 밤 11시가 넘어 아쉬웠지만
우린 모두 시골집으로 갔다.
그 시원했던 강바람의 유혹을 외면하고
마주한 선풍기바람에 더운 몸을 맡기고
한사람씩 잠에 빠져들어 어머님 옆에 나도 누웠다.
시누이의 코고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한 살 아래인 시누이도 올해는 오십대에 접어들었다.
언제 이렇게들 나이를 먹었는지,
우리도 곧 친정엄마 시어머니 호칭을 듣게 되겠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내 손이 어머님 손에 닿았다.
가만히 잡아 보았다. 느낌이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어머님도 좋으신지 손을 내게 맡기시고 더 가까이 다가오셨다.
어둠속에서 우린 애인처럼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누었다.
어머님은 평소보다 생기 있는 목소리로
시집살이 실화까지 들려 주셨다.
그리고 친정엄마 안부를 물으셔서 현재 상태를 말씀드렸다.
“니 속으로는 니 엄니 생각에 상당히 속이 안 좋겄다.
그믄 엄니한테나 가지 뭐더러 여기 왔냐? 나는 구경 안 해도 된디”
그 따듯한 말씀 한마디에 어머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더 커짐을 느꼈다.
이러니 내 마음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가 않는다.
다음 날 친정 엄마를 위해 마음을 쓸지라도
그 밤은 어머님의 손을 잡고 지새우고 싶었다.
어머님만은 건강히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자냐?’하시면 ‘아니요’대답을 두어 번 한 것 같은데
그 후로는 모르겠다.
누가 먼저 잠이 들었는지.
2008년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