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그 분이 오늘 새벽 1시경 두 눈 감지 못하고 떠나셨다는구나.
니가 장인 복이 없음이던가....
맘이 저려온다.
어제밤, 전화기 너머 들려 오던 그애의 간절한 소망이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구나.
\"어머니 기도 해 주세요. 우리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데 잘 이겨 내시라고 기도해 주세요\"
간암 3기. 나이 51세. 병명을 인식한지 3개월만에 세상의 끈을 놓아 버렸다.
미망인 50세, 아들 25세, 그애 23세....
나이 아깝고 고생만 하다 떠난 그 분의 인생사가 그렇게 애잔할 수 없구나.
홀로 남은 미망인은 문득 문득 떠오를 남편의 잔영에 얼마나 오랜 세월, 속울음 삼켜야 할까...
한사람이 떠난 뒷자리의 공허함은 생각보다 질기고 헛헛하게 크단다.
이런 시련 접할때 마다 두루두루 미워 하지 말고 보듬고 살아야 할 것 같다만...
그때 그때의 만남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음을 상기 하곤 하지만 사람 이기에 속 끓이고 미워 하고 단절 하고 살게 되는구나.
아들...
이제서야 나는 인생 수레바퀴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것 같아.
태어나서 십 여년을 교육에 전념 함은 딱히 지식을 습득 한다기 보다 여러 사람의 형태에 적응 해 볼 준비 기간일것 같고
세상 이라는 전쟁터에 나갔을 때 파생 되어지는 여러 문제점과 예기치 못한 복병들에 대처 하는 지혜를 전하라고
부모라는 이름 으로 너희들 곁에 존재 하는 시간을 제공 받는게 아닐까?
우리가 그러했듯이 너희들도 세상살이 물꼬가 터질 즈음 우리는 미련 없이 다른 세상의 옷으로 갈아 입을테지.
군인 이라는 특수한 여건에 매인 몸이라 너의 애타함이 어떠할지 짐작 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일을 겪을 때 마다 조금은 지루해 했던 평온한 일상들이 얼마나 큰 축복의 시간들이었는지 느끼곤 한다.
늘 곁에 머물러 줄 것 같았던 사람들도 예약된 시간 속에 살고 있었음을 놀라움과 한탄 속에 인식하곤 하지.
나이 먹어 지면 어른이 되는게 아니라 희 노 애 락을 두루 겪으면서 감정 조절과 곁에 사람에 대한 배려를 배우며 마음 평수 조금씩 늘려는게 바로 어른이 되는길 같더라.
아들...
그래도 이 엄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구나.
좀은 평탄한 환경에서 자라 양친 부모 계시는 규수 만나 사위 사랑 고루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구나.
이게 바로 시어미 용심 이라는걸까?
그래, 세상일 아직 모른다고 할지라도 내가 널 알고 있지.
절대로 그 사랑, 니가 깨트리진 않을거란걸.
내가 네 아버지와의 결혼을 고집 했을 때 우리 엄마가 느꼈을 감정은 너에 대한 내 감정에 비교 할 수 있음일까?
내가 저지른 불효를 너를 통해 그대로 감지하게 하는구나.
뒤돌아 보면 인생길, 참 빠르고 허무하게 흘러 가는것 같다.
아직 마음은 다 자라지 못하여 유년기에 머물러 있건만 현실은 여러 상황속에 나를 부유 하겠금 한다.
학교 마치고 직장 잡아 결혼만 하면 무지게 색채로 채색 되어 질 것 같지?
이미 인생 이라는 책의 끝부분쯤 읽고 있는 나는 섣불리 너에게 어떤 얘기도 꺼낼 수 없구나.
그 황량하고 씁쓸하고 치사하고 고독한 책 내용을 어찌 발설 할 수 있냐 말이다.
그래, 니가 선택한 모든것에 잔뜩 선입견 가지지 않을게.
내 시각으로 보지 않으려 애쓰고 니 마음 헤아리려 노력해 볼게.
설혹 내 마음속에 따뜻한 정 한 줌 일어 나지 않더라도 니가 사랑 하는 그 모든것을 사랑 하도록 애 써볼게.
어쩌면 알게 모르게 지어온 내 업장의 끝자락에 니가 휘둘리고 있음도 잊지 않을게.
하지만 아들...
사랑 하는 사람으로 부터 상처 받지 않길 바란다.
아프지 마라....어떠한것으로도 니 맘이 조금만 아팠음 싶다.
어쨌던 2008년 9월 마지막날....
니 장인이 되려 했던 분이 세상의 끈을 놓아 버린 날 이다.
우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날테지.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존재해 있는 네가 있어 이 가을이 쓸쓸 하지 만은 않다.
가을 햇살이 몸서리치도록 고운날, 무작정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너를 보러 갈지도 모르겠다.
어른 키 보다 훌쩍 더 큰 코스모스 군락에 이끌려 이 외로움 희석하러 갈 지도 알 수 없구나.
그래...사랑한다...니가 가진 그 모든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