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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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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손질


BY 그대향기 2008-09-24

 

 

흐린 날이 이어져 그 동안 볕이 따가와 미루고 미루었던 꽃밭을 손질했다.

여름 꽃들이 다~`져 버리고 시들은 꽃대궁만 흉하게 남아 있는게 여간 미안한게 아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찬란한 꽃을 선물하겠다고 그 불볕을 다 이기고 여리디 여린 꽃잎을 펼쳐 보이며

물 주고 사랑해 준 나한테 실망시키지 않았던 크고 작은 꽃들을 대접함이 너무 소홀했었다.

꽃이 피었을 때만 사랑하는게 아니라 지고 난 자리도 얼른 얼른 정리해 주면서

다음 꽃이 필 자리를 건사해 줬어야 했는데...

 

어디보자.....

여긴 매발톱이 있던 자리고,여긴 칼라백합 자리고 , 아..여긴 또 아마릴리스가 화려했었지.

종이꽃도 다 지고 마른 자리만 앙상하고 ,수련은 아직 피고지고 피고지는데 마른 잎이 쳐져 있네 잘라주고

송엽국이랑 채송화도 오래오래 피어준다 기특하고 이쁜 것들....

수국은 오래 전에 졌지만 가지가 실하게 남았네~~

접시꽃은 참 진 자리가 지저분하다.

가지가 이리저리 마음대로 널부러져 있는게 꼭 설겆이 안 하고 집 청소 안한 게으런 여편네 집구석 같다.ㅎㅎㅎ

하나 둘 가지를 모아 쥐고 전지가위로 싹뚝~`뎅겅~~

으...

시원하다.

갑자기 꽃밭이 훤~해 졌다.

키도 큰 꽃대궁이 이리저리 어지럽더니 싹뚝 잘라내고 나니 일을 다 해 놓은 것 같이 꽃밭이 밝아졌다.

이름도 다 못 외는 꽃들이 많아 하나 하나 꼼꼼하게 정리를 해 나가다가

아뿔싸.......

꽃이 다 져 버렸다고 아무생각 없이 시들은 꽃대궁을 쑤...욱 뽑아 올리는데 이런 무식쟁이가 있나......

꽃대궁을 따라 뿌리채 주르르....올라온다.

이럴 어째......

당황해서 얼른 뿌리를 흙 속으로 파 뭍으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마치 내 몸 안의 내장이 다 쏟아져 나온 듯한 심한 아픔을 느끼며 꽃뿌리를 묻어 줬다.

내년 이 맘 때를 기약하며 흙 속에서 잠잠히..그러나 은근과 끈기로 생명을 감추고 기다릴 뿌리들을

무식한 주인이(과연 내가 주인인가?) 내다 버릴려고 했으니............

얘들이 내년에 배신을 때린다면?ㅎㅎㅎㅎㅎ

그래도 난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제발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다시 피워 주기를 바라는 이 알량한 믿음.

 

어쩌면 내 마음밭에도 정리를 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고집이나 집착의 뿌리를 파 내어 버리자.

지나간 슬픈기억으로 인해 가슴아파하기 보다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새로운 앞날을 기약하자.

남편이나 애들에게 못 다한 말들이나 사랑을

내 한 몸의 피가 식어가기 전에 얼른얼른 다 하며 살자.

마지막 숨이 다 하는 날 후회보다는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안고 가자. 

당치도 않을 욕심의 덩어리도 깨 부숴 버리고

미움이나 질투의 더러운 감정들도 흐르는 물에 떠 내려 버리고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함도 용서빌고

더 자주 사랑한단 말 하지 않음도 미안해 하고

날 사랑해 준 그 동안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더 사랑 받을 값어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자.

언제나 자신에게 솔직해 지고 자신과의 약속을 어느 약속보다 중하게 여기며

배신하지 말고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는 진정한 용기를 키우자.

 

멀~금 해진 꽃밭을 보며 기분이 많이 홀가분해 지고 덜 미안해 진다.

바쁘단 핑계 아닌 현실이 그 자리에 붙 박혀서 내가 주는 물이나 영양제를 먹고 자라는 꽃들에게

늘 미안함과 감사가 친구하고 있다.

덜 주고 덜 가꿔도 어느 날엔 깜빡 다 잊었어도 날 기억하고 날 실망시키지 않게 피어주는 꽃들이 있어

많이도 행복하고 마음이 밝아진다.

일의 힘듦도 고달픔도 다 잊게 해 주는 몇 안되는 꽃들로 하여 오늘도 행복지수는 가득~~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