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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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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초촌으로 가면


BY 정자 2008-09-19

초촌에가면 커피 한 잔에 300원하는 자판기가  있다.

그 자판기옆에 한 이 십미터 더 가면 눈다리라고 다리가 있다.

눈다리근처에 눈다리식당도 있고 눈雪교이발소도 있다.

잘생긴 느티나무가 있었는 데 얼마전에 동네 어른신들이 합의를 한 것인지

밑둥이 덜렁 잘려 꼭 처형당한 순교자 같다.

 

아뭏튼 나는 일부러 아침 출근할 때 먼 길을 에돌아 여길 꼭 들른다.

삼 백원짜리 커피를 마시러간다.

한 십년 된 자판기에 위생필증도 여러개 다닥다닥 붙어잇고

슈퍼주인 아줌마는 나만 오면 환하게 까르르 웃으신다.

나 때문에 웃는 게 아니고 나의 애마 뒷모습이 사람을 웃게 한단다.

그러고 보니 영낙없이 꿀밤을 한 대 얻어맞고 아퍼죽겠다고 눈 한쪽 찡그리며 

아휴 아휴 하는 그 표정이다.

 

\" 어휴 웬만하면 차좀 고치고 다니세요? 사람은 멀쩡한 데 차는 왜 저지경이래유?\"

\" 우하하하..내비둬유..차가 앞으로 잘 나가는 디유..근디 제가 멀쩡해 보여유? \"

 

자판기가 하도 오래되서 저게 판매되고 있는 건지, 작동은 될까 싶어 처음엔 머뭇머뭇하던 내 모습을 보다가 내 차를 보고 박장대소를 했단다. 어디가 모질라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데. 왜 차는 덜렁덜렁 끌고 다니는 지 아주 많이 궁금하던 차에 마침 나에게 잔돈이 없어 잔돈을 바꾸러오는 내 얼굴을 보고 그러신다.

 

\" 하시는 일이 뭐여유?\"

\" 왜유? \" 나도 뜬금없이 대답은 않고 싱긋이 웃어버렸는 데.

 

차가 불쌍해서 공짜로 캔커피를 주신다고 하시더니, 이젠 자판기에서 아예 그냥 빼준다.

하얀종이컵에서 나오는 향기가 은은하다. 그 옆에 모터수리점인데, 대부분 기계를 만지는 곳은 좀 지저분하고 여기저기 모터들이 공구들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데. 이 집은 입구에 하얀 설악초을 한 가득 심고 중간에 금잔화에 금계국에 화원인가 기계수리하는 곳은 전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 동네 몇 집 안되는 작은 동네에 있을 건 다 있다

작은 운동장을 갖고 있는 중학교며 작은 우체국. 작은 농협도 있다.

나는 관광객으로 어디 멀리 여행하는 것은 별로다.

늘 내 주변에 지천으로 숨겨진 거울속에 비친 작은 풍경을 뒤지고 다니는 게 취미다.

이런 취미가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지 잘모르겠다.

 

살다보니 늘 시간없다고 못하고 미루고 그런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 것을 하나씩 찾아서 가장 가까운 것을  먼저 해보기, 아니면 멀리서도 비행기타고 배타고 오는

곳 근처에 살고 있는 데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나의 살던 곳을 한 번 가보기등. 뭐 이런것을 혼자서 뒤지고 다니다보니 사람사는 숨겨진 풍경에 찰칵 사진을 눈도장 찍어둔 곳이 많아졌다.

 

여긴 부여 근처다. 사적지가 풍부한 곳이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아파트도 없다. 구릉지가 끝없이 펼쳐져 구비마다 저수지에 논에 밭에 선사시대의 원주민 무덤까지 아무렇지않게 살고있는 곳이다.요즘은 가을이라 너른 논이 꼭 해바라기 화가 고흐가 붓질로 황금색으로 칠하다가 해바라기도 심어주고 진짜 까마귀떼가 까맣게 날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른나라 박물관에 걸려있는 그림을 볼 것 없이 그대로 그림에 첨벙 빠져 있는 기분이다.

 

사람으로 그럴듯 하게 살아갈려니 괜히 얼굴모르는 조상이 누구일까 궁금할 때가 반드시온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혹시 내가 밟고 다니는 길에서 먼 옛날엔 공룡들이 뜀박질하고 

원주민들이 타잔처럼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달렸던 사냥터가 아니었을까. 별들이 주먹만하게 번쩍 번쩍 빛 날테고.

 

아뭏튼 난 오늘 초촌에 또 커피 마시러 갈 것이다. 매일 떠나는 방랑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