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렇게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이 탐탐치 않아 하는 깡시골 외모의 그를 평생의 배우자로 생각하고 웨딩 촬영을 했다. 이 또한 미친짓!
그의 식구들이 한국에 아무도 안 계신관계로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울 집에서 장인 장모와 한방에서 같이 잠을 잤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알고 있던 후배들은 만나면서 술을 마시고 연락도 없이 이른 새벽녁에 집에 들어오고... 그때 파토를 냈어야 하는건데....ㅠ.ㅠ
왜 그때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던지....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했던가! 그 말은 진리였다.
여튼, 평소 용돈 주시는 일은 즐기시는 엄마는 그에게도 100만원이라는 돈을 주면서 용돈을 하라 하셨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장을 시키고... 좀 오버였다^^
2004년 2월의 겨울이 내겐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시점이었으나 이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 겨울 딸기가 심하게 맛있게 느껴지던게 이상하여 임신 테스트를 해 보았다. 이게 왠일인가.... 임신!
아직 드레스도 안 입었는데.. 그저 날만 잡았는데 사고를 쳐도 크게 친것이다.
일단 한국에 부모님께는 말씀 드리지 않고 다시 미국으로 출국을 했다. 임신 사실에 둘다 당황하긴 했으나 이미 결혼을 약속했기에 지우고자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결혼식을 위해 부모님이 미국에 오셨고, 임신 사실도 아시고 초음파 시진도 보시고... 적지 않은 충격 속에 하루 하루가 긴장이었다.
부모님이 오시는 시점에 맞춰 우리는 아파트를 방이 2개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 시점에 엄청난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전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는 한달에 두번정도는 말 없이 연락 두절로 외박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변명아닌 변명에 다른 이의를 제기 하지 않고 믿었는데 그 날도 다음날이 이사날임에도 불구하고 연락도 없고, 연락도 안되고 다음날 아침에 온것이다.
임신한 몸으로 혼자 이삿짐을 싸고 눈물을 삼키면서 이를 악물고 하룻밤을 버티고 그를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말에 그는 물건을 던지는 폭력을 행했고 난 그 모습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과 함께 다리와 온 몸에 오열이 일어났다. 태어나 평생 그와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폭력과 외박! 아~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그만 두기에는 이미 뱃속의 아니는 4개월에 접어들었다.
힘들다! 통곡을 할수도 한다해도 별수 없이 낯선 땅에서 혼자일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물건을 집어 던지고 또 다시 나가버렸고 난 또 혼자 덩그러니 버려졌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몽골리안 남자의 도움으로 이사를 혼자 했다. 서러웠다.
여자들이 집을 이사할 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가? 이사를 하기 위해 맘을 먹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는 시작인것을....
그렇게 이사하고 얼마 후 한국에서 친정 부모님이 오시고..... 감옥 아닌 감옥 살이를 하시고 결혼식을 치루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렀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외출은 점점 힘들어지는 시점! 그래도 다시 크게 싸우는 일은 없었다.
배가 아프다. 성당에서 여러 아주머니들이 아이를 낳을 때 신호는 양수가 터지는 것! 팍! 하는 느낌으로 터진다고 했다.
잠을 자다 갑자기 아래에 뭔가 팍 터지는 느낌! 눈이 확 떠지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머 물이 계속 나오는데 오줌인지 양수인지 모르겠다. ^^;;
\"자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