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명절이면 종갓집이었던 나의 친정은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음식 솜씨 좋고 손이 컸던 어머니는 명절 며칠 전부터 여러 번
부지런하게 장을 봐오셨다.
60년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던 그 시절 그래도 마음만은 부자였던
어머니께서는 모자람 없이 넉넉하게 음식 장만을 하셨는데
준비하는 음식의 가짓수도 많고 양도 많아 대나무 둥그런 채반에
동태전이며 동그랑땡 고기 전,그중에 별미는 뭐니 뭐니해도 내 입에는
녹두전이 최고였다.
툇마루 밑에 먼지 소북 쌓인 맷돌을 꺼내 잘 닦고 나서 미리 불려
놓은 껍질 깐 녹두를 곱게 갈고 그 안에 고사리, 돼지고기, 김치, 삶은 숙주를 넣고 소금간은 조금 심심하게 하여 기름은 넉넉하게 붓고 지짐질을 하는데 입에 착 붙는 고소함이란 지금에 와 생각만 해도 침이 절로 꼴깍여진다.
명절 음식 장만 중에 전을 부치는 시간이 제일 길었고
아울러 팬에 전을 올리고 뒤집고 꺼내면서 혼자가 아닌 마주한 누군가와
정겨운 대화가 오고 가고 맛난 지짐 전이 채반에 소복 쌓일 때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아버지의 작은 술상이 차려지곤 했었다.
지난 시절 추억 속의 떠오르는 정겨웠던 명절날의 풍경~
하지만 이제 세월은 흘러 쌓여 넘치는
맛있는 음식도 도란거리는 웃음소리도 게다가 그립던 날들 한 가운데
푸근하게 자리하셨던 부모님 두 분 모두 먼 길 떠나 세상에 안 계시니
아이들과 홀로 남은 나는 명절이 다가와도 기쁨보다는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이번 추석은 일요일이어서 다른 때 보다 연휴 기간이 너무 짧아 어제
퇴근길 서울 시내 교통은 낮부터 이어지는 교통체증으로 거리는 거의 정지 상태였다.
그런 도로 막힘이 차라리 고향에 가는 귀성길 고속도로 위였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러 가락국수 나눠 먹고
맥반석 군 오징어도 사서 차 안에서 다리 몸통 죽죽 찢어 고추장 찍어
먹어가면서 음악도 듣고 가족끼리 이야기도 하면서 귀향하면 얼마나
좋을까?
더군다나 하나 더 희망사항 추가하면 추석 보너스도 넉넉하게 받아
주머니도 두둑하다면 행복하나 더 추가일터인데...
휴~
남의 떡은 다 커 보여서 그러는 걸까?
정작 귀향하는 본인들은 힘들겠지만 TV 속에 비치는 귀성길
꽉 막힌 고속도로 모습은 갈 고향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럽기만한 모습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 했는데
아파트라 그런지 엥엥거리는 모깃소리에 잠에서 깨어
앉았는데 불을 켜고 사방을 살피니 침대 머리 벽 쪽에 시침 뚝 떼고
모른 척 앉아 있는 모기 한 마리 포착~
재빨리 손바닥으로 일격을 가하니 빨간 피가 터진다.
에잇~ 나쁜 모기~
수면 방해 주범인 모기는 잡았지만 모기로 인하여 깬 잠은 쉽사리
다시 안 오고 적막한 밤에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니 신세 한탄만
깊어지는 밤이다.
추억은 모두 그리움이라 그런지 그럴 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
추석날 음식 장만에 분주하던 근심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내일은 추석한가위 명절
지금의 나는 아주 어두운 밤 곧 새벽이 밝아 오겠지만 지난 추억속의
여행을 다녀와 현실 속에 내 처지를 비관하고 있으나
그래도 어제는 예쁜 딸아이 직장에서 추석 떡값 받았다면서 금일봉도
내게 안겨주었고 아들아이는 작은 기쁨이지만 운전면허 필기 시험도
합격했고
그저께는 딸아이 고3 때 집안 형편이 최악으로 어려울 때 여로모로
고맙게 해주셨던 담임 선생님께 딸아이가 추석 선물을 보내드려 사실은
받은 물질적 선물보다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 생활을 하면서 지난 시절
선생님을 생각해준 것이 너무도 감동스러워 그래서 눈물이 나오려 한다는 문자도 확인했고
연일 딩동~ 딩동~
택배 왔습니다~
따르릉~
경비실 인데요 택배 찾아가세요~
예쁜 딸로 인하여 자식 덕분에 그래도 무작정 쓸쓸하지만은 않은
추석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PS--에세이방 여러님들~
한가위 명절 즐겁게 보내시고 이 시간 혹시 저처럼 잠 못들고 계신분
있으시면 좋은 날이 오겠지라고 희망을 갖었으면 합니다.
그냥 힘이들면 지금 기차는 어둠의 터널을 통과할뿐 어둠은 늘
계속되는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