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라 모두들 부산한 움직임이다
여건이 그렇게 되다 보니 벌써 2년째 딸과 둘이서 보내는 추석 명절이 되고 있다
작년엔 얄망스럽게도 딸이 추석 연휴 다음날 부터 2학기 중간 고사가 책정 되어져 있어 본의 아니게 발길을 접었고
올해는 수능일까지 두달 남짓 남았으니 작년 처럼 딸과 둘이서 보내라고 남편은 애저녁에 전화를 해왔다
내년엔 아들도 제대해 있을테고 딸도 대학생이니 온가족이 모여 명절을 즐기리라 쓸쓸해 오는 마음 다독여 본다
우리는 제사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주위에선 \"어머~~좋겠다~~\" 부터 내 지른다. 이유도 모른채...
우리도 시어른 돌아 가시고 십여년 동안 둘째 형님네서 제사를 지냈다
험담을 늘어 놓고자 쓰는건 아니지만 이해를 돕고자 부득이 밝혀야 할 것 같다
맏시숙이 내가 결혼한 다음 해, 가족을 이끌고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서로 안모시려는 형제간의 작태가 볼썽스러워 \" 맘을 다해 제가 모시겠다\" 했었다
미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 배웅 나갔더니 큰 시숙이 \" 제수씨, 제가 져야할 짐, 맡겨 놓아 죄송합니다 몇년만 고생해 주시면 한꺼번에 갚아 드리겠다\" 했다
왠지 처음부터 그말은 믿음이 안갔다
살림은 생각 이상으로 쪼들렸고 피폐해지기까지 했다
그럴때 마다 남편은 큰시숙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이며 나에 대한 미안함을 무마하려 했다
\"여보야, 큰 형님 너무 믿지 마요. 사람이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져요 더구나 미국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나라인데.. 난 처음부터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어요. 당신 맘 다칠까 염려 되어 하는 말 이예요\"
길길이 화를 냈다 남편은..
너무 액션이 크다 싶을만큼...
오래지 않아 나의 말은 현실이 되었고, 시어머님 돌아 가신 후 혼자 떠억 하니 나타나선
\"집안에서 제수씨가 어른 잘 모셨다고 입에 침이 마르던데, 사실 제수씨, 우리 엄마 한테 애들 맡겨 놓고 직장 생활 한답시고 세월 잘 보냈잖습니까? 제 말 틀린것 없지요? 그리고 나도 울엄마 한테 할만큼 했심다. 어느때 얼마 부쳤고 어느때도 얼마 부쳤심다 그러니 혼자 고생한척 하지 말라는 겁니다\" 했다
지난 세월은 다 잊혀지는거다
특히나 자신이 떳떳지 못한 부분은 억지를 써서라도 무마 하고자 함이겠지
괘씸함에 속이 바글바글 끓었다
이럴때 조리있게 조근조근 얘기 하라고 우리 부모가 국문과 공부 시켜준 것일테지.
\"아주버님 뜻 잘 알았심다. 저도 꼭 한마디 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들어 주실랍니까?
아주버님~~아들만 둘 있지요? 어른은 며느리가 모시는거지 결코 아들이 모시는것 아닙디다
어쨌던 건강 하게 사세요. 아주버님도 어머님 처럼 누워 똥 오줌 싸고 있는데 자식이 코빼기도 안 비치면서 통장에 돈 얼마 넣어두고 자식 노릇 다 했다고 떠벌리고 다닐까 심히 걱정 되니까요.
돈도 건강하게 움직일 때 필요한 거지 거동 조차 못하고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통장에 있는돈이 가당키나 한 걸까요?
미국에 있는 형님은 세월 보내려 직장 생활 하러 나가나 보죠? 여기선 그것 말고도 세월 잘 보내는 방법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만...
어찌됐던 전 외동 며느리 처럼 살았으니 혹시 한국 나오시더라도 저희집엔 연락 마시고 다른 동생집에 거하다 가세요
일찍 마음 열어 보여 주신것 고맙다 해야겠죠?
아버님 돌아 가셔도 연락 안 드릴테니 그리 아시구요, 이번 만남으로 우리 이제 그만 봅시다\"
어머님 떠나고 9개월 만에 아버님도 자릴 털고 가셨다
아버님 첫 제삿날, 바로 위 동서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던지 이쁜이 수술이랑 겹쳐서 몇가지 했다면서 시숙과 조카 부축 받아 앓는 소리 읊어대며 제사 모시기 바로 전에 왔다
어거지로 제사를 받게 된 둘째 형님.
쌀도, 기름 종류도, 김치도 똑 떨어지게 해 놓곤(난 일부러 그렇게 맞추려 해도 어렵겠두만) 내 얼굴 대하자마자 \"없다. 없다. 없어서 죽겠다\"를 지겹지도 않은지 후렴처럼 똑같이 하고 또 했다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어차피 내가 할 일이다 생각하고 성의껏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둘째 형님이 죽었음 죽었지 제사 못 모시겠다고 패악을 부렸고, 우리만 아들이가 입에 거품을 물었다
남자 셋이서 의논 하라고 남편을 큰집에 보냈더니 두어 시간만에 형님들과 동서를 이끌고 남편이 개선 장군처럼 집으로 들이 닥쳤다
가만히 하는 얘길 들어 보니 이집은 이래서 안되고 저집은 사정이 그러니까 안되어 우리집에 내가 어른도 모셨으니 제사를 맡아 주면 안되겠냐는, 형식은 의향을 묻는거였지만 내용은 확정 지어 온 거였다
기가 막혔다.
\"저는 잘했던 못했던 아주버님들과 형님들께 도와 달라는 말 한번 한 적 없이 어른 모셨습니다. 예진이 가져 임신 중독으로 큰 병원에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말 듣고도 퇴근해서 발로 이불 빨래 해 널었습니다. 아무도 코빼기 한번 안 비추더니 꼭 어려운 일만 닥치면 왜 저를 찾아 옵니까?
제사? 저 못 받습니다. 제 대에서 끝날 일이면 이런 군소리 안나게 처음 부터 제가 차고 앉았지요
하지만 영환이 위로 사촌형들이 여러명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물려줄것 없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물려 줍니까? 사람이 체면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야멸차게 내쳤더니 어찌어찌하여 미국 시숙댁으로 모시고 간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모든건 자신이 당해 봐야 알 일이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제삿날 큰 동서는 입을 열댓발 내밀고 짜증을 있는대로 낸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햇살 고운날, 집에서 전 부치고 떡사고 과일 사고, 커피 끓여 담아 어른 산소로 소풍을 가곤했다
때론 산소 앞에서 밥짓고 , 생전에 즐기시던 반찬 마련하여, 맘으로라도 어른과 늘 함께 했다
제사...번거롭고 귀찮은 일임은 분명 하다
하지만 한집에 어른 모시고 살면서 삼시세때 반찬 걱정 하는것 보담은 수고로움이 덜 하다 여겨진다
내 삶의 뿌리인 조상님을 그리는 마음이 곁들여지고 그 분들과의 소중한 추억 되새기면서 그립던 일가친척의 해후가 기다려진다면 얼마나 금상첨화 일까만 늘 현실은 냉정 하고 씁쓸하고 고달프다
우리는 늘 니탓, 내탓 하며 으르릉 거린다
어른 돌아 가신 후 우린 불꽃 처럼 살림이 일었고,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간담 서늘해 질 정도로 다른 형제간들 집은 재앙이 끊일날 없다
지겹다, 지겹다, 꼴도 보기 싫을 정도다. 라고 맘 속으로 혀를 수십번 차 더라도 효도도 용서 구함도 살아 계실때 해야 하는거다
어른 떠난 뒤 어느날 문득 물밀듯 밀려드는 그리움이, 자신이 살아 온 뒷 태를 스스로 감지하게 해 줄것이다
기왕이면 떳떳하고 아름다우면 좋지 않을까?
혹시 어른 모셔야 될 위기에 처한분들은 복지을 기회라 생각 하고 받아 들였음한다
물론 어른의 성품도 큰 문제꺼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다 내 업장인것을. 분명 훗날 거기에 상응 하는 큰 보답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시길.
아컴 여러분~~~
고생한 맘 씀씀이 만큼 행복한 추석 명절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