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장마때가 되면 수선화가 피기 시작하였다.
아니 수선화가 장마때에 피는것인지 아무튼 장마와 수선화 꽃은 그렇게 비가 내리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것이다.
피어 있는 고운 분홍색의 수선화가 비를맞고 고개숙여있는것이 애처로워 비가 오면 마루에 올려 두기도하고
비를 맞지 않는곳에 두기도 하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장마가 일찍 끝났음인지 수선화꽃이 제대로 피지 않던니 철늣은 지금 하루 하루 새로운 봉우리가 올라와 몟송이씩 함께 피어있는 모습이 이뿌다.
어떠한 꽃이든 꽃은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이든 어떠한 모습을 가졌던 꽃을 보는 마음을 푸근하게 하며
세상사의 오염에 때묻은 내 눈을 맑게 해준다.
우리집에 없는 색깔의 채송화를 이웃집에서 꺾어와 심었던니 아주 예쁘게 꽃을 피웠다.
채송화는 가지만 꺾어 아무곳이나 흙에만 꼿아두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는 강한 생명의 의지력이 있는것같다.
노란색. 분홍색 주홍색 붉은색 몟가지의 채송화꽃 화분을 일렬로 세워두고보니 피어있는 꽃들이 돌맞이 하는 아가야의
색동옷을 연상게한다 . 저녁밥을 먹고 아제와 마당에서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서 서로의 마음이 한가지같은것을
알게됐다. 어머님 얼굴에 종기가 생겨을때 혹시 종양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이 일반 종기라하여
제거 수술을 하고 몌칠 입원해 계실때 생각해 두었던것을 아제에게 애기하니 본인 생각도 그렇단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하는데 모습이 닮아가는것이 아니라 생각하는것이 닮아감이 아닐까?
아제에게 애기했다= 어머이 다리에 힘있을때 퇴원하면 모시고 바람함분 쐬려갑시더=
솔직히 어머님과 오랜세월 살아오면서 전혀 어머님께 섭섭함이 없는것은 아니다.
어머님은 어머님 당신 입장에서 자식들을 보시기 때문에 때로는 섭섭하고 해 드림이 부족하다 생각하신다.
나 역시 내 입장에서 어머님을 보기 때문에 가끔은 어머님이 야속하고 아직도 나는 어머님께 진정한 자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얍은 벽을 느끼기에 난 분명 좋은 자식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벽을 보고 누워계시는 굽어진 등을 보면
미안하고 마음이 짠 해짐은 그 동안 살아온 정이 아닐까 하는마음이다.
우리 다섯멤버 어머님 큰 시누이 막내 시누이 운저사겸 보디가드인 아제 그리고 유일한 며느리 올케인 나.
다섯 사람이 지 지난주에 청남대를 다녀왔다.
언제인가 아제와 산악회에서 등산을 갔다오면서 청남대를 갔을때 다음에 어머님을 한번 모시고 와야겠다 생각했기에
쉽게 그 곳으로 결정 할수 있었다.
이른 새벽 출발하려 했는데 느림보 막내 시누이 때문에 1 시간이나 늣게 출발해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집에서
준비해간 밥으로 무우청 된장 .가지 .고사리 .시금치 .나물 멸치볶음 .완두콩을 넣은 찰밥 . 자리를 펴고 앉아
먹는 그맛이란 어느 진주 성찬보다 더 맛있었다.
노약자가 있어 청남대 안에까지 차가 들어갈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청댐을 지나고 청남대 가는길이 나무들로 우거져 아름다웠다.
청남대가 어떤 곳이었는지 그곳이 어떻게 대통령 별장에서 지금의 관광명소가 되었는지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도착하니 약간의 비가 내린다 그곳에는 어린애기를 태우고 다닐수있게 유모차도 준비되어있고 노인들을 위해서
휠체어도 준비되어있어 다행이다. 처음에는 어색하신지 타지않으시려는 어머님께 = 어머이 요게는 다 돌아 볼라모
어머이 걸을으로 걷도 몬합니더 타이소 고마= 아들과 딸 며느리까지 권하자 못이기는척 휠체어를 타셨다.
정말 그 곳은 노인들이 걸어서 다 돌아보시기엔 무리였다.
진흙속에서만 자라 꽃을 피우는가 했던 연꽃을 크다란 고무통에 몟송이씩 심어둔 곳에서 화사하게 연꽃이 피어난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꽃 앞에서 사진도 찍고 침실등을 둘려보신 어머님께서 요게서 대통령들이 잠을 잤나 하시며
좋다란 말을 자꾸 하신다.
아제는 어머님 휠체를 밀고 저만큼 가고있고 큰 시누이는 다리아프다며 궁시렁 거리면서 걷고있고
막내와 나는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데 막내가 =언니야 이꽃이 무슨곷이고=그거 능소화꽃이다.
=꽃 이름이뿌네 = 우리동네 어느집에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면 맑은 주황색 능소화가 담장밖으로 소담하게 피
어 보는이의 눈길이 한번더 머물게 한다.
담장밖으로 가지를 뻗어 꽃을 피우고 있는 능소화를 보면서 저 꽃은 와 밖을 보고 피어있을까 란 생각만 했었는데
그 곳에서 능소화 꽃의 슬픈 전설을 알게 되었으며 왜? 담장밖으로 피어있는지 알수있었다.
능소화 꽃 옆에 꽃의 사연을 설명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당나라 태종때 아주 예쁜 궁녀가 있었는데 어쩌다 임금의 눈에 들어 하룻밤 임금의 사랑을 받고 빈이 되었지만
시샘과 음모로 인하여 그 후 임금은 소화를 찿지 않았고 소화는 오지 않는 임금을 기다리느라 담장밖만 바라보게
되었다. 혹시나 임금이 찿아 오지않을까/? 왔다가 다시 가지는 않았을까?기다리는 마음으로 당장밑을 서성였다
한다 그러다 기다림에 지쳐 죽어가면서 시녀에게 자기를 담장밑에 묻어달라 그렇게 해서라도 임금을 기다리겠다고.
그렇게 죽어간 소화의 무덤에서 이듬에 맑은 주황색 꽃이 피어 누구를 기다리는듯 담장밖을 향해 가지가지 꽃을
피웠다.자신의 초란한 모습을 보이기싫어 의연한 자태로 꽃이 시들기전 화사함 그대로 떨어진다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픈 여인 소화의 넑이 꽃이 되었다 하여 능소화라 한다고 한다.
글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이 슬프진다 무슨 꽃이든 꽃에는 꽃말이 있지만 능소화 꽃에도 그런 슬픈 사연이 있다는것을
그 곳 청남대에 가서알았다
새벽에 나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면서 휴게소 잔디밭에서 준비해간 과일을 꺼내 먹고 쉬기도 하면서 집에 오니
여덟시가 넘었다 .
그 후 능소화 꽃을 볼때마다 깨끗하고 맑아보이는 저 꽃이 그런 슬픈 전설이 생각나며 그래서 능소화 꽃을 한번더
보게된다.
아직도 능소화 꽃은 담장밖을 향해 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