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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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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잘 내는 남편, 내가 뭘 잘못했을까...


BY 낸시 2008-08-30

둘째를 임신했던 때, 설날 시외할머니댁에 인사를 가자는데, 임신으로 불러오는 배, 몸에 맞는 옷이 없었다.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서...\"

성미 급한 남편은 내가 뒷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화를 불쑥 냈다.

\"가기 싫으면 관 둬.\" 

어이 없어 물었다.

\"내가 뭐랬는데 그렇게 화를 내?\"

\"옷 사주지 않는다고, 지금 그 말하는 거잖아.\"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게 정말 억울한 말이었다.

그 전에도  후에도 난 옷사치를 하는 사람은 아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한복을 입을까? 였었다.

배가 불러도 입을 수 있는 한복을 입어볼까 생각했지만, 일상복이 아닌 한복을 입으려니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쑥스러움을 덜어볼까하고 한 말이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

 

첫 아이를 낳고 남편은 나와 상의 한마디 없이 시고모집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시고모하고 이미 아이를 돌봐주기로 약속을 했다면서...

이미 결정된 일, 내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둘째를 낳은 후 시골에서 시할머니가 올라오셨다.

시고모 혼자 아이 둘 보는 것은 벅차니까 시할머니하고 둘이서 하나씩 나누어 돌보기로 하셨단다.

시할머니는 건강하셨고, 나이도 내 친정어머니하고 비슷하셨다.

시고모도 시할머니도 좋은 분들이었지만  같이 사는 것이 나는 많이 불편했다.

아침 밥상을 마주하고 말을 꺼냈다.

\"여보, 내가 근무하는 학교 옆으로 이사하면 안될까?\"

조금의 지체도 없이 단호하게 남편이 대답했다.

\"안돼.\"

다시 물었다.

\"왜 안되는데?\"

남편의 대답에 짜증과 화가 묻어났다.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

섭섭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당신은 여기서 살아. 난 아이들 데리고 학교 앞으로 이사갈래.\"

그리고 난생 처음 따귀를 맞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들이 두 돌을 넘겨 무슨 말이든 싫어!하고 대답하던 때였다.

부전공이지만 교육학을 공부하고 선생을 하던 나도 첫아이라서 경험이 없어 행여 버릇없는 아이가 될까봐 걱정하고 당황했다.

아이에게 제대로 버릇을 가르쳐야지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약간의 벌을 주었다.

두돌을 갓 넘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아들에게 그야말로 시늉으로  약간의 벌을 주었

다.

남편이 그만두라고 하였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에 듣지 않았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남편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어 내 멱살을 잡고 건너방에서 안방으로 끌고 갔다.

시할머니도, 시누이도, 연년생으로 눈이 까만 아들과 딸도 같이 있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을까...

 ......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수 많은 일로 남편은 화를 냈다.

심지어 퇴근하고 돌아 온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아이들하고 웃는다고 화를 내기도 하였다.

나중에 들은 이유가 대통령이 바뀌면 자기도 영향을 받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직장동료 부인들에게 그녀들의 남편도 그런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말단 공무원이 영향은 무슨..., 이었다.

 

물건을 던진 적도 있고, 욕을 한 적도 있고, 발길질을 한 적도 있고, 머리채를 잡은 적도 있다.

그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 내가 뭘 잘못했을까...

몇날 며칠, 날과 밤을 세우고 해를 넘겨 고민해도 풀리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의문이 풀리지 않아 당신은 왜 그리 화를 잘 내느냐고 남편에게 묻기도 하였다.

내가 자기를 화나게 해서 그렇다는 것이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럴까... 어떻게 하면 남편이 화를 안낼까...

어떤 경우엔 남편은 화를 내나...

제법 똑똑한 체 잘난 체 세상을 살던 나지만 이것만은 이해할 수도 풀 수도 없는 문제였다.

이혼을 결심한 것이 몇번일까, 죽어버리려고 결심했던 것은 몇번일까...

우울증이라고 정신병동에 갇혀있기도 하였다.

그런 내게 남편은 말했다.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도 모르겠냐?\"

하하, 웃긴다. 정말 웃긴다.

 

결혼하고 27년, 짧다면 짧을 수도 있고, 길다면 길수도 있고...

젊어서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남편은 화를 잘 낸다.

그런 남편과 사는 나는 터득한 것이 하나있다.

화를 내는 것은 남편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내 문제는 그런 사람과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것이다.

요즘 난 남편보다 화를 더 잘 낸다.

욕도 잘 한다.

필요하면 남편에게 발길질도 한다.

남편이 미우면 시집에 전화를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천성대로 여전히 여우짓도 잘한다.

상스럽고 천한 악처의 전형이다.

하지만 반성하기는 커녕, 내가 잘하고 있는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부추긴다.

남편을 꼬드겨 외식도 잘하고 닭살부부 노릇도 잘한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모두 남편 몫이다.

요즘은 예전처럼 이혼을 꿈꾸지도 않고 죽어버리겠다고도 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고 사는 요즘엔 화 잘내는 남편하고도 살만하다.

날더러 망가졌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날더러 마음씨가 내가 가꾸는 꽃을 닮아 곱다고 한다.

난 여전히 교양있고 고상한 여자인 척 하면서 산다.

가끔 이렇게 진실을 말할 때도있지만  사람들이 믿지도 않는다.

날 아는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그리 밝고 명랑하게 살 수 있을까...의문을 던져주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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