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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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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이야기 4


BY 꼬마주부 2008-08-18

아.줌.마.들.의. 자.전.거.예.찬

 

 

채우(5살)의 첫 여름방학이 끝났다.

첫 방학은 친정 아빠가 손수 뚝딱뚝딱 지으신 오두막 별장이 있는 전라도 구례 시골집에서 보냈다.

하늘과 땅이 넘치도록 아름답게 들어서 있는 구름과 산과 나무와 방아깨비들이

도시에 찌든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 준다.

 


 

이 좋은 풍경에서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상쾌할까!

좋은 도로, 맑은 하늘만 보면 어디서든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내 마음은 설렌다.

 

덕분에 아이와의 방학 전쟁을 치루지 않고도 개학을 맞이했다.

그러나, 채우는 개학 첫 날 아침에도 여전히 잠에 취해 “나 침대서 자야 돼요!!”를 외친다.

또 약속을 하고 말았다. “이따가 엄마가 자전거 태워줄게 ! ”

눈을 번쩍 뜨는 녀석. “어디 갈건데요?” “음...음...기적의 도서관에 가자 !”

“네 ! 그럼 내가 말 잘 들으니까 엄마는 기다리고 있어요 ~”

 

그래서, 개학 첫 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자전거로 달려갔다.

채우는 땀에 푹 젖어 있으면서도 폭염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여름 땡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던 자전거는 성냥을 그으면 불이라도 붙을 것처럼 뜨겁게 달궈져 있다.

그래, 모처럼 나가는 거 기적의 도서관에 갔다가 부평 역사 박물관까지 다녀와야지.

 

부평 기적의 도서관은 부개동에 있다.

구청에서 신트리 공원을 따라 곧게 나 있는 보도블럭은 장애물이 없어서 자전거가 다니기에 좋다.

구청을 막 지나는데, 아는 얼굴이 손을 흔든다.

“야, 이 더운 날 자전거 자전거 타고 어디 가?” 특별한 마음을 나누는 인연, 현희 언니다. 우연히 만난 게 반가워 또 땡볕에 선 채로 한참 수다가 시작되었다.

“야, 나도 요즘 자전거 배워서 잘 탄다. 이따 박물관 공원에서 자전거 탈래?”

언니와 나는 ‘자전거’라는 공통취미에 흥이 나서 즉흥 약속을 해버렸다.

 

도서관 입구에도 어린이들이 타고 온 자전거들은 올망졸망 묶여 있었다.

채우와 나는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와 음악동화 몇 권을 읽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기 전에 부평 역사 박물관으로 건너 가려고 삼산 월드 체육관 쪽으로 왔더니,

아뿔사...횡단보도가 없다 !! 경사가 급한 육교만 험상궂게 서 있다.

아이를 데리고 육교를 오를 자신은 없는데, 어쩌지...어쩌긴,

무섭지만 또 자동차들과 함께 좌회전 신호 받아야지.ㅠ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야 하는데, 육교가 있으면 정말 대.략.난.감. 이다..ㅠ>

 

부평역사박물관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데 한참을 같은 길을 달리는 자전거를 만났다.

검은 두건에 검은 옷을 멋지게 입은 중년의 아주머니시다.

박물관 위치를 물으니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신단다.

부평5동에서 갈산동에서 운영하는 가게까지 매일 이 길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신다면서.

그때 또 다른 자전거가 휙 지나가며 아줌마가 손으로 박물관 위치를 알려준다.

멋쟁이 자전거 아줌마들 ^^

 

저녁 6시가 가까워 도착한 박물관 문은 닫혀 있지만, 박물관 공원은 한적하다.

약속대로 현희 언니는 자전거에 4살 유찬이를 태우고 등장했다.

“야, 박물관 공원 얼마나 좋은지 몰라. 바닥 분수도 있고 개울도 있고 놀이터도 있어서

애들 데려오기 딱이야. 내가 이 공원 때문에 자전거를 더 열심히 배웠다는 거 아니냐.

우리집에서 여기 오려면 걷기엔 멀고 버스 타고 와도 저 멀리 서니까 한참 걸어와야 하고 말이지.

자전거로 오니까 딱이더라. 자전거 타니까 매일 오게 되더라구.”

언니는 갑자기 자전거를 예찬가를 부르느라 입이 바쁘다.

 

“너 자전거 타고 다닐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 줄 아냐? 내가 자전거 타니까 신기허지?”

엄마들은 자전거 예찬론을 펼치느라 바쁘고,

의형제 5살 채우와 4살 유찬이는 개울에서 물장난 하느라 바쁘다.

종일 동네를 뜨거운 숨 내뿜던 햇빛도 기울고 하얀 달이 보인다.

 

“삼산 체육관 쪽 놀이터 가봤냐? 그기도 엄청 좋다야. 해가 져도 체육관 불빛 땜시 훤~해.

여기서 자전거 타고 가면 금방이야 금방. 가자, 가자.”

 

언니는 기세 좋게 자전거에 유찬이를 태우고 앞장을 서서 달리더니 얕은 오르막이 나오자 불쑥 내린다.

“내가 자전거를 잘 타는데 아직 오르막을 마스터 못했다. 오르막은 영 힘들어.

근데 니 자전거는 왜 그리 잘 올라가냐? 뭣이가 달라서?? 뭐 그르냐.”

 

체육관 가까이 오자, 생각지 못한 바닥 분수가 시원하게 솟고 있다.

언니랑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전거를 세워놓고 아이들은 해 진 것도 모르고

분수 속으로 달려간다.

 


 

“이게 좋아, 이게. 자전거니까 가능허지. 좋은 것 있으면 멈춰서 놀다가도 되고.

애들도 자전거 태우고 다니면 정서적으로 좋다니까.

저렇게 좋아하는 거 봐라야. 보리밥 먹을래?”

 

바닥 분수의 움직임이 멈추자 언니는 또 자전거로 앞장서서 보리밥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두 달만에 만난 언니와 나는 보리밥과 각종 나물의 향긋함에 취해서 밤이 되는지도 몰랐다.

집에 와야하는데 채우가 눈을 가물거리며 졸려 한다.

 

자전거를 삼산 롯데마트 보관소에 매어놓고 택시를 탔다.

언니는, 택시비를 내주면서 또 말한다.

 

“나는 유찬이 쌩쌩하니까 자전거 타고 집에 갈거다~

여 동네 길이 널직해서 자전거 타기도 좋다니까. 조심해서 가.”

 

언니는 아무래도 나보다 더 자전거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신나는 마음이 불편한 자전거 길 때문에 포기되는 일이 없기를.

오르막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도 즐거워 하는 언니처럼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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