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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이야기 1


BY 꼬마주부 2008-07-22

저, 알아보는 분 계실까요?

꼬마주부예요.

영자님, norway님, 보숭님...^^..

 

지금은 5살 아이 엄마가 되었어요.

하던 일 다 그만두고..집에서 하루하루 보냅니다.

 

지난 달부터, <부평신문>에 글을 연재해요.

평범한 주부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수필처럼 썼어요.

 

한 때는, 나의 문학방이었던 이 곳에...다시 글을 올려보고 싶어서,

문을 열었습니다.^^....다들, 안녕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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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즐겁게 쇼핑하고 싶어라

6월 22일 일요일. 날씨가 참 맑다.

밤새 장맛비가 하늘을 씻어냈는지 아침부터 쨍하게 맑다.

여름을 준비하는 6월의 하늘은, 햇빛이 닿는 구석구석까지도 반짝이게 한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먼 산도 먼지를 닦아낸 것처럼 선명하다.

오늘처럼 눈부시게 맑은 날은 자전거를 타야한다.

쨍쨍한 햇빛 아래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을 수 있는 날씨는 흔치 않다.

“여보! 이렇게 맑은 날엔 자전거를 좀 타줘야 하는데?”
맑은 날씨에 설레는 내 목소리 뒤로 무심한 남편의 한마디.
“이렇게 맑은 날엔 유리창을 닦아야하는 거야. 양면 유리창 닦이 사러 가자”
“엥? 비 오는 날에 닦아야지”
“장마 시작한다더니 언제 비가 온다는 거야? 맑아도 오늘은 베란다 창문 닦아야해.

이사 온지 4개월이나 지났는데 유리창 한 번 밖에 못 닦았잖아. 이젠 더 미룰 수 없어”
“그럼, 자전거 타고 롯데마트(산곡동) 가서 사오자”
“꼭 자전거 타고 가야해?”
“응. 날씨 좀 봐. 우리더러 얼른 자전거 타라고 햇빛이 저 난리잖아. 채우야, 자전거 탈래?”
“네! 네! 나 자전거 타고 싶어요. 씽씽 달려서 로떼마츄(롯데마트) 가요”

햇빛처럼 눈을 반짝이며 신발을 신는 5살 아들 녀석과 요샛말로 백만년 만에 자전거를 꺼내 먼지를

닦아낸 남편과 함께, 오전 10시 롯데마트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우리 가족이 네 번째 둥지를 튼 청천동 대우푸르지오 아파트에서 출발.

해는 쨍쨍하지만 구름도 둥실거리며 불어주는 바람이 있어서 덥지 않다.

영아다방사거리에서 롯데마트사거리로 가는 길엔 자전거도로가 있다.

보도블록 한 쪽으로 노란 경계선과 초록 길로 선명하게 그어진 자전거 길.

그러나 누구도 그 길을 ‘사람 길과 자전거 길’로 구분지어 다니진 않는다.

사람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유모차도 다니고 강아지도 다니고 고양이도 다닌다.

가끔은 자동차들도 올라와 앉아 있다. 입간판들도 참 당당하게 서 있다.

덕분에 아이를 태운 자전거는 구불구불한 인도 위를 아슬아슬 곡예를 해야 한다.

사람들, 간판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브레이크를 꽉 쥐어야 한다.

아이의 엉덩이는 그 때마다 쿵당쿵당 보조의자에서 춤을 춘다.

“엄마 그릏케 하믄 하나도 안 신나요. 비행기처럼 더 세게 달려요”

길이 신나지 않는데 어떻게 신나게 달리니.

기아영업소 앞에 세워진 차들 사이를 겨우 빠져나가야 하고, 농협, 국민은행 앞에서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들을 피하면서 사람들도 피하느라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데. 잘 나가다가 편의점 앞에 내놓은 파라솔이 자전거 길을 떡하니 막고 있어서 또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데 말이다.

이러니 초록색 자전거 길은 아무 소용도 없다. 그냥 그림일 뿐이다.

간단한 쇼핑을 하러 갈 때는 자전거만큼 편한 교통수단이 없는데,

가는 길이 이렇게 불편하니까 도로에 기름 흘려가면서도 자동차를 타게 된다.

무공해 자전거 타라고 캠페인 할 필요 없다. 자전거 길이 편하면 현수막 걸지 않아도 알아서들 신나게 탄다. 길이 편하면, 오늘 날씨에 롯데마트 갔다가 곧장 산곡3동 선포산까지 더 내달릴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부평에서 자전거를 타기엔 이 정도 길은 괜찮은 편이다. 차도로 내려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보도블록을 파헤쳐 공사하는 곳을 만나면, 울상을 지으며 차도로 내려가야 한다. 온 몸에 힘을 꽉 주고 질주하는 자동차들 옆을 부들부들 떨며 지나가야 한다. 지금 부평구청역에서 마장사거리가 그렇다. 집채만 한 공사 트럭과 나란히 도로를 달리면 얼마나 아찔한지, 무서워 씹던 껌도 꼴깍 삼켜버리게 된다.

마트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서야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아이도 아쉬워서 “나 안 내릴래영. 계속 자젼거 탈거예영” 한다.

남편은 오로지 ‘양면 유리창 닦이’를 살 생각에 서둘러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쇼핑을 하고 구입한 각종 청소도구를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아이를 앉혔다.

“엄마! 신나게 달릴 거예요? 슈앙 슈앙 비행기처럼 더 세게 달릴 거예요?”
아이는 신나게 못 달린 것이 아직도 아쉬운지 다시 눈을 반짝인다.
“이그, 그래. 신나게 달릴게. 꽉 잡아. 엄마가 더 빨리 달린다”
“아하하하 신난다. 아빠도 신나게 달려요. 출동”

집으로 가는 길엔 한화아파트 쪽의 한적한 골목길로 갔더니 내리막길도 있어서 제법 신이 난다.

금호아파트 사이 길을 지나, 산곡사거리에서 대우자동차 후문 길까지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오늘은 기필코 유리창을 닦겠다던 남편은,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지쳤는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낮잠 삼매경에 빠졌다. 4시에 일어나서는 아이를 데리고 문학경기장으로 야구를 보러 나갔다.

오늘도 벼르던 유리창은 못 닦았군.

그래도 괜찮다. 드디어 양면 유리창 닦이를 사놨고, 맑은 날씨에 자전거도 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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