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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이야기 2


BY 꼬마주부 2008-07-22

자전거 바구니에 ‘부평시장’을 담뿍 담아봤으면

장마라더니 갑자기 폭염이 찾아온 7월 초순,

혓바닥 늘어진 멍멍개 마냥 나 역시 집에서 기운을 잃고 며칠을 늘어져 있는데

목요일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인사도 없이 할 말부터 던지는 친정아빠의 목소리.

“너 요즘 자전거 기사 안 쓰냐?”
“써야죠. 근데 덥네”
“덥다고 안 쓰냐? 뭐 쓸 건데”
“부평구청 쪽 공사하는 길 쓸까 생각 중이예요”
“그거 말고 자판기 재료 사러 부평시장 갈 건데 그거 쓸 테면 따라 와”

백운역 철길 밑에서 커피 자판기 두 대를 운영하시는 친정 아빠는 한 달에 두어 번 부평시장으로 가서

프림이랑 설탕, 헤이즐럿 커피가루 등의 커피 재료를 사 오신다.

대형마트 보다는 한 봉지 당 400원에서 1000원 정도 싸다는 게 아빠가 재래시장으로 가는 이유다.

자전거 덕분에 교통비도 들지 않아 원가를 더욱 절약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갈 거예요?”
“어디긴. 부평공원으로 해서, 저기 롯데백화점 쪽으로 해서, 서초등학교 길로 나가면 횡단보도 있어.

그렇게 가면 금방이야. 15분이면 갈 거다”

부평공원엔 이 더운 여름 하늘 아래서도 들꽃이 만발해 있었다.

꽃길을 달릴 때면 얼마나 페달마저 가벼운지,

가끔 눈곱만한 벌레들이 정신없이 날아와 입 속으로 들어와 나도 모르게 삼켜버릴 때도 있지만

자전거가 아니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쉬엄쉬엄 구경할 수도 없다.

그게 자전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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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공원을 달리는 친정 아빠(61) 예요 ^^>

 

 

미끄러지듯 공원을 지나는데, 느닷없는 턱에 걸린다.

아침체조 단상 근처에 흉한 시멘트로 보수 공사된 공원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일부 솟아 있다.

나뿐 아니라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다른 사람들도 그 부분을 지날 때마다 ‘붕’ 뜨거나,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한다. 언제부터 이런 상태인지, 관리자는 알고 있는지,

구청에 전화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롯데백화점 쪽으로 들어섰다.

친정아빠는 백화점 주차장을 가로 질러 가신다.

길이 매끈하게 빠져있지만, 주차를 하려거나 밖으로 나오는 차들과 뒤엉켜 아빠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신다. 내가 차에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스런 눈빛으로 조심하란 표정을 보내신다.

 

나는 환갑을 갓 넘기신 늙으신 아빠가 다치실까봐 신경이 쓰이는데,

아빠는 5살 아이 엄마인 서른셋의 딸자식이 더 염려돼 자꾸만 뒤를 돌아보신다.

아슬아슬하게 주차장을 빠져나온 친정아빠는 이번엔 서초등학교 골목으로 들어가신다.

언뜻 보니, 문화의 거리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문화의 거리 쪽으로 건너려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몇 대가 자동차 틈에 섞여 있다.

“여기 명신당(문화의 거리) 앞에 횡단보도 하나 있으면 돌아가지 않아도 편하게 건널 텐데 말이다.

그 길에서 좌회전 신호 받을 때 건너가 보려고 차들 틈에 몇 번 서있어 봤는데, 그거 못할 짓이더라.

뒤에서 얼마나들 뺑뺑거리는지 후달려서 겁이 나더라구.

참, 사람 마음 간사해. 내가 운전할 때는 도로 다니는 자전거들이 그렇게 성가시더니,

자전거 타니까 어디 맘 놓고 다닐 수가 있나. 차도로 가면 금방이라도 차에 치일 것만 같지,

인도로 다니면 사람들 피하느라 브레이크만 연거푸 잡고, 이건 뭐 꼭 박쥐가 된 기분이지 뭐냐.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전거 타기를 불편하게만 생각하지. 쯧쯧”

아빠는 안전하게 서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 도로로 달리시며 아쉬운 말씀을 하신다.

횡단보도를 몇 개 더 건넌 후 도착한 자판기 재료 도매 가게.
자전거를 어디다 두고 장을 보실까 눈 여겨 보았더니, 도매 가게가 마침 도로변이라서

가게 앞에 세워두고 프림을 사신다. 아빠가 프림을 다 사시면 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과일이라도

사올 마음으로 가게 주인에게 자전거 보관소가 어딨는지 여쭤봤다.

“자전거요? 적당한 데다 세워두쇼. 보관소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다들 시장 입구 아무 데나 세워두고 장 보던데? 불안하면 자전거 끌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시든가요”

하긴, 시장에 올 때마다 자전거들은 시장 주변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자동차로 치면 불법주차 천국인거다. 나도 몇 년을 약국 앞이나 시장 내 건영아파트 주변이나,

놀이터가 있는 작은 공원 입구 적당한 곳에 아무렇게나 세워두고 장을 보곤 했다.

혹시 몰라서 친정아빠와 시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아봤다. 어디에도 자전거 보관소는 보이지 않는다.

상인 몇 분에게 더 여쭤봤지만, 보관소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한결같이

 “그냥 고 앞에 세워두고 장 봐요. 다 그렇게 해~” 한다.

싱싱한 자두 한 봉지라도 사 드리려는 내 마음을 아빠는 애써 외면하시며

 “자전거 세울 때도 없는데 시장 안으로 뭘 들어가. 그냥 가” 하신다.

시장에서 방황하던 두 대의 자전거는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친정집으로 향했다.

내가 아쉬움에 말이 없자 횡단보도 앞에서 아빠가 딴 데를 보시며 말씀하신다.

“차 갖고 오면 좀 편해졌더라. 공영주차장 생겨서. 주차료도 싸고.

그런데 자전거는 아직 힘들어. 봤잖냐. 시장으로 오던 길도 편치 않고 세워둘 곳도 마땅찮고.

시장 오면 짐이 좀 많아? 장 본 거 자전거 바구니에 가득 싣고 다니다간 장사하려고 내놓은 물건들에

걸려 넘어지거나 울퉁불퉁한 시장길 지나다가 다 떨어질걸.

너 지난번에 채우(아들) 태우고 가다가 용갈비 근처에서 넘어졌다며? 조심해야 돼.

시장에서 잔뜩 담아갈 생각 말고 지나가다가 살 것만 한 두 개 사가.

자동차도 위험하지만 자전거 타는 게 더 위험한 거야. 애 태우고 다니다가 괜히 다치지 말고”

7월 초, 시작된 여름의 낮은 덥고 길다. 햇빛에 지쳐서 페달 밟기도 힘들다.

부원중학교 쯤 왔을 때, 난 그냥 우리 집으로 갈까 고민하는데 아빠가 넌지시 또 말씀하신다.

“덥냐? 아빠 자판기에서 시원하게 냉커피 마시고 가려면 더 따라오고”

냉커피 마시고픈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부평공원을 쌩쌩 가로질러 백운역 조금 못가서 철길 아래 굴다리를 넘어가면 과일가게 옆에

친정아빠의 자판기가 의젓하게 서 있다. 자판기까지 논스톱으로 달려서 숨을 몰아쉬었다.

아빠는 주머니에서 1000원 지폐를 꺼내서 냉커피 두 잔을 뽑으시고 얼음이 더 많이 담긴 쪽을

 내게 주신다. 아, 시원해.



“오늘 일 글로 잘 쓸 수 있겠어?”

굴다리 위로 지나가는 전철 소리에 아빠의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얼음을 입에 물고 딴 곳을 보며 대답했다.

“아빠, 역시 아빠 자판기 냉커피가 최고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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