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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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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관하여


BY 깜장용 2008-07-16

 

70년대, 80년대를 소년 내지 청년, 대학생으로 살았던 분들은 낭만에 관한 잊혀진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암울한 정치경제상황(통금, 징집, 표현의 구속, 이념과 철학의 제한, 군사정권, 독재와 재벌, 고된 서민들의 살림살이 등등)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아웃렛으로서 낭만...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조금 다른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고래사냥, 통기타와 조용필 등은 낭만을 대표하는군요. 그리고 받을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편지나 엽서를 밤새 쓰보던 소녀,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등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이러한 그리움과 낭만은 어째서 가능한 것일까요? 시대가 암울해서 그 반작용으로 인간의 심성이 표출된 것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은 아닌게...그 당시의 미국이나 유럽 문화를 엿봐도 역시 낭만적이거든요.

 

낭만은 감성 + 환경으로 구성됩니다. 인간의 감성 중에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환경적으로는 시간적 여유와 궁금함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럴때 비로소 낭만이란 게 자연스레 만들어집니다. 편지나 엽서는 휴대전화나 문자에 비해 매우 낭만적이지요. 그것은 바로 그 편지나 엽서에는 그리움, 시간적 여유, 그리고 궁금함이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실시간으로 해대는 전화질이나 문자질에 낭만이 생길 여유는 없습니다.

 

이와같이 약간의 지연된 상태, 기다리는 지루함과 함께 그리움이 묻어나는 환경은 바로 70년대, 80년대가 가장 적절한 시절이 아니었나 봅니다. 자동차의 보급도 미미하고, 통신수단이나 실시간 인터넷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니...그 사연의 궁금함과 애틋함이 자연스레 인간의 몸과 마음에서 발산해 나오는 것입니다. 50년대 60년대는 고개너머 나를 기다리는 연인 또는 어머니의 낭만이라면, 70년대 80년대는 갈 길잃어 서성이는 또는 흘러가는 나그네 철학자적인 낭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산업이 발달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금융과 서비스업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고 이전 글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금융이란 뭔가요. 은행과 보험입니다. 주식까지도 포함한다면...이런 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만사를 자산(돈가치)과 그 운용의 관점에만 머물게 강요합니다. 소위 매사에 가격을 매기고 사람이나 결혼대상자도 돈으로 따져보고, 직업도 수입위주, 사는 동네마저 부촌과 빈농으로 구분하게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도무지 그리움이나 애틋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궁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비스업의 발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장면 한 그릇 먹으러 어무이, 아부지 손을 잡고 읍내나 시내까지 그런 여유를 서비스업은 뺏어 버립니다. 오토바이로 퀵배달하니까요,. 또 약주 한 잔 잡수시고 진고개를 넘어 오시며 흥얼흥얼 구성진 콧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의 낭만 또한 없어지네요. 대리운전이나 택시로 총알같이 귀가하니까요. 금융과 서비스업은 인간의 심사를 메마르고 여유없이 빡빡하게 만들었군요. 뭐...시대적 경향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만.

 

나이가 조금 드신 분들은 요즘 친구들의 사랑이나 그 방식이나, 그리고 생각하는 법에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심리불안 상태도 아니고 5분이 멀다하고 문자질을 해대니...그리고 만나서 두어달도 안 지나 운우의 정을 나눠 버리니...거기에 무슨 낭만이 있겠습니까. 멋대로 하는 기분파이거나 냉정한 계산이거나 그럴테지요. 이역만리 타국땅의 소식도 실시간으로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우리들 귀와 눈에게 전달되다 보니 모든 것이 계산과 판단의 문제가 되고 맙니다. 주가는 오를까 내릴까, 미국은 왜 저럴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직장, 학문, 연애 등등의 판단방식에서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 본 사람들은 결국 이러한 현시대의 무미건조한 초스피드를 수용은 하되 정은 두지 않습니다.

 

그 증명은 시골...스런, 아날로그스런...문화가 여전히 성업 중임을 들 수 있습니다. 시골밥상이라든가, 옹기그릇, 생활한복, 구수한 된장, 청국장등의 발효음식이 여전히 되살아나 웰빙음식화되고 있는 점, 고풍스런 가구디자인, 벽지 등등에서 이러한 70, 80년대식 낭만이 아직 40-50대 이상(以上)층의 가슴에 녹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들이 지금 사회의 주류이다 보니...

 

요즘엔 깨끗하고 화려하며 고급스런 커피숍보다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이 가끔 그리워집니다. 왠지 낭만이 있어 보일 것 같아서요. 참, 최백호가 벌써 환갑이 다 되어 가는군요. 그러고 보니 그 또래인 조용필, 안성기, 가수 김정수, 최헌 등등이 벌써 환갑줄에 들어서네요. 금융과 서비스업의 날카로우면서 냉정한 유혹을 내 팽겨치고 군산 도선장 비린내나는 거리에서 20, 30년전의 지인들과 소주 한잔하며 낭만을 생각해보고 싶군요. 느림과 그리움, 궁금함이 자아내는 그 낭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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