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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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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앉아


BY 개망초꽃 2008-06-25

십 년 후에도 내가 이 꽃밭을 가꿀 수 있을까? 이모는 꽃밭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쉰다. 십 년 후에도 혼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맞받아 중얼거린다. 이모에게 문제는 항상 건강이고 나의 문제는 혼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랑 인생을 바꾸고 싶어, 이모? 아니 절대. 이모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마른 나뭇가지 뿌러뜨리듯이 딱뿌러지게 대답을 한다. 그럼 넌 나랑 바꾸고 싶냐? 찬밥 물 말아먹듯이 나도 아니, 후딱 대답했다. 푸하하핫 서로 마주 보며 웃음으로 마무리를 한다.

 

어떤 여자가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면서 이대로 죽기엔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고 했더니 저승사자가 그럼 어떤 인생이랑 바꾸고 싶냐고 물었다. 이년 저년 다 쳐다봐도 바꾸고 싶은 인생이 없더란다. 그래서 그냥 죽는 게 속편하겠구나 하고 눈물을 닦고 조용히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내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 인생이나 저 인생이나 쓰고, 달고, 시고, 맵기는 마찬가지다.

 

강원도가 고향이라서 밭에도 감자, 부엌에도 감자, 봉당에도 감자, 밥 속에도 감자, 찌개 속에도 감자, 우물가에도 감자, 두엄 속에도 감자, 감자만 보고 만지고 먹고 살아서 그런지 나이가 먹을수록 계란형이었던 얼굴이 동글동글 닮은 감자 형이다. 제 조카예요, 하면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닮았네요, 한다. 그럼 또 마주보고 호호호 웃는다.

 

이모는 동물을 나보다 한 숟갈 더 좋아한다. 지나가는 떠돌이 개를 집으로 데리고 와 기르고 싶어 하고, 유랑고양이를 불러서 먹을 걸주고 쓰다듬어 줘서 동네 고양이들이 이모네로 모여 새끼를 낳아 가족을 만들고, 시골에 있는 잡종 개 몸에 붙은 진드기를 손으로 일일이 잡아준다.

나는 꽃을 이모보다 한 숟갈 더 뜨게 좋아한다. 이곳에 와서 하루 내내 꽃을 심는 걸 동네사람들이 보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노처녀여? 혼자 사남? 꽃을 심으러 왔다고? 직장도 없이? 고개를 기웃 갸웃거린다. 이웃마을 할머니는 내가 노처녀인줄 알고 막내아들이 아직 결혼을 안 한 총각인데 나이는 마흔일곱이고 아파트도 있고, 이모에게 와서 슬쩍 중매를 찔러 넣더란다. 좋겠다, 봉 잡았네, 이모가 놀려댄다. 내가 그랬다. 총각이면 얘를 낳아 줘야 할텐디... 이실직고를 했다. 애가 둘이나 딸린 여자라고, 그랬더니 두 번 다시 이모한테 막내아들 얘기를 안 찔러 넣더란다. 애가 둘이나 딸려있고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여자에게 중매가 들어올 리가 없다. 혹시 남자 쪽에서 첫눈에 반해 허물은 다 덮고 죽어도 나랑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모를까마는……. 하루 종일 모자 뒤집어쓰고 꽃만 심는 여자에게 반할 남자가 어디 있을꼬?

 

옆집에 91살 된 홀시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데 그 분이 며느리에게 묻더란다. 뉘기여? 맨날 꽃만 심는 여자가?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그 할아버지가 너한테 반했나보더라, 이모가 놀려댄다. 어긋나는 남녀관계, 그러다보니 아직까지 저 혼자 피고 지는 꽃이 되어 꽃만 열불 나게 심고 있다. 씨 뿌리고 모종을 솎아 화단에 심어 어느 날 꽃이 화들짝 피면 열나던 몸과 마음이 평정을 찾게 된다. 사는 것이 별거냐, 내가 좋아하는 것에 미쳐 살면 그만인 거지.

 

꽃밭을 뒤적이며 꽃밭에 앉아 또 일주일를 보냈다. 이모네 시골에서 삼주일째 꽃을 심다보니 잔디 주변이 온통 꽃모종으로 엉켜있다. 아직은 꽃필 시기가 아닌 것이 많아서 그다지 표시나지 않지만 한 달만 지나면 꽃집이 될 것 같다. 파초꽃 피는 집 또는 과꽃 피는 집 또는 도라지꽃 피는 집으로 불러질 것이다.

 

(몇달 사이 사진 올리기 쉽게 만들어져 있군요. 사진 한장 밑에 글을 넣고 싶은데...안되네요.

첫번째 사진은 저고요. 강아지랑 있는 사진은 이모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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