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되고는 조선문학연맹이라는 사회주의 문학 단체에 몸담 고 있기도 했다.(혹자는 이름만 올렸을 뿐 활동은 하지 않았다 고도 하고 나중엔 전환했다는 말도 있지만....) 6.25가 일어나고 그는 곧장 좌익계 제자들에 의하여 연행되어 납북되었다. 서울의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정인택,김기림,박영희 등과 같이 수용되었다.(김기림이 골수 좌익계였다는 게 놀랍다) 그러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되었다. 이 사실은 납북되었다가 탈출한 계광순의 회고에 의하여 확하 게 밝혀져 있다. 그 당시 이광수,계광순 등 33인이 수감되었다 가 평양감옥이 유엔군의 폭격에 의하여 폭격된 후 정지용은 행 방불명된 것이다. 따라서 정지용은 납북된 것이라고 보아도 틀 린 주장이 아니다.
그런데 놀랄만한 사실은 그의 두 아들도 월북해서 북한에 살 고 있다는 점이다. 1988년 도엔가 북한에 사는 그의 두 아들들 과 남한에 사는 아들과 딸이 이산가족 상봉 때 만났다는 사실 이다. 그때 북한에 사는 두 아들은 북한에서 자기 아버지(정지 용)를 못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면 그는 평양감옥에서 폭격으로 사망한 게 틀림없을 일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정지용은 남한의 거제도 수용소에 있다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지용의 시가 많은 질곡 속에 쓰여져 이런저런 모습으로 우 리 앞에 서 있듯이 대한민국이라는 얼굴도 그렇듯 여러 모습으 로 바뀌고 변화되어 지금 이런 모습으로 여기 서 있다는 생각 을 하면서 그런건 그런대로 저러건 저런대로 그때의 상황에서 봐주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맺고 그의 생가와 작별했다.
종달새/ 정지용
삼동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어떤이가 정지용시인은 어머니 없이 자라지도 않았고 특별히 외롭지도 않은 유년이었는데....\'종달새\'라는 시에서 삼동내라는 표현은 그 시절.
\'모두가 어렵던 형편을 시인의 눈으로 표현한것 같다\' 고 평했다.
그러나 정시인은 아주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 의 아버지는 이어 후취를 얻어 살았다.
내가 그의 문학관을 찾은 이유는 단 한 구절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 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돌아오는 길에는 그의 詩歌 <향수> 를 허밍으로 흥얼거리 고 있었다.
삼동내 [三冬내] [부사]<북한어> 추운 겨울 석 달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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