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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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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우리 엄마


BY 그대향기 2008-05-16

 

 

어제 한창 수련회가 진행 중이어서 주방을 오락가락 식사를 준비 중인데

남편이 불쑥 경주에서 막내 오빠가 내려오고 계시단다.

엥?

아침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웬일?

남편도 모르겠다는 눈치로 어깨만 으쓱~~하고는 지나간다.

250 명 점심을 주고 설겆이 기계에서 그릇들(식판) 다 세척해 두고

주방을 대충대충 정리하고 막 나오려는데 오빠가 도착하셨다고

남편이 주방 쪽으로 손나팔을 하고 부른다.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밖으로 나오니 정말 오빠가 오신거다.

연세 높은 친정엄마가 오빠 집에 계시기에 갑자기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걸까 싶어서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아침에도 연락이 없더니 웬일이에요?\"

기쁜 얼굴을 못하고 묻는 내가 우습다.

친정오라비가 오셨는데 웬일이냐고 다짜고짜 물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열흘 전에 경주 엄마네 가서 용돈도 드리고 같이 목욕도

하고 헤어졌는데 며칠이나 지났다고 연락도 없이 오빠가 내려오셨는지

반가움보다 궁금증이 앞서니 어째.

\"어무이가 이 꽃하고 돌미나리 뿌리 갖다주라고 어찌나 볶으시던지

예고없이 점심 먹고 그냥 내려왔지 뭐.\"

 

못말리는 엄마다.

딸이 꽃 좋아한다고, 꽃밭 가꾸고 단지 뚜껑이나 큰 항아리 반으로 뚝 잘라서

수련심어 놓고 수생식물 키우는게 취미라고 세상에나 두시간이나 걸리는

경주에서 바로 이웃도 아닌데 오빨 보내셨다.

세상에나.....

봉지 봉지 꽃들의 뿌리며 단지 뚜껑들, 미나리 뿌리가 서너자루....

오빠도 허허허 웃으신다.

\"어무이가 가라 하시는데 거절도 못하겠고 얼마나 딸을 주고 싶었으면

이 무거운 미나리 뿌리를 유모차에 며칠을 캐서 날랐단다 글쎄.\"

엄마도 참........

돌미나리는 이 시골에 많이 있는데 굳이 경주에서 깨끗한 물에서 캤다며

기어이 딸네 갖다 주라셔서 오빠가 두시간을 달려서 오신거다.

단지 두껑은 내가 이끼도 심고 자잘한 야생화도 심고

다른 화분보다 운치 있고 진열효과도 좋아 애용하는데

엄마가 보고 가시더니 하나 둘씩 모아 두셨다가 보내신 모양이다.

작년에도 내가 크고 작은 항아리들을 졸졸히 화단 가에 엎어두고

화분을 크기에 맞게 얹어 두었더니 이쁘다시며

다음에 오빠를 또 시켜서 아예 철공소에 가셔서 큰 단지를 반으로 뚝~~

기계로 잘라서 보내셨다.

가로로 자르는건 다소 쉽지만 항아리가 제법 키가 있는데

그걸 세로로 자르면서 기계톱의 날도 뭉개지더란다.

세로로 길게 잘라서 눕혀 놓은 항아리는 진짜  색다르게 멋있다.

지금 그 잘린 항아리에는  수련이 크고 있고 다른 수생식물이 노오란 꽃을

피워 올리며 얼마나 이쁘게 자라고 있는지....

아무도 항아리를 반으로 뚝ㅡㅡ 자를 생각을 못했을거다.

손으로는 어림도 없다.

엄청난 열가마에서 몇번을 구운 항아리는 단단하기가 돌 이다 완전.

수입 화분들은 잘 깨진다고 했더니 엄마가 일을 저지러셨다.

 

아무튼 엄마가 보내신 알 뿌리 꽃들은 수선화에 이름도 잘 모르는 꽃에

송엽국 다발까지 여러 종류를 빈 화분에도 심고 엄마가 보내신 큰 화분에도

나누어 심으면서 흙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않고 화분에 다 쓸어 담았다.

엄마의 냄새를 맡듯 엄마의 손을 만지듯....

대충 정리해서 다 나누어 심고 오빠랑 커피 한잔 하고

저녁을 드시고 가라해도 저물기 전에 간다신다.

오빠는 야간 운전을 진짜 싫어하시는 걸 알기에 그냥 보내드렸다.

기름 값이나 하고 가시라고 적은 수표 한장을 찔러 드리니 씨~익 웃으신다.

비싼 꽃값이라며.....

 

엄마는 그렇다.

뭘 해 주고 싶으시면 예고도 없으시다.

꽁꽁 생각을 뭉쳐 뒀다가 기어이 오빠를 시켜서 내게 전하신다.

그런 엄마의 부탁을 오빠는 잘도 들어 주신다.

오빠가 넷이나 되지만 유독 막내 오빠가 내게 살뜰하시다.

우리가 많이 어려웠을 때에도 은행 카드로 대출도 내 주고

이번 딸 결혼 때도 축의금을 가장 많이 내 주셨다.

지금 건강한 상태가 아니고 대장암 수술을 하시고 요양 중이신데도

장거리 운전에 거액의 축의금까지.............

축의금이 너무 많다고 하니 보험금 탄게 있으니까 걱정을 말란다.

기분은 더럽지만 그래도 수천만원의 보험금이 현금으로 있다며

이 힘이라도 있는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잘 쓰라신다. 

우리가 이젠 웬만큼 하고 살고 사람구실을 할 만큼 인데도

오빠는 늘 우리 가족을 살뜰히도 챙기신다.

명절 때가 되면 꼭 꼭 언제 오냐고 묻고

우리가 가기 전에는 처가에도 안 가고 기다리신다.

울케가 싫어한다고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

올케는 같은 경주 시내니까 금방 다닐 수 있다며

우리 가족이 왔다 가야 처가에 가신다.

힘든 투병 중인 오빠가 회복이 잘 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면....

많은 병원비에도 다행히 보험을 여럿 들어 둔데 있어서

수술비며 입원비가 나와서 그럭저럭 생활은 된다며 걱정 말라신다.

올케도 맞벌이를 하고 있고.........

보험료가 아무리 수천만원이 나왔어도 앞으로가 문제다.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 수술이 남았는지

수명은 얼마나 남았는지....................

처음 발병을 알고 병문안 갔을 때 그 쓸쓸해 하던 모습이란.....

\"내가 요기까지 라니....\"

못내 끝을 맺지 못하고 자신의 발병이 믿어지지가 않는다던 오빠.

나보다 세살 위니까 올해로 쉰 하나.

아까운 나이고 한창 나인데....

곧 재차 수술을 해야 한다며 고통이 얼마나 길지 깊을지 걱정을 많이 하신다.

그런 오빠한테 엄마는.....

 

오빠는 엄마가 먼저 가실지 오빠가 먼저 갈지 모르니까 최선을

다 해서 엄마 말씀을 받들려고 하고 있다.

지금은 병원에서 나와서 요양을 하다가 항암치료도 한다며

예나 변함없는 유머에 웃음까지 지으려 하는데 빛이 없어보인다.

번득이던 재치와 유머도 빛을 잃었다.

금방 뽑은 새차처럼 늘 광이 나던 짚차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스킨만 발라도 반짝반짝 빛이나던 얼굴에는 여기저기 반점이 생겼다.

아~~~

가슴 아픈 만남이다.

당장 수술실에서 안 만났다 뿐이지 언제 어느 날.....

상상도 하기 싫지만 현실이다.

그래도 오빠는 한껏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무쏘 스포츠를 몰아서

경주로 가신다.

곧 있을 재수술을 위해 몸을 추스린다면서도 밝게 웃으려 무진 애를 쓰신다.

엄마가 가슴이 많이 아프시겠다.

엄마는  노환으로 늙기만 하는데 오빠는.....

엄마를  보듯이 꽃을 키워야지.

오빠를 보듯이 예쁘게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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