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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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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삽화


BY 제르트 2008-05-16

내 나이 열 두살 쯤이였던가 보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던 내
가 서울 변두리 낯선 학교에 전학을 오고부터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어느것 하나 친근 할 수 없는 학교생활도 싫었고 숨 
쉴 틈없이 달라붙은 닭장 같은 집들도 싫었고 내가 과연 앞으
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학교 성적도 점점 떨어져가고 있
는데....나는 왜 세상에 나왔나?
무엇때문에 살고있나? 

나는 이제 어떡하나?
며칠 새 잠을 설치던 나는 어느 일요일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가족들 앞으로 편지 몇장을 써서 책꽂이 위에 올려놓고 다시
는 못돌아 올것 같은 우리 집을 몇 번 돌아본 후 목적지를 향
해 달리기 시작했다.

석가모니는 나이 30이 넘어서 출가를 결심했다는데 나는 겨우 
열 두살에 출가를 결심했으니 ....

나는 이제 산속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어살 것이다.
아주 깨끗하고 고귀하고 조용하게....

손에 힘이 주어졌다.나는 두 주먹을 불끈쥐고 뛰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해도 ㄱ산에는 찾는 발길이 드물어서 등산객 몇몇이  오갔고 산아래에서 놀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일 뿐이었
다.

계절은 봄이 무르익어 산과 들이 푸르렀고 곳곳에 분홍빛 
철쭉이 온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언젠가 시골에서 올라오신 고모와 관악산엘 갔었는데 여승들 
몇이 살고있는 조그만 암자를 봐 둔 곳이 있어 내 발길은 그곳
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듯 했다.
집에서 그 암자까지는 30리가 족히 넘는 거리이다.
버스도 없는 그 길을......어디서 그렇듯 힘이 솟았는지.
지치고 힘이들어 길가에 앉았다가 또다시 일어나 걷다가 그렇
게 몇 시간이 걸려서 멀리 암자가 보이는 곳까지 당도했을 때 
밭에서 일을 하던 여승 한 분이 나를 불러세웠다. 
\"얘 너 어디서 오니?\"
\"저 쪽에서.....\"
\"혼자서 왔니?\" \"......
\"저어 스님이 될려구....\"
여승은 빙긋이 웃더니 날 아래위로 자꾸만 봤다.
\"부모님은 계시니?\"
\"돌아가셨는데요\" \"아이구 그렇구나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여승는 매우 안타가운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암자쪽으로 천천
히 걸으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속으로 살아계신 부모님을 돌아가셨다고 선듯 말해버린 
것에 가슴이 두근거려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여승은 암자안으로 들어서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안에서 왠 선머슴처럼 생긴 여자가 뛰어나오며
\"스님 지금오세요?\"
머리는 모두 삭발을 하고 꼭 사내처럼 생긴 여자였다.
내 나이보다 너 댓살 쯤 위로 보였다.

\"얘가 배고플 것같구나 점심먹이고 같이 산에가서 산나물 좀 
뜯어라\" 
\"이 언니 하고 같이 있거라 나는 일하던 거 마저하고 오마\"
여승은 괭이를 들고 아래밭으로 총총 사라졌다.

쉰목소리는 내게 몇살이냐고 묻고는
\"여기 살려고 왔니? 스님하고는 잘 아니?\"
난 아무대꾸도 하지 않았다.점심밥은 산나물에 고추장만 달랑 가져왔고 쌀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든 꽁보리밥이었다.
나는 배가고프면서도 두어숟가락 뜨고는 상을 물렸다.
조금 후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아랫방에서 나왔다.
\"얘는 누구니?\"
\"응, 스님이 데리고 왔어 아무얘기도 안 해\"
청년은 이상한 듯 날 힐끗 바라보고는 쉰목소리에게 산에 가자
며 자루 하나를 들고 앞서 걸어 나갔다.
나는 쉰목소리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울창한 산 속에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나무가 숲
을 이뤄 그들을 따라 갈 수 조차 없었다.
나는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산나물을 찾아헤맸다.
앞서간 그들은 이미 찾을 수 없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내 몸
은 손등이며 다리가 나무에 긁혀 피가났다.
울컥 눈물이 솟았다. 지금 쯤 식구들은 나를 찾아 애타게 헤매
겠지? 산나물은 뜯을 생각없이 여기저기 헤매이다가 멀리 맞
은 쪽 바위에 있는 그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두 눈을 꽉 감
고 소스라치며 산 아래로 뛰었다. 나는 그들에게 들킬새라 정
신없이 내달렸다.암자도 지나고 여승이 일하는 밭도 지나고 정
신없이 내달리다가 한 두집 인가가 보이는 곳에 다다랐을 때에
야 조금씩 숨을 돌리며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내가 멀리서 그 두 사람을 발견했을 때, 두 사람은 넓적한 바
위에 걸터 앉아 서로 부등켜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걸어서 집까지 왔는지 내 몰골은 그야말로 큰 짐승에
게 쫓기는 작은 짐승처럼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빨래를 하
고 계시던 엄마가 나를 보시며
\"넌 아침부터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다 오니?
점심이나 먹은 거야? 너 누구하고 싸웠니?\"
 
나는 말없이 방에 들어가 책꽂이에 아직 그대로 놓여있는 
편지를 구겨 주머니에 넣고는 오랜 잠에 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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