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음력 2월 2일.
친정엄마의 여든 네번째 생신이다.
주일이고 이 곳 일이 바빠서 오늘 오후에 번개처럼 날아서 두 시간 거리에 떨어져 계시는
엄마한테 다녀왔다.
엄마를 만나러 간게 아니고 그냥 스치는 바람처럼
번개처럼 엄마를 만나서 잠깐 저녁을 같이 하고
용돈쥐어 드리고 4월 5일에 외손녀 결혼식에서 만나자고 하고선
안녕히 밥 잘 드시고 기운내서 계시라고 작은 몸을 꼬 ㅡ옥 안아드리고 휭~~~
담벼락에 기대신 채 멀어져 가는 딸과 사위와 외손녀를 태운 차를 하염없이 영원처럼
바라보시던 엄마를 뒤로 하고 쫒기듯이 차를 몰아 내려왔다.
친정 집에만 도착하면 자고가냐고 내일 아침에 가면 안 되냐고 하시는 엄마.
딸이 얼마나 바쁜지 너무나 잘 아시지만 늘 한결 같이 엄마 곁에서
하룻 밤이라도 단 몇 시간이라도 자고 가는 걸 보고 싶으신 엄마.
은근슬쩍 내 손을 만지시고 등을 쓰다듬으시는 엄마.
뭘 줄까? 사과 먹을래? 배 깍아줄까? 밥 차려줄까? 텃 밭에서 상추랑 정구지 뽑아서
비빔밥 차려줄까?......
밥을 먹고 왔다고 해도 오다가 휴게실에서 군것질을 하고 왔다고 해도 냉장고로
베란다로 일저리 맴을 도시며 먹거리를 찾아내시는 엄마.
내가 막내여서 늘 안타깝다시는 엄마가 오늘은 너무도 늙어버리신거다.
당뇨와 풍치가 있어서 부분틀니가 맞질 않아서 빼어버린 입은 합 ㅡ죽.
워낙에 기본 치아가 가지런하시고 튼튼하시어 틀니 없이 계시다가
최근에야 해 넣으셨는데 잇몸에 통증이 많아서 빼어버리고 나니 정말 할머니다.
말씀을 하셔도 흐르고 쉭쉭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들린다.
단단한 음식도 잘 못 드시고...
엄마와 남편과 나 , 큰 딸, 오빠네 큰조카 .
오빠와 올케는 일이 있어서 같이 못하고
내일 엄마의 진짜 생신 날에 미역국과 맛있는 반찬을 차려 드릴테지...
이렇게 다섯이서 한식부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젊으셨을 때는 회를 좋아하셨는데 요사이는 통 씹지를 못하셔서 무른 음식만 선호하신다.
자리에 앉히시고 내가 옛날에 엄마가 즐기시던 음식을 기억을 더듬어 그릇에 담은데
아....
무심했던 딸은 엄마가 뭘 즐기셨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엄마는 내가 가면 어릴 때 내가 좋아했던 음식을 잘도 기억하시어 준비해 주시는데
하나 밖에 없는 딸은 엄마의 기호식품을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그 옛날부터 엄마는 아이들의 식성만 고려하시고 당신의 입맛에는 뭘 맞추려 하지
않으신걸 딸인 나도 몰라주다니...
엄마는 고향이 바다 쪽이시라 생선을 많이 좋아하셨던 것 같고
과일은 사과랑 천도 복숭아?
물김치.
그래 그래 엄마는 쏙음배추 어린 것으로 담근 물김치를 좋아하셨지....
콩 잎을 , 푸른 콩 잎을 따서 콩 잎 김치도 잘 담궈드셨고
강 된장을 보글보글 밥 위에 작은 뚝배기에 얹으셔서 콩 잎 쌈을 해 주셨어.
언제 또 엄마를 모시고 저녁을 같이 할 시간이 날까?
사는게 뭔지 엄마도 자주 못 만나고 맨날 동동거리며 사는지....
엄마는 딸이 보고싶어도 혼자서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고 두 세시간을 달려야 하는
딸네 집엘 오지를 못하시고 딸이 와 주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신다.
무릎이 좋지 못해서 아무 곳이나 용기 있게 나서질 못 하시고 마음만 뻔~~~
다섯 남매를 위해 밤을 낮 삼아 억척 같이 일하고 자식들 사람 노릇하게 키워 놓곤
정작 본인 엄마는 기름 다 빠지고 뼈 마디마디가 이지러지고 쪼그라들어 움직일 때 마다
뼈 에서 관절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목욕탕에서 보면 유난히 휜 피부의 엄마는 이젠 검버섯이 얼굴에 거뭇거뭇 피어있고
얼굴은 부어서 바람넣은 풍선 같고 귀는 잘 들리지 않아 고함을 질러야 들으시고....
보청기를 해 드려도 잡 소리가 너무 많이 들리신다고 빼 놓으시고.
엄마를 쳐다보고 큰 소리로 해 드려야 겨우 알아들으시고 고개를 끄덕 끄덕.
오늘 단 몇 시간의 바쁜 여유를 내서 엄마를 번개팅 하고 온 것은
큰 딸이 시집 가기 전에 외할머니를 뵙는게 도리인 것 같아서 큰 딸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솔직히 난 엄마한테 나를 자랑하고 싶었다.
엄마 딸이 딸을 낳아서 이렇게 예쁘게 키워서 시집 보내게 되었다고
엄마의 딸이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엄마도 고맙다고.
내가 불임이 아니게 낳아 줘서 고맙고 특별한 유전적인 결함을 물려주지 않아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해 줘서 고맙고 그런 딸이 또 엄마의 뒤를 이어서
착한 남편을 맞아서 시집을 가게 해 줘서 엄마~고마워요.
이렇게 자랑하고 싶어서 갔다.
너무나 작아지신 엄마를 꼬옥 안아드리면서 잘 계시다가 결혼식 때 꼭 오시라고 했다.
자랑스런 내 딸이 자랑스런 손녀를 시집보내는 기쁜 날에 축복해 주시라고...
15 년 전에 우리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막내가 너무 어리고 일은 너무도 많아서
일이 몸에 붙을 때 까지 엄마를 모시고 와서 막내를 맡긴 몇 달간.
바쁜 딸을 대신 해서 막내를 업고 낯선 시골 마을 너른 운동장에서
막내를 달래서 재우시고 학교 갔다 오는 두 외손녀를 거두신 엄마.
그래서인지 우리 애들은 외할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가끔 가는 외갓댁이지만 갈 때 마다 애들에게 뭘 못 해 줘서 안타까워 하시는 엄마의 엄마.
비록 늙고 작아지고 작아진 몸이지만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은
한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도 막아주시고 칠 팔월 폭염도 서늘하게 식혀주신다.
우리가 들어서서 인사하기 바쁘게 속 고쟁이 깊숙한 비밀 주머니에서
애들 용돈부터 챙기시는 엄마.
오늘도 봉투에 넣어서 드리는 용돈을 큰 딸의 혼수마련에 보태라시는 엄마.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과일 전에 들러서 가장 크고 단 맛이 많은 딸기 두 상자를
사서 드리니 기어코 한 상자는 우리 막내를 갖다 주라신다.
우리 집에 딸기 사 두고 왔다고
과일은 많다고 엄마 치아가 안 좋으시니 두고 드시라고 한사코 내가 마다 했다.
올케가 자주 사다 주신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맞벌이를 한다고 오늘도 직장엘 가고 없던데 ....
엄마를 아쉽게 이별하고 올케가 일하는 직장으로 얼굴이나 만나보려고 찾아갔다.
한창 바쁜 시간이라 정말 잠깐 인사만 하고 결혼식에서 만나자고 하곤 헤어졌다.
막내 올케지만 엄마를 모시는 올케라 내가 늘 고맙게 여기고 조카들도 챙겨 주는 편이라
큰 갈등없이 지내는 올케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을 상속 받은 죄로(?) 엄마를 모시고 사는 착한 올케지만
나만 가면 엄마의 흉을 한바가지 쏟아 놓는다.
고모야 , 어무이가 뭐는 어떻고 어무이가 뭘 어쨌고 어무이가 밭에서 농사지어
형님네로 어디로 막 퍼 주시고 몸 아프다고 하시는데 안 했으면 좋겠다 등등....
들어서기 바쁘게 엄마 흉을 내 놓는 올케지만 난 언제나 엄마를 두둔하지 않는다.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냐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자식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시는 것이
얼마나 건전한 생각이시냐 엄마 돌아가실 때 까지만 올케가 참아라 복이 있을 거다
부모 잘 모셔서 나쁘게 되는 사람 못 봤다 그저 고맙다......
난 올케를 달래고 칭찬만 하고 돌아온다.
엄마 편을 들었다가 내가 오고 나면 그 여파가 엄마한테 갈 까봐.
잘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 때문에 엄마와 올케의 사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막내를 낳을 때 엄마가 있는 막내 오빠 집에서 몸 조리를 할 때 정성 껏 날 보살펴
줬던 고마운 올케이기도 하다.
물론 엄마와 오빠의 엄령이 있긴 했지만 본인이 싫다면 어쩔건가?
난 올케의 공을 함부로 버리거나 잊지는 않는다.
올케는 큰 딸의 손을 잡고 많이 이뻐졌단다.
인사치례지만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은 아니다.ㅎㅎㅎㅎ
아까와서 어째 보내느냐고...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아까와서 어찌 보내냐고 한다.
그래서 아까와 아들을 하나 더 얻는다고 그런 맘으로 시집 보낸다고.
올케는 아들만 둘.
엄마!!
더 많이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시다 주무시는 잠에 천국가세요.
이 땅에서 너무 오래 고통 받지 마시고 건강하게 계시다가 며칠만 쎄게 편찮으시다가
자식들 효도 찐하게 받으시고 가세요.
아쉽고 못 다하고 미련이 남더라도 그냥 깜빡 조는 잠에 잊으시고....
헤어지면서 안아 본 엄마는 너무도 작은 할머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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