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꾸는 꽃밭엔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자란다.
튜울립이나 양귀비 같이 화려한 꽃이 있다.
그 아름다움에 바라볼 때 마다 마음이 설렌다.
바늘꽂이를 닮았다고 해서 핀큐션이라 부르는 보라색 꽃도 있고 달콤한 향기를 가진 스위트앨리섬이라는 희고 잔잔한 꽃도 있다.
그리 화려한 꽃이 아니어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꽃들이다.
배롱나무나 박태기나무, 복숭아나무 처럼 꽃피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꽃그늘 아래 서면 내가 마치 꽃나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꽃도 있다.
흔히 잡초로 생각되어 가꾸는 사람도 없는 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의 하나, 내가 열심히 가꾸고 있는 것이 괭이밥이다.
내가 가꾸고 있는 괭이밥은 꽃밭에서 자라지 않는다.
콘크리트 포장한 인도의 콘크리트와 콘크리트 사이에서 자란다.
콘크리트 틈이 좁다고 불평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이다.
요즘 이 작고 조그만 친구에게 마음을 단단히 빼앗겼다.
열심히 다른 잡초를 뽑아내어 콘크리트 틈을 괭이밥으로 가득 채우는 일에 열심이다.
다른 잡초만 뽑아주면 콘크리트 틈은 괭이밥으로 가득 찬다.
콘크리트 틈이 파아란 괭이밥으로 가득차고 때론 노란 꽃을 잔뜩 매달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괭이밥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꽃을 피우는, 자신이 처한 위치를 불평하지 않는, 눈에 띄지 않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볼 수록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는 요즘 앙탈이 심하다.
다른 사람은 다 날 인정하고 알아주는데 같이 사는 남편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앙탈이다.
아니 앙탈을 넘어서 날마다 꼴불견을 연출한다.
괭이밥을 바라보면서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겹친다.
알아주는 사람보다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더 많은데, 꽃을 피우고 있어도 밟고 가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그래도 싱싱하게 콘크리트 틈을 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런 것에 초월한 듯 하여 부럽고 한낱 풀꽃만도 못한 내 됨됨이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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