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장자장 우리 아기 자장자장
아름다운 꿈나라서 너를 부른다
계수나무 달나라에 토끼 잠드리
그리웁지 않느냐 자장자장
잠자거라 우리아가 귀여운 아가
구슬같이 고운 눈을 고요히 감고
복스러운 엄마품에 고이 잠들어
아름다운 꿈나라로 구경 가거라
잘자라 우리 아가
앞 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밤
잘자라 우리 아가 잘 자거라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잔다 자장자장
멍멍개도 잠이 들고 꼬꼬닭도 잠이 든다
자장자장 잘자거라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멍멍개야 우지마라 꼬꼬닭아 우지마라
우리아기 잠을 자니 우지마라 우지마라
자장자장....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자주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더랍니다
흥얼거리면 무심코 떠오르는 가사들과 선율이
습관처럼 입에 오르내리고
그땐, 그 자장가들을 어떤 경로로 익혔을까
누가 불러주어 기억에 각인 되었을까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요.
연륜의 부피가 더해 간다는 것.
어쩌면 추억속으로의 회귀를 의미함 아닐까
요즘 자주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작년, 시골 들어와 갖게된 흙집 덕에
번잡한 도시의 고층아파트에서
아토피와 감기를 달고 사느라 약봉지를 노상 껴안고 사는
세 살, 다섯 살 조카애와 함께 살았었습니다.
동생네는 상당규모의 체인형태의 가게를 꾸려가는데다
워낙 제부형제들 모두가 밤을 낮처럼으로 활동하는 행태라선지
그에 길들여진 조카애들은 활동량이 적어 피곤에 찌들지않은 날이면
시골 한밤중인 저녁 11시가 되어도 도무지 꿈나라로 떠날 준비가 안되어
발버둥을 치곤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초저녁 잠이 많은 이모부는 소란스럼을 견디다 화를 내기 일쑤였고
그럴때면 시골잠에 길들이기 전까지 자주
노래 듣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을 꼬두겨 나란히 눕게 한 뒤
전등을 끄고 함께 누워 다독이며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습니다.
제 아이들 어릴적엔 무심히 습관처럼 불러주며 지나쳤는데
애들을 다독이며 흥얼거리던 어느날 문득
기억 저 모퉁이에서 조카애의 어미가 되어있는 동생을 안고
하얀 메리야쓰와 파자마를 입은 아버지께서
흔들거리며 자장가를 부르시던 모습이 떠오르는데
가슴이 찌르르 전류처럼 자잘하게 흔들리더라구요.
아버지...
한때는 미움이었다가 아픔으로
그리고 가슴 저미는 애잔함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아버지.
지난주 어머니가 계신 곳에 들러
찢겨 너덜거리는 앨범을 뒤적여 사진 한 장을 핸폰에 담아왔습니다.
독학으로 합격하셨다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에 평생 충실하셨다면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아도 좋았을테고
강직해 부스러지는 아픔을 겪어내지 않았을테고
끝내는 도망자처럼 술에 의지해 비틀거리며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미움과 아픔이 아닌 그리움으로만 남았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