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월이 묻는다. 이곳에 없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뭐 게? 숟가락 팔던 언니가 두 가지는 알겠는데 한 가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 한 가지가 이곳엔 창문이 없다고 한다. 쇼핑하던 고객들이 쇼핑을 하다가 밖에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마음에 변화가 생겨 쇼핑을 그만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서 창문 없는 건물을 올린다고 한다.
그럼 두 가지는? 시계가 없단다. 시계를 보면 고객님이 서둘러 쇼핑을 할까봐서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일층에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급하게 쌀 일이 생겨 백화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이층으로 올라가게 해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층으로 휘둘러 내려 오다보면 뭐라도 하나 사고 싶은 충동을 주려고 일층엔 화장실을 안 만든다고 하니 이런 기발하고 엉뚱한 생각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별 효과는 없다고 본다.
창문 없는 건물에 서서 나는 아침이면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주황색 소파가 놓인 휴게실로 들어가 십오 분간 휴식을 취하고 점심엔 쿠리쿠리한 냄새가 나는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고, 저녁엔 아들아이 저녁 먹을 걱정을 하고 밤엔 퇴근 준비를 한다. 창문이 없다고 못할게 없다. 지하실 셋방에 살아도 삼시세끼 밥을 끓여 먹고, 고층 건물에 살아도 떨어져 죽을 인간은 죽지만 살아낼 인간은 으싸으싸 살아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창문이 없어도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지금 눈이 내리는지 눈이 그쳤는지 건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눈이 계속 내린데, 내리자마자 녹아내린데, 올 해 들어 제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일거야. 날씨가 포근해서 다행이야. 얼어붙어버리면 차가 막힐 텐데 그늘엔 눈이 쌓여 있겠지?
겨울이라 창고는 화장실처럼 바깥기온과 닮아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창고 열쇠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창고를 향한다. 고객과 매입이 이루어지면 창고에 가서 물건을 가지고 와야 한다. 창고 열쇠는 자물쇠에 딱 맞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내가 능력이 없고 매력이 없어서 안 맞는 것이 아님을 밝혀 두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자물쇠를 맞이하지만 자물쇠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나를 흔쾌히 받아들일 때가 있고 꿈쩍을 안하고 벌리지 않을 때가 있다. 타월은 자물쇠 잘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살짝 집어넣고 넣자마자 살짝 돌려버려 그래야 문을 활짝 열어주거든. 절대 강제로 다가서면 안 돼 살짝, 사알짝…….알았지? 타월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짝궁 자물쇠를 두드려 보지만 자물쇠는 여러 열쇠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당하다보니 이제는 구멍이 닳을 대로 닳아버려 새것으로 바꿔야 할 지경에 도달을 했지만 포주 쪽에서는 더 울겨먹으려고 바꿔주지를 않는다. 할 수 없다. 내 열쇠로 내 능력껏 닳아빠진 문을 열 수 밖에. 살짝, 사알짝.
타월은 커피 잔 놓인 내 코너 바로 옆에 산다. 색색의 고운 타월을 판지 이년이 넘었다고 한다. 동갑인 그녀는 명랑쾌할하면서 잔정이 많은 여자다. 쇼핑센터의 \'ㅅ‘ 자도 모르는 나를 ’ㅅ ‘자를 알게 한 여자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녀는 내게 다정했다. 다만 그녀에게 먼지 난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녀는 타월에서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맞은편 이불 집 코너에서 먼지가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고 우긴다. 타월에서 먼지가 나든 안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내가 팔고 있는 그릇들을 외우고 손님들을 대하고 이곳의 특성을 익히는 일이 신경이 쓰이고 급할 따름이다.
창고 문을 열자마자 전등스위치가 보인다. 스위치 위엔 컴퓨터로 뽑은 경고문이 붙어있다. ‘소등철저, 미소등시 창고 축소.’ 나의 실수로 인해 창고가 줄어들까봐 물건을 찾는 내내 불을 꺼야한다는 글씨를 뇌 속에 박아둔다. 내 물건이 놓인 곳은 창고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어둡고 냉한 바람이 분다. 창고 끝 꺾어진 곳에 내가 있으면 아무도 내가 있는지 모르고 소등철저로 못이 박혀버린 자기의 물건을 가지러 온 직원들이 반사적으로 스위치를 내리고 나간다. 어둠속에 갇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잠깐이지만 까마득한 그런 기분 말이다. 더듬더듬 살길을 찾아가는 더러운 그 기분을 말이다. 한탄을 한다. 누가 내 인생을 어둠속에 집어 쳐 넣었는지 그 놈을 향해 냅다 욕을 내뱉는다. 이곳은 아무도 없는 장소일 뿐이고 어둠속일 뿐이고 창고가 축소될까봐 버릇처럼 스위치를 내리는 먹고살기 위한 일터. 그리고 참, 이곳은 창문이 없어서 햇빛 한줄기 들어오는 투명한 틈이 없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머리에서 쇼핑센터는 창문이 없어야 한다는 독창적이고 기똥찬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그 놈에게 화풀이를 해댄다.
아침 조회 때마다 퇴근 때마다 소등을 강조한다. 쇼윈도에 불을 끄지 않으면 팀장에게 불려가서 고개를 조아리고 죄송합니다, 해야 한다. 다음에도 소등을 하지 않으면 퇴사하시오 소릴 들어도 네 죄송합니다, 해야 한다. 휴게실에 난로 코드를 빼 놓지 않으면 난로를 압수한다고 했다. 가끔은 말이다, 아주아주 가끔은 말이다. 정말로 창고를 축소하는지, 퇴사하라고 내 쫒는지, 난로를 압수하는지 실험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특유의 오기로 말이다.
커피 잔 놓인 내 집은 장사가 잘된다. 살기 힘들다 경제가 어렵다 떠들면서도 비싼 명품은 잘 팔려 나간다. 우윳빛 커피 잔에 커피를 타 놓고 있으면 행복이 솔솔 피어오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우선은 그런 고가의 커피 잔을 살 수 있다는 여유가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게 아닐까?
유난히 매끄러운 커피 잔을 만지고 있으면 거칠 거렸던 손바닥이 매끄러워진다. 내가 팔고 있는 커피 잔에 커피를 마시면 커피 맛이 틀리다고 해서 짝이 안 맞는 커피 잔이 창고에서 뒹굴뒹굴 놀고 있기에 믹스커피를 타 마셔봤다. 특별나게 호기심도 없는 나지만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대가 내게 다가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자고 했을 때 호기심 때문에 허락을 한 것이 아니었다. 거친 손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그대 손바닥이 닫혀 있는 내 가슴을 열어주었다. 그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부드러운 손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어느 커피 잔에 커피를 타 먹든 맛을 좌우하지 않을 것이다. 입술에 닿은 그 부드러움에 커피 맛이 더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부드러운 커피 잔을 팝니다. 난 오늘도 그대의 부드러운 손이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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