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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명화읽기 | 착한 여자, 나쁜 여자 [퍼온글]


BY 2008-02-04



어렸을 때에는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나이 들수록 사기꾼으로 넘쳐나는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착하다, 나쁘다의 기준은 사실 개인의 판단에 의한 결정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은 선하고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고, 자신에게 조금만 손해를 끼쳐도 그 사람은 태생이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해 버린다. 

오랫동안 겪어 보았던 친한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분류해 모르는 사람은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쁜 사람으로 분류되어 경계한다. 경계가 풀어진 다음에야 자기 편으로 편입시킨다. 

그나마 오랜 시간 사람을 겪어보고 착한지 나쁜지를 판단했다면 비교적 정확하겠지만 제일 먼저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외모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품성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미남 미녀는 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외모가 뒤떨어진 사람은 심술궂은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외모가 뒤떨어지면 얼굴에 심술보 하나 더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미남 미녀일수록 착한 사람은 드물다. 항상 아름답다는 이유로 대접을 받고 살았기 때문이다.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디바]◇



 

착한 여자

미녀가 선행을 베풀면 역시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는 마음도 아름답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하다못해 미녀가 손이라도 잡아주면 감사의 마음이 하늘을 치솟는다.

남자들은 미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길도 감지덕지인데 미녀가 커다란 은혜라도 베풀면 곧바로 전설이 된다. 설혹 아름답지 않더라도 선행을 베풀면 천사로 바로 등극하는 것이다.


존 콜리어(1850~1934)의 ‘레이디 고디바’이 작품은 12세기 무렵부터 내려오던 전설이 배경이다. 예술과 마을 주민을 사랑한 여인의 특별한 선행을 표현한 작품이다.


고디바는 영국 중부에 있는 도시 코벤트의 영주 아내로서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평소에도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마을 주민들도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우렸다.

하지만 마을 주민은 영주의 가혹한 세금 정책 때문에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는커녕 세금 낼 돈 걱정이 앞섰다.


고디바는 세금 때문에 고충을 겪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남편에게 세금을 내려 줄 것을 간청한다. 영주는 아내의 간청에 비웃으면서 고디바가 옷을 벗고 마을 시장을 한 바퀴 돌면 원하는 대로 세금을 내려주겠다고 한다.

고디바는 남편의 요구에 경악을 하지만 마을 주민과 문화 예술을 사랑하기에 그녀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옷을 벗고 시장 한 바퀴를 돌아 원하는 바를 이룬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생각하는 고디바의 마음을 알고 그녀가 시장을 도는 동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고디바는 벌거벗은 채 화려하게 장식한 말안장에 앉아 있다. 그녀는 수치심으로 뺨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붉은 안장은 그녀의 신분과 열망을 암시한다.


고다바 뒤로 보이는 건물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희미한 건물과 닫힌 창문은 사람들이 그녀의 모습을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존 콜리어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고디바의 전설을 재현해서 그리지 않고 19세기 분위기에 맞추어 각색을 했다. 그는 고디바를 가난하고 힘없는 주민들을 위해 희생하는 강한 여성으로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연약하고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인으로 연출했다.


‘레이디 고디바’ /1898년 /캔버스에 유채 /허버트 아트 갤러리 소장



◇귀스타프 아돌프 모사의 [그녀]◇



나쁜여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너무 많이 들으면 독이 되는 법이다.

매일 칭찬 한마디씩 듣고 자라면 자만심이 하늘을 찔러 안하무인이 되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 그리고 부러움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와 눈물샘만 마르지 않는다면 웬만하면 다 해결했다. 미녀의 우는 얼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미녀에게 남자를 유혹한 숫자는 전리품이다. 미인이라는 의미는 역설적으로 남자의 유혹을 가장 많은 받은 여인을 뜻한다.


날이면 날마다 남자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미인들은 남자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곧바로 미인클럽에서의 탈퇴를 의미한다. 미녀일수록 유혹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그녀들은 전리품을 사후까지 관리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남자의 시선을 받기도 벅찬데 이미 흥미를 잃은 전리품에게까지 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인이면서 착한 여자는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다.


모사의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의 치명적인 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남자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녀에게 남자는 전리품일 뿐이다.


이 작품에서 여인은 큰 가슴을 드러내놓고 남자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는 정상에 도발적인 시선으로 앉아 있다. 아름다운 여인은 온몸이 남성을 유혹하는 무기지만 특히 큰 가슴은 남성의 힘을 한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초강력 무기다.


그녀의 엉덩이 밑에 깔려 있는 남자는 피를 흘리고 있지만 그녀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다. 그녀는 해골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있고 남근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손가락에는 해골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다.


귀스타프 아돌프 모사(1883~1971)는 성과 죽음에 대한 주제를 즐겨 표현했다. 그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서 여성의 거대한 가슴과 왜소한 남성을 대비시킨 것이 특징이다.


남성을 왜소하게 묘사한 것은 남성이 여성의 유혹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유두가 바깥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먹잇감을 찾는 도발적인 시선과 같은 이유다. 모사의 작품 속 여인들은 남성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다.


‘그녀’/1905년 /캔버스에 유채 /니스 미술관 소장


●박희숙 |동덕여대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한 후 7회의 개인전을 연 화가다.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명화 속의 삶과 욕망》을 출간하면서 작가로도 명성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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