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무변한 일상에서
여행이 주는 모티프는 중차대하다.
그렇지만 여행이란 나와 같은 빈민으로선
쉬 근접할 수 없다는 어떤 원초적인 이율배반의 공식을 지니고 있다.
하여간 이러한 처지의 내가 여행을, 그것도
모처럼 부부동반만의 호젓한 여행을 하게 된 건
화풍난양(和風暖陽)한 지난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떤 이벤트에 덜컥 당첨이 되어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모 호텔의 숙식권을 염두에 두고 떠난 것이었다.
승용차가 없었기에 시외터미널로 나가
경기도 이천까지의 표를 끊어 버스에 탑승했다.
작년에 가지 못 한 \'뒷북치기 은혼식 여행\'을
어쨌든 그같은 경로로써나마 모처럼 떠나자니
우리 부부의 마음은 꽤나 동동거렸다.
1시간 30여분 뒤 이천에 도착하여 물어보니
양평으로 가는 버스는 얼추 두 시간 가까이나 기다려야 온다고 했다.
곤지암으로 가서 거기서 또 40분을 기다렸다가
양평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
이윽고 도착한 곳이 경기도 양평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 다시 시내버스를 기다렸다가 탑승한
용문산 행(行) 시내버스의 릴레이 뒤에야
비로소 마침내 목적지인 B호텔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출발지인 대전에서 무려 여섯 시간 만에야
겨우 도착한 장도(長途)였던 것이었다.
B호텔의 객실에 들어섰으나 얼추 파김치가 되어
피로감이 역력해 보이는 아내인지라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미안해! 내가 남들처럼 차(車)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고생은 안 했을 텐데...”
하지만 현명한 아내는 그처럼 고루한 나의 변명을
키스로서 입막음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아냐, 약간 피곤하긴 하지만 어쨌든 여행은 좋은 거잖아.”
고찰 용문사를 찾은 우린 가족의 건강을 발원하는
불공을 올렸고 하산하는 길에는
즐비한 식당의 한 곳을 찾아 맛난 고기와 밥도 먹었다.
다시 객실로 들어섰으나 아내는
종내 잠을 못 이루고 밤새 뒤척였다.
“밤도 깊었는데 왜 안 자?”
“모르겠어. 암튼 잠이 안 와.”
그처럼 순진무구한 아내를 보자니 다시금
못 사는 나 자신의 현실이 오버랩 되면서
눅진한 죄스러움이 활화산으로 다가서는 것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그렇게 고급호텔에서의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집으로 돌아왔는데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분주했다.
근처의 할인점에 들른 아내는 어제 혼자서 집을 본
아들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며 맛난 먹거리를 가득 사 들었다.
귀가하자마자 아내는 전날의 여행에서
지출된 경비를 가계부에 적느라 골몰했는데
이내 하는 말이 다시금 내 복장을 긁었다.
“여보, 우리 어제 너무 많이 썼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어.”
그처럼 아직도 순수한 자린고비 아내였기에
나는 주저 없이 아내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곤 함구한 채, 그러나 사랑을 듬뿍 담아
아내를 꼬옥 껴안아 주었다.
그리곤 다짐했다.
‘여보, 못 살아서 미안해!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내 반드시 당신을 이다음엔
왕후장상 못잖게 호강시켜줄 게. 사랑해,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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