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난은 시시때때로 올가미가 되어 나를 옥죄어 올 때가
있다. 그것도 종종...
올가미가 늪이 되어 빠져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송두리째 삼켜 버릴 때가 있다.
나름대로 삶 자체를 살얼음판 걸어가듯 조심스레 신중하게 대해도...
고난은 그렇게 나를 덫으로 끌고 들어가곤 한다.
그럴 때면 정말... 맥을 추릴 수가 없다.
그냥 허물어지는 나를 어쩌지를 못한다.
행정도우미를 시작한지 벌써 이 달로 만 5개월째다.
처음에는 한 달을 어찌 채울까, 모든 것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두 달이 가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50일동안 내게는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직원들과 나와의 마찰, 보이지 않는 경계선...
‘열등감’이란 것이 나로 하여금 직원들을 향한 철통같은 방어막을
치게 했고 짙은 색안경을 쓰게 했다.
사실 모든 불화가 내 열등감에서만 불거져 나온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공무원들이 직원 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니 말이다.
직원들이 보기에는 아마도 내가 오기 전에는 맑고 잠잠하던 옹달샘에
미꾸라지 한 마리 들어와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격으로, 분위기를 들쑤셔놓는다고
뒷말들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초반에 나는, 맡은 업무 외에 것은 관여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꼭 해내야만 했다.
출근은 늦어도 오전 8시 40분까지 하는
것을 시작으로 출근부와 일지 기록은 명목상 의미로라도 매일매일
작성하고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제일 융통성있게 지내야하는 ‘사회 복지사’ 와
벌어진 골은 절벽처럼 깊게 파여만 갔다.
처음 내 눈에 비친
복지사는 문제성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복지사를 ‘사회의 꽃’이라 칭할 만큼 그들의
봉사 정신을 높이 사는 항간의 생각들이
얼마나 그릇됐나 실감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힘없는 장애인과 노인들과 기초생활 수급권자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들과 그들을 향한 눈빛이
나라의 돈을 거짓된 마음으로 뺏어가려는 사기꾼쯤으로
여기며 대하는 것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였다.
자신의 출근부 체크는 꼼꼼히 하면서
나의 출근부와 일지는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치를 몰사서 체크하게 내주는 것 또한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에서의 내 존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내 관념 속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던 것들을 한달이 가깝도록 묵고하려니
그동안 쌓인 부당함에 대한 화가 활화산처럼 솟구치던 어느 날
동장실로 쳐들어갔다.
정말 쳐들어갔다는 표현이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
나의 행동이 감정적 +막무가내였던 것 같다.
그렇게 동장님과 나의 대화는 1시간여 동안 이어졌던 것 같다.
그 순간 내가 그만두면 그만, 이라는 생각으로 끝낼 수 는 없었다..
내 뒤를 이은 다른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내가 경험했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
.
.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자리를 지켜나갔다. 전쟁을 치루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지금의 내 자리를 뭐라고 표현해야 알맞을까?
자갈밭이 기름진 옥토가 됐다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원만해졌다.
복지사도 나름대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굴고된 삶을
살았기에 여유로운 마음이 없는 가엾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내 마음이 조금은 풍족해 진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대로고 내가 마음을 비웠기에 이런 마음을 소유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힘겨웠지만
뒤돌아보면 보람된 하루하루였던 것도 같다.
내가 아무리 잘 하려고 애를 써도
기다렸다는 듯이 간간히 ‘실수’란 놈이 튀어나와서
나를 힘겹게 했지만... 그래서 그 순간이 마지막처럼
절실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이 조금은
감상적이고 내 틀 속에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에
남들과 상관없이 나 자신을 내 스스로가 괴롭힌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넘어진 사람만 그 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질 뿐,
근처를 지나치며 보던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아무 의미없이
흘려보내는 일인 것처럼...
내 실수는 그냥 내 실수에 불과 할뿐이라는 것을, 남들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잊고 만다는 것을
깨닫는데 5개월이 족히 걸렸으니 아쉽고
우둔한 내 자신이 아닐 수 없다.
도우미를 하는 어느 날,
나를 골탕 먹이려는 심산이 아닐까, 하는 옹졸한 마음이
들 정도로 복지사가 많은 날(근 1달)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감 3일 정도를 앞두고 ‘행정도우미 체험수기’에
대한 글을 올려보라는 공고문을 건넸었다.
퇴근하면 집안일하고 잠들기도 빠듯하여
글을 쓸 엄두를 점점 잃어가는 내게 말이다.
그때 당시 생긴 ‘오기’란 것이 바쁜 업무 틈틈이 글을 쓰게 했다.
빠듯하고 복잡한 마음에 무슨 정신에 글을 썼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쨌든 퇴근하기 30분 전에 글을 완성하여 메일로 보냈던 것 같다.
공문을 자세히 읽을 시간도 없었기에
그것이 전국사례 모집이었다는 것을 몰랐고 상금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단지 해당구에서 주최하는 거로만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전국 최우수상을 수여하게 되어 보건복지부장관 상을 받게 되었다는 말과
생각지도 않았던 7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것에 얼마나
놀라고 기뻐했던지...당연히 직원들도 함께 기뻐해 줬다.
라디오의 한 프로에서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고 어느 소식지에서의
인터뷰까지 벅찬 며칠을 보내기도 했었다.
이제 내게 1달 밖에 남지 않은 ‘행정도우미’ 라는 계약기간.
직원들이 많이 아쉬워 할 정도로 내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다는 이 일을
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차로 시행된 ‘장애인 행정 도우미’ 사업이
진정 장애인을 위한 사업인가...하는 의문이 들었기에 내 적성과
딱 들어맞는 이 일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직원들과에 분위기,
등, 초본 발급하러 들른 민원들과 간간히 주고받는 수다까지
떠는 여유가 어느 정도 몸에 베었는데 말이다.
4대 보험을 공제하고 받는 70만원.
9시 출근, 6시 퇴근의 업무시간이 공무원들과 똑같건만
식대도 없는 빠듯한 봉급.
지하철이야 복지카드가 있으면 무료탑승이 가능하다. 식사도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니는 것을 감수하면 된다. 하지만 다른 장애우들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 하는 분들과
매번 식대를 지불하며 식사를 때우는 분들도 계실 텐데,
이것저것 빼고 남는 돈을 월급이라고 표현해야하는 것이
내 열등감을 더욱 자극 시켰다.
명색이 행정도우미인데 공공근로하시는 분들보다도 임금이 낮다.
싱글이 살기에도 벅찬 금액을 주부 또는 가장이
명색이 근무지를 갖고 출근하는 직장인임에도 업무를 해서 받는 금액이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금액이 낮다는 것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어찌 보면 안 버는 것보다, 또는 부업을 하는 것보다,
누가 끼워주지 않는 것보다 감사하게 여길 수도 있는 일일수도 있지만...
20살 미혼 청년이 ‘기초노령연금신청접수’를 하며 받는 아르바이트비와
같다는 것에 자존심이 말짱 할 수 없었다.
나 하나로 인해서 뭔가 크게 달라질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굶어 죽을지언정 이 사업에 놀아나고픈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내가 배가 들 고픈지도 모르겠다.
알량한 ‘자존심’ 따위를 내세우며 버티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들이 그러드만...
배 아프면 출세하라고... 정말 출세하고프다.
꼭 출세를 하고프다.
그래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변인이
되고프다. 어쩌면 일제시대에 독립투사로 목숨을 걸던 독립투사와도
지금의 내 마음이 흡사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1차 사업부터 20%가 미만으로 순탄하지 않은 사업이
2차 때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의문점이 든다.
개선점을 찾지 않고서는 이 사업 자체가 무용지물로 끝나 버리지 않을지...
역지사지...
점점 이 사자성어가 내 머리 속을 맴돌 때가 많아진다.
날 때부터 장애를 갖은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선천적과 후천적인 것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언제 어느 때나 어디서든 위험이 도사리는 현대, 이 사업을
주관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후회들를 하게 될지,
‘환상특급’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지금 이 순간 이 사업을
인심쓰듯 시행한 이들에게 벌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어리석은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내 유머가 점점 소실됨을 느낀다.
가지를 떨궈 내는 나무들의 몸부림과 바닥에 너부러진 낙엽들의
비명과 한기가 느껴질 아스팔트 위에서 먹이를 찾아
바둥거리는 비둘기와 참새들의 고달픔이
속속들이 마음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정말 이러다가 내가 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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